2011년 10월 9일 일요일

결혼이민자에 대한 신원보증서

얼마전 인권위원회에서 결혼이민자에 대한 신원보증서 징구 폐지를 권고한 바 있습니다.
http://www.humanrights.go.kr/04_sub/body02.jsp?NT_ID=24&flag=VIEW&SEQ_ID=602669

이와 관련해서 언론보도도 있었군요.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1/10/02/0200000000AKR20111002037600004.HTML?did=1179m

신원보증서의 내용이 궁금하시다면 이곳에 양식이 있습니다
http://www.hikorea.go.kr/pt/DownLoadTemplPopupR_kr.pt

제가 하는 일과 관련이 있기에 좀 읽어봤는데... 솔직히 말해서 좀 어이가 없네요.
저도 별로 아는게 없습니다만, 저보다 잘 아시는 분들이 말하지 않으시는 것 같아서 아는 데 까지만 써봅니다.

1. 신원보증서를 받는 제도는 출입국관리법 90조에 따른 것입니다. 이는 1992. 12. 8일 법 4522호로 출입국관리법에 도입된 제도입니다. 당시 국회심의 기록을 보면, 시행령이나 규칙상의 제도를 법률상 제도로 끌어올린다는 말만 있고, 구체적인 입법이유에 대해서는 나와있지 않습니다. 때문에 저로서는 언론보도처럼 신원보증법에 따른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신원보증서 제도는 실무상 여러 체류자격의 여러 민원에 대해 폭넓게 쓰입니다. F-1, G-1, H-2-C[유학생이 부모를 초청할 때 입니다. 연장의 경우는 아니죠]처럼 고용계약과 전혀 상관이 없는 체류자격의 사증발급인정서 발급/체류자격 변경/체류기간 연장의 경우에 신원보증서를 받는 경우가 많죠. 또한 그 신원보증인이 지는 책임도 국내 체류중 제반법규 준수와 출국비용/보호시 발생하는 비용에 대한 것입니다. 이를 감안해 보면, 신원보증서 징구 제도가 처음에 신원보증법의 영향으로 출입국관리법에 도입되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설사 언론보도가 맞다고 치더라도, 신원보증법과는 별개의 독자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 상태라고 보입니다.

2. 2011년판 출입국관리법 해설에 따르면, F-2-1[결혼이민자들의 체류자격입니다] 의 경우 위장결혼이나 무단가출에 따른 소재불명 등을 방지하기 위해 국민인 배우자에게 신원보증을 받되, 국민의 배우자가 국내에 없거나 보증능력이 없으면 사실상의 부양자/형제자매/기타 동거인 등이 할 수도 있고, 국민인 배우자가 사망하거나 이혼한 경우 친척이나 보증능력[한마디로 경제력입니다]이 있는 제3자도 신원보증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업무처리시 따르게 되는 지침상 규정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간단하게 말하면 '당신[=신원보증인] 믿고 이 사람 국내에 머물게 허가해 준다. 그런데 위장결혼일 경우 당신이 책임져야 한다' 이소리죠.

그런데 이 제도는 실무상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요?
F-2-1 체류기간연장허가시 신원보증서를 받지 않는 경우도 많고, 받더라도 당사자가 거기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결혼이민자가 가출할 경우 신원보증을 철회하러 오긴 합니다만, 이 때도 무슨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신원보증서 때문에 결혼이민자들이 열등한 관계가 되고 맞고산다? 한마디로 어이가 없습니다. 그러면 무작위로 추출해서 50%의 결혼이민자는 체류기간 연장시 신원보증서를 받지 않고, 나머지 결혼이민자는 체류기간연장시 신원보증서를 받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신원보증서를 받지 않는 가정은 양성평등이 이루어지고, 신원보증서를 받은 가정은 결혼이민자가 두들겨맞을까요? 이들 사이에 유의미한 차이는 없을 것이라는데 한표 던집니다.

3. 신원보증서를 국제결혼가정에 적용할 경우, 국가는 사용자, 한국인 배우자는 중간관리자, 결혼이민자는 피용자가 된다구요? 실무상 이혼소송 중이나 혼인파탄 후[그러니까 배우자의 신원보증을 기대할 수 없는 경우] 체류기간 연장신청시 이혼소송을 위임받은 변호사, 심지어 여행사 직원이나 행정사, 인권운동가도 신원보증인이 되는 경우도 많은데, 그렇다면 이런 경우 결혼이민자는 변호사/행정사/여행사/인권활동가의 피용자가 되는 것입니까?

4. 결혼이민자의 가출로 혼인생활이 유지되지 않는 경우 국내체류가 불안정해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가출이 가정폭력으로 인한 것이라면 당연히 체류기간 연장허가가 됩니다. 가정폭력으로 이혼 한 경우, 다른 요건이 갖추어진다면 영주권이나 국적신청도 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두들겨맞다가 쉼터로 피했더니 나라밖으로 내쫓는다는 식의 주장은 말이 안됩니다.

5. 결혼이민자가 한국인 배우자에게 열등한 관계에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신원보증서 때문이 아닙니다.
가. 먼저 외국인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인 배우자 이외에는 이 곳에 아는 사람도 별로 없고, 한국에 대해 아는 것도 별로 없죠. 억울한 일을 당해도 어디가서 어떻게 하소연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어찌어찌해서 찾아가도, 말이 잘 안통합니다. 각종 관공서에 영어로 자유롭게 의사소통할 수 있는 직원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렇다면 타이/베트남/캄보디아라면 어떨까요?
우리가 외국에 나갔다가 어려운 일을 겪게되면 어떨까 생각해보시면 쉽게 아시게 될 겁니다.

나. 더구나 국제결혼중개로 이루어진 결혼이라면 문제가 더해집니다.
1) 먼저 생전 처음보는 사람들끼리 거의 매매혼에 가까운 결혼을 하게 되죠. 이런 경우 양성평등이 이뤄지는게 이상한 겁니다. 우리나라 국민끼리 결혼한다고 해도, 처음보는 사람들끼리 돈에 팔려 결혼을 한다면 그 삶은 뻔해지는 거죠.
2) 또한 결혼생활이 끝날 경우에도 결혼이민자는 자기 나라로 돌아갈 생각이 없습니다. 애초에 결혼을 하다보니 우리나라에 온 게 아니라, 우리나라에 오기 위해 결혼을 한 것이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결혼이민자의 국내체류가 배우자에게 의존하게 되는데, 이것이 약점으로 작용하는 것입니다.
그럼 결혼이민자의 국내체류가 배우자에게 의존하게 되는 것이 잘못된 것일까요? 그건 아닙니다. 그 결혼이 아니었다면 우리나라에 들어올/ 머물 수도 없던 사람이 결혼때문에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머무는 것인데, 국내체류가 배우자에게 의존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닐까요? 이게 잘못된 것이라면, 혼인 후 국내 입국하자마자 그냥 이혼해버리게 됩니다. 한마디로 결혼사기가 합법적으로 가능해진다는 것입니다.
국민인 배우자가 이를 이유로 각종 인권침해를 한다면? 위에서 쓴 것처럼 국민인 배우자의 잘못으로 이혼한 경우 국내 계속체류가 가능하고, 국적/영주권도 신청할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죠.
- 결혼이민자들이 국민인 배우자에 비해 불리한 관계에 있는 것은 맞습니다.
- 결혼이민자의 국내체류가 배우자에게 의존하고 있는 것도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것은 아니고 당연한 것입니다. 결혼사기를 생각해보시죠.
- 신원보증서 제도는 결혼이민자의 인권침해와 별 상관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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