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0월 23일 토요일

가족

불체자가 많은 나라 사람들은, 아무래도 우리나라에 들어오기가 더 어렵습니다. 그러다보니 불체를 하기 위해서 우리나라에 들어오려면, 이런 저런 거짓말로 심사관을 속여넘겨야 하죠. 그 때 잘 써먹는 수법 가운데 하나가 가족관광입니다. 그래서 성이 같은 사람들 몇이 모여서 가족이라고 속이는 일도 많죠. 이와 관련해서, 들은 이야기 둘과 겪은 일 하나를 써 볼까 합니다.

1. 몽골의 어느 '엄마'가 아이를 데리고 우리나라에 들어오려 했답니다. 그런데 뭔가 문제가 있어서, 아이는 들어올 수 없고 엄마만 들어올 수 있는 상황이었죠. 그러자... 그 엄마가 아이는 팽개치고 자신만이라도 우리나라에 들어오겠다고 하더랍니다.
조사를 해보니 가짜엄마였다는군요. 아무래도 애를 안고 있으면, 설마 애 데리고 불체할까 싶어서 들여보내주게 되겠죠. 그걸 노린 것이었습니다.

2. 제가 일하는 곳으로 어떤 불체자 하나가 상담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자기나라로 돌아가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되냐고 묻더라네요. 알고보니 아버지가 아들을 데리고 우리나라에 들어와서는, 아들에게 일만 시킨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견디다 못한 아들이 자기나라로 돌아가고 싶다며 전화한 것이었죠.
설마 애 데리고 들어와서 불체할까 싶어서 들여보냈더니, 한술 더 떠서 애를 부려먹은 겁니다.

3. 얼마전 불체자 단속을 나갔다가, 스무살도 못되는 러시아 불체자를 잡았습니다. 조사해보니 여섯살 때인가 우리나라에 들어와서는, 인생의2/3를 불법체류한 친구였죠. 어찌된 거냐고 물어보니, 이모가 자신을 데리고 들어왔다가 이모가 먼저 단속되어서 자신만 남았다고 하더군요. 이모가 왜 데리고 들어온거냐고 묻자, 굳은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친구가 우리나라에 들어왔을 때, 러시아는 구소련 붕괴 후 참 어렵던 시절이었죠.

만약 피치못할 사정 때문에 이모가 조카를 데리고 온 것이었다면, 이모가 단속되었을 때 조카도 함께 데리고 가겠다고 했겠죠. 그러면 들어주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단속실적이 늘어나는걸 마다할까요.

단속중에는 정신이 없어서 그랬다쳐도, 보호[단속된 불체자는 여권/항공편 마련 등 출국할 준비가 될 때까지 보호실/외국인 보호소에 있게 됩니다]중에는 자세한 사정을 말할 여유가 없지 않았을 겁니다. 이모가 우리말을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만, 러시아어를 하는 직원은 몰라도 우리말을 좀 하는 다른 불체자가 없었을 리 없습니다.

제가 사악해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만, 이런저런 일을 겪다보니 저런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다지 좋은 생각은 들지 않네요.

2010년 10월 9일 토요일

실전


단속을 할 때, 달아나기만 하는 불체자들이 더 많지만 맞서 싸우는 불체자도 가끔 있습니다[얼마전, 다른 사무소에서 단속된 불체자를 때려서 문제된 일이 있었죠. 그 일도 사실 불체자가 각목과 유리병을 들고 덤벼들었던 것 때문에 감정이 격앙되어서 벌어진 일입니다. 젊은 사람도 아니라 쉰 넘은 분이, 사람패기 알맞은 것도 아닌 수갑을 들고 때렸을 정도면, 상황이 오죽했겠습니까]. 저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도 막대기, 돌, 전지가위[전지가위로 무슨 공격을 하겠나 싶으시겠지만, 하더군요] 등을 들고 덤비는 불체자와 싸워야 했던 일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별일없이 넘어가나 싶었는데, 얼마전 그런 일을 겪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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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체자들을 덮쳤는데, 마침 갈고리를 두개씩 들고 일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달아나면서 갈고리 두개를 그냥 들고 가더군요[빨리 뛰려면 본능적으로 손에 든 것들을 버리고 달리는데]. 처음에는 손에 든 것을 버릴 생각도 못하나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제가 따라잡자 바로 갈고리들을 휘두르더군요. 위 사진이 바로 그 갈고리들을 찍은 것[종이는 A4용지이고, 가운데 있는 것은 30cm자입니다] 입니다.
저도 어쩔 수 없이 삼단봉을 뽑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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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쉽지 않더군요. 갈고리가 하나였다면 삼단봉으로 갈고리 든 손을 치면서 엉킬 수도 있었을텐데 그러지를 못했습니다. 갈고리 두개를 휘두르다보니, 하나를 막으면 다른 하나에 찍힐 판이었거든요.
다행히 그 사람도 무술을 배운 사람은 아니라서 두 손을 한꺼번에 잘 쓰지는 못하더군요. 한손을 쓰고 다른 한손을 쓸 때 잠깐씩 틈이 비었습니다.
둘 다 본능적으로 팔을 머리 뒤까지 젖혀 바로 내려찍/후려치려는 자세로 맞서게 되더군요. 옛날 검도는 상단을 잡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은데, 왜 그랬는지 이해가 갑니다.
만약 그 사람이 갈고리가 아닌 칼을 들었다면 중단을 잡았겠지만, 내려찍어야 하는 갈고리의 특성상 위로 치켜들 수 밖에 없었을 겝니다. 저도 갈고리로 내려 찍는데 삼단봉으로 중단을 잡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어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네요. 물론 제대로 된 상단이나 중단은 아닌, 되도 않는 웃기는 자세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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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그렇게 그는 갈고리를 휘두르고, 저는 갈고리 든 손을 노리면서 맞섰습니다. 어쩌다 틈이 보일때마다 손목을 때렸는데 별 효과는 없었습니다[잡힌 뒤 보니 손목이 붓긴 했다는군요]. 처음엔 삼단봉으로 손목을 치면서 이젠 끝났다 싶었는데, 화만 돋구지 무력화는 되지 않아 참 당황했습니다. 저는 다행히 찍히지 않았구요. 찍혔으면 이렇게 지내지는 못하겠죠.
아마 갈고리를 피하면서 틈을 노려 치는 것이라 제대로 들어가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 사람도 삼단봉이 신경쓰여서 제대로 찍지를 못하더군요. 더구나 저를 찍는 것 보다는 달아나는게 더 중요했을테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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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맞서다 달아나더군요. 제가 따라잡자, 다시 갈고리를 휘둘렀습니다. 그렇게 한참 뛰고 휘두르고를 되풀이했습니다. 나중엔 서로 지쳐서 제대로 된 공격이 되지를 않더군요. 손목을 쳐도, 제대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 툭 치는 것처럼 되었습니다.
달아나다가 밭을 뒤덮은 덩굴에 걸려서 그가 두어번 넘어지기도 했습니다. 나중에 들으니 저도 한번 휘청했다는데[보신 분이 아찔하셨답니다], 전 솔직히 생각도 잘안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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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와 함께 일하는 분들이 여럿 오셨습니다만, 제대로 된 무기가 없어서 별 도움은 안되었습니다. 그런데 무기는 없지만 여럿이 몰려오자 그가 더 당황한 듯 하더군요. 결국 넘어지면서 갈고리를 하나 놓쳤습니다. 그러니 더 힘들어졌겠죠. 그래서 더 달아나다가 어느 집 뒷마당에 있는 역기봉을 하나 주워들고 맞서더군요. 마음이 급해서인지 갈고리를 버리지 못하고 역기봉과 겹쳐 잡았던게 실책이었죠[갈고리도 역기봉도 제대로 못쓰게 된 겁니다]. 제가 역기봉 끝을 잡아채면서, 두어분[누가 덮쳤는지 생각도 안납니다]이 덮쳐서 수갑을 채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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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쫓고 쫓기다가 많은 분들을 마주쳤고, 참 많이들 놀라셨습니다. 아주머니들은 말 그대로 혼비백산하셨고, 젊은 친구들은 그 상황에서도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더군요. 수갑을 채우고 오면서 몇분께 신분증을 보이면서 안심하시라 말씀은 드렸습니다만, 모든 분께 사정설명을 드리진 못했습니다. 다 찾아뵐 상황은 아니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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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게 끝났다 싶자, 맥이 풀려버리더군요. 목에서 피맛이 나면서 기침이 오래동안 나왔습니다. 웬만큼 뛰어도 좀 쉬면 멀쩡해지는데, 그날은 종일 맥을 못추겠더군요. 그는 구토를 했답니다. 둘다 운동량에 비해서 체력소모가 무척 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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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 처음으로 흉기를 든 사람과 싸워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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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흉기를 든 상대와 맞서면 얼어버려서 아무 것도 못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더군요. 물론 불시에 급습을 당하면 그렇게 되겠지만, 1~2초라도 마음의 준비가 있으면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그 뒤로는 처음 대련할 때의 긴장과 비슷합니다. 다른 소리는 잘 안들리고 내 심장 뛰는 소리와 숨소리가 크게 들리지만, 아무 것도 못할 정도의 긴장은 아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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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상대와 거리를 두는게 중요하더군요. 대련에서는 일족일도의 거리를 두게 됩니다만, 말 그대로 아차하면 죽는 거립니다. 저나 그나 삼단봉과 갈고리라서 죽도보다 훨씬 짧은 걸 들고 있었지만, 죽도를 들었을 때의 일족일도 거리만큼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래도 상대가 공간치기하듯 밀고들어오면 답이 안나올 것 같았습니다. 특히 날붙이를 가진 상대와 엉키면 아주 위함할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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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공격은 과감하게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 사람이 조금만 더 과감하게 밀고 들어왔다면 저는 어찌되었을지 모릅니다. 저 역시 처음에 손목을 칠 때, 손목 부러지면 어쩌나 하는 생각 버리고 인정사정없이 쳤다면 바로 끝냈을 겁니다. 다치지는 않고 끝냈으니 어찌보면 잘된 일이긴 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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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삼단봉이 듣던 것만큼 파괴력이 세지는 않고[아무 걱정없이 휘두른다면 위력이 넘칩니다만, 상대 반격을 피하면서 틈을 노려 치니 얘기가 달라지더군요], 뽑아들고 오랬동안 뛰고 치켜들고 하다보면 접히기까지 하더군요[두어번 접혔는데, 다행히 거리가 어느 정도 있어서 별일 없었습니다]. 삼단봉으로 단단한 것을 찌를 때만 접힌다고 하던데, 사람을 찔러도 접히더군요[물론 쉽게 접히지는 않습니다만]. 제가 가지고 다니는 것은 명품소리 듣는 물건인데도 그랬습니다. 지급되는 싸구려 삼단봉을 쓰는 건 말 그대로 명을 재촉하는 일 밖에 안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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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대련이 실전에 별 도움이 안될 듯 하지만, 많은 도움이 되는 듯 합니다. 대련이나 실전이나 틈이 보이는 것, 보이는 틈을 치는 것 다 같더군요. 다만 한가지. 대련에서는 맞는 것 신경안쓰지만, 실전에서는 못 때리더라도 안맞는게 낫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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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마치고 돌아오며, 어둑어둑해지는 저녁길에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고 싶어지더군요. 몇번 핸드폰을 꺼냈다가 그냥 집어넣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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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을 아시게 된 윗분은 아주 싫어하시더군요. 사고나지 않도록 무리한 추격 자제하라고 몇번을 지시했냐고 말씀하시면서.
솔직히 저희도 흉기들고 덤비는 것들 보면 그냥 보내고 싶은 생각이 더 많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몇달 안에 모든 불체자가 흉기를 들고 다니게 될 겁니다[어느 곳에서는 여자 불체자가 칼부림하기에 그냥 보냈더니, 뒤에 다시 단속에 걸리자 또 칼부림을 하더라는군요].
이 일이 있고 며칠 뒤, 불체자 하나가 사람 머리만한 돌을 들어 내려치고 각목을 휘둘렀습니다. '무리한 추격은 자제한' 덕분에 아무도 다치지 않았고, 그는 무사히 달아났죠[저는 다른 곳에 있어서 못봤습니다]. 아마 다른 불체자들에게 어떻게 하니 손도 못대더라고 신나게 떠들고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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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불체자를 단속하는 'immigration'에게 이단옆차기를 날리는 것을 통쾌하게 그린 영화도 개봉되었더군요. 그 영화를 보며 공감한 분들 많이 계신 듯 합니다. 누군가의 덕에 덜 위험하게 살아가면서, 바로 그 누군가를 비난하시겠죠. 믿고 싶은 대로 믿고 살면 마음은 편하겠군요. 할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