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월 18일 일요일

" '범죄 시한폭탄' 不法체류자 20만명… 손놓은 정부" 를 읽고

"'범죄 시한폭탄' 不法체류자 20만명… 손놓은 정부" 라는 언론보도를 보았습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1/15/2015011500189.html?news_Head3

크게 틀린 내용은 없었습니다만, 조금 설명이 필요할 것 같아 글을 씁니다.

1. 먼저 반드시 짚고 넘어갈 것이 있습니다.
'불체자가 모든 악의 근원'이라는 식의 접근은 틀린 것입니다. 상당수의 불체자는, 나라가 가난하다보니 남의 땅에 와서라도 돈을 벌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착한사람들도 많죠.

다만 100% 선한/악한 인간은 없습니다. 인간은 환경의 영향을 받는 동물이죠. 그러다보니 법적 통제에서 벗어나 있는 이들이 잠재적 위험군 또는 사회적 불안요소가 되는 것은 틀림없는 일입니다.

불체자를 무작정 사회적 증오의 배출구로 삼는 것도 틀린 것이고, 불체자라면 마냥 불쌍하게만 보는 순진한 환상에 빠져있는 것도 틀린 것입니다.

2. 불체자를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불체자가 생기지 않게 하든지, 생긴 불체자를 잡아내든지 해야겠죠. 불체자가 생기는 과정의 문제점과 불체자를 줄이는 과정의 문제점을 나눠서 살펴보겠습니다.

3.불체자가 어떻게 생기는 지 크게 나눠보자면, 등록외국인이 불법체류하는 경우와 단기체류 외국인이 불법체류하는 경우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가. 등록외국인이 불법체류하는 경우는 여러가지이겠습니다만, E-9/E-10/H-2 와 같은 단순노무자들이 가장 많습니다. 다른 체류자격은 일정 수준 이상의 여건을 갖춘 사람들이라서, 이들보다는 불체율이 훨씬 낮죠.
참고로 어떤 언론에서는 E-9의 불체율이 H-2 보다 높다는 보도를 하던데, H-2의 경우 외국국적동포[조선족/고려인]에게 나가는 사증이므로, 동포정책상 여러가지 혜택이 있었죠. 이 때문에 불체율이 E-9보다는 낮습니다. 그러면 그 혜택을 E-9/10에 확대하면 어떨까 생각하실 수 있겠습니다만,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외국국적동포라는 특수성에서 비롯된 혜택으로 일반 외국인에게 적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죠.

이들 단순노무인력들은 우리나라에서 대개 최저임금 수준에서 급여를 받습니다만, 그래도 고향에서 받는 돈의 몇배가 됩니다. 환율차이 때문에 나라에 따라 다릅니다만, 3배~10배 쯤 되는 것 같더군요. 또한 거의 모든 업체에서는 숙식을 제공하므로 돈을 모을 수 있죠. 그러니 합법적인 체류기간이 끝나도, 집에 갈 생각을 않게되죠. 이때문에 불체자가 정말 많이 늘어납니다.
그러면 왜 이런 체류자격 소지자들을 줄이지 않는 것일까요? 바로 일손부족 문제입니다. 그런 주장과 관련된 언론보도가 있었고, 그에 대해서 제가 쓴 글이 있습니다.
http://keyboardwarrior7.blogspot.kr/2012/01/blog-post_1178.html

저러한 언론보도와 같은 주장이 사회적으로 큰 힘을 가지다보니, 불체자가 어떻게 무더기로 생겨나는지 뻔히 알면서도 막지 못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인터넷 등에서는 외국인력 도입이 거대자본을 위한 것이라는 주장이 떠돌고 있습니다만,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위에서 본 E-9 의 경우, 제조업 종사자는 법적으로 중소기업에만 배정되게 되어 있습니다. 농축산어업의 경우, 일반 농어민에게 배정되지요. 건설업의 경우, 공사금액에 따라 허용인원이 산정되다보니 대기업에 유리합니다만, 모두가 대기업에 배정되지는 않죠.
E-10의 경우, 내항선원과 순항여객선원의 경우 규모가 있는 기업에서 쓰게 됩니다만,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어선원은 일반 어민에게 배정됩니다.
따라서 대기업에서 쓰는 단순노무 외국인력은 그 비율이 극히 적다고 보시면 됩니다.--


나. 단기체류 외국인의 불법체류는 어떻게 생겨날까요? 이들은 대개 관광을 빙자하여 입국하고 있습니다. 입국심사를 정밀/엄격하게 하면 상당수 줄일 수 있겠지요. 그런데 왜 그렇게 하지 않을까요? 나라의 관심이 불체자 방지보다는 관광객 유치에 쏠려 있기 때문입니다.
불체자가 이마에 불체자라고 써있는 게 아닙니다. 당연히 조사가 필요하고, 그 과정은 그다지 기분좋은 것은 아닙니다. '신속하고 친절한' 입국심사를 대대적으로 추구하는 상황에서 불체자를 걸러내는 정밀심사는 설 자리가 없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제가 썼던 글이 몇개 있습니다. 이 주제와 직접관련된 글들은 아닙니다만,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http://keyboardwarrior7.blogspot.kr/2014/03/blog-post.html
http://keyboardwarrior7.blogspot.kr/2013/07/blog-post.html
http://keyboardwarrior7.blogspot.kr/2010/09/blog-post_21.html


4. 불체자 발생방지는 민생치안과 직결되는 중요한 문제입니다만, 국정의 최우선과제가 되기는 힘들겠죠. 그래서 위에서 보는 것처럼 불체자가 양산되는 창구를 뻔히 알면서도, 구멍을 막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생겨나는 불체자를 그만큼 잡아내면 문제가 간단하게 해결되겠죠? 그런데 그렇게도 못하고 있습니다.

가. 가장 큰 원인은 불체자 단속 인력부족입니다. '또 인력타령이냐!'하시겠지만 사실입니다. 맨 위에서 다룬 기사에 전국의 단속인력이 다 합쳐서 150 명이라고 했죠. 제가 알기로는 작년기준 143명인데, 그 사이 조금 늘어난 것인지 그냥 150이라고 한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나. 문제는 이들 150명도 대부분 불체자 단속'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인천공항 출입국관리사무소와 같은 곳의 단속반은 단속업무만 하겠지만, 그 이외의 거의 모든 사무소 단속반은 실태조사도 같이하고 있습니다. 만약 관내에 공항이나 항구라도 있으면 출입국심사업무도 함께 해야하지요. 제가 예전에 단속반에 있을 때는, 일주일에 적으면 하루~ 많으면 사흘 쯤 단속을 하고, 나머지는 출입국심사나 실태조사를 했습니다.
이것도 항공업계 비수기에나 그렇지, 항공업계 성수기에는 한달에 하루 단속하기도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신고/제보가 아무리 들어와도, 단속을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성수기가 끝나 단속을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갔습니다만, 역시나 불체자는 뜬지 오래였고, 신고하신 분들의 반응은.... 설명을 생략하겠습니다.

--만약 인력이 늘어난다고 해도, 단속/실태조사/출입국심사를 완전히 분리하는 것은 좋지 못한 듯 합니다. 저희 업무는 서로 연계되어 있거든요. 단속/실태조사를 아는 사람과 전혀 모르는 사람의 출입국심사는 같을 수가 없습니다. 실태조사나 출입국심사과정에서 단속과 관련된 정보를 얻는 일도 있구요. 단속/출입국심사를 해 본 사람은 실태조사를 할 때 그만큼 더 많은 것을 고려하게 되지요--

다. 더 큰 문제는 적은 인력마저도 사력을 다해 뛰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단속을 열심히 하면 사고가 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그 뒷수습이 쉽지 않죠. 정치인들이나 언론에서는, '공무원이 열심히 일하다 사고내는 것은 책임을 묻지 않는다'고 하지만, 단속중 사고가 터졌을 때 다른 누군가 나서서 수습해주는 것은 듣도 보도 못했습니다.

제 선배님께서 속한 팀에서 겪은 일입니다. 단속을 나갔는데, 누군가가 단속반을 보더니 도망가더랍니다. 잡고 보니 한국인 - 왜 도망갔냐고 물어보니 그냥 무서워서 도망갔답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습니다. 졸지에 불법체포를 한 것이 되어 경찰/검찰 조사를 받게 되었고, 그 사람은 합의금으로 5천만원까지 부르더랍니다. 결국 해결은 되었습니다만, 이 과정에서 도와주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또 다른 선배님 한분도 비슷한 일을 겪으셨는데, 역시 누구 하나 도와주는 사람은 없었죠.
어떤 사람은 단속 중 불체자를 추격하다가 지나가던 할머니와 부딪쳤답니다. 그 때문에 검찰까지 불려가서 조사를 받아야 했다죠.

단속 도중 불체자가 죽거나 다치는 상황도 마찬가지입니다. 저희가 기분이 나빠서 불체자를 때렸다면 당연히 책임을 져야겠죠. 그런데 저희 책임이 아닌 결과에 대해서도 단속반에 대한 마녀사냥이 시작됩니다. 각종 인권단체에서는 말도 안되는 주장을 하고, 언론에서는 그 주장을 그대로 받아씁니다. 그런 일 때문에 제가 썼던 글이 좀 있습니다.

http://keyboardwarrior7.blogspot.kr/2012/04/blog-post_14.html
http://keyboardwarrior7.blogspot.kr/2011/12/blog-post.html

하지만 저희가 단속하다 죽거나 다치면 어떻게 될까요?
아무도 신경쓰지 않습니다. 그 때문에 제가 썼던 글입니다.
http://keyboardwarrior7.blogspot.kr/2014/08/blog-post_30.html

참고로 저 때 무슨 대단한 일이 있어서 묻혔던 것이 아닙니다. 노래방인지 당구장인지에 불이 나서 재산피해 몇백만원 난 것까지 뉴스에 나오던 때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사력을 다해 뛰겠습니까?

라. 사정이 이렇다 보니, 불체자 단속담당 부서는 기피부서가 되었습니다. 단속을 천직으로 알고 한 우물만 파시는 분들도 계십니다만, 그 수는 많지 못합니다. 나머지는 단속부서에 배정되는 것을 꺼리죠. 저도 쓸만한 신규 직원을 보면 충고해줍니다. '단속 업무도 알아야 하니, 안갈 수는 없다. 하지만 가도 6개월은 넘기지 마라.'고 하죠.
심지어 일선사무소에서는 문제직원을 보낼 곳이 없을 때, 단속반에 처박아 두는 경우도 있습니다.

위에서도 이런 문제를 알고, 능력있는 직원을 단속부서로 끌어들이기 위해 이민조사관제도라는 것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제 구실을 하는 지는 의문입니다. 위에서 제도 자체를 잘못 만든 것은 아니고, 일선 사무소에서 운용을 잘못하는 듯 합니다만.... 어찌되었든 단속이 기피업무가 된 근본 원인을 바로잡지 않는 상황에서 큰 효과를 거두기는 힘들겠죠.

요즘 공무원이 인기가 좋아졌다고는 합니다만, 일류 인재들이 말단 공무원을 하지는 않죠. 그런 상태에 기피부서까지 되면, 더 볼만해집니다. 이 때문에 단속부서에서는 웃지 못할 일들도 많이 생깁니다. 일일이 다 기억하지는 못합니다만, 제가 단속부서에 있을 때도 뒷목잡고 쓰러질 일이 많았습니다.

5. 불체자를 제대로 줄이지 못하는 원인을 대강 말씀드려보았습니다.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 것인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한가지, 꼭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어떤 사회 문제가 불거지면 꼭 따라붙는 주장이 '유능한 민간 전문가를 공직사회에 수혈하자'는 것입니다만, 여기서는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분야는 모르겠습니다만, 이 분야는 '유능한 민간전문가' 자체가 없습니다.
여러 대학교수님들이나, 저명한 연구기관에서 저희쪽 문제를 다루는 논문/책들을 가끔씩 펴내고 있습니다만, 읽어보면 정말 뭐라고 할 말이 없어집니다. 제가 무식해서 이해를 못하는 것이겠습니다만, 현실을 전혀 모르시더군요. 현장에서 여러가지 설문조사 등도 하시던데, '사회적 약자인 불체자'에 대한 순진한 환상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한, 부질없을 겁니다.

제가 생각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유능한 민간전문가'가 조직의 상부를 차지하고, 경기활성화+연금개혁으로 지금만도 못한 사람들이 현장부서를 채우는 것입니다.
그런 일이 없기를 빌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