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7월 23일 토요일

아저씨, 나랑 틀려?

어느 결혼이민자 분이 체류기간 연장을 하러 오셨습니다. 따라온 아들이 뜬금없이 제게 묻더군요.
"아저씨, 나랑 틀려?"
뭔 소린가 해서 멀뚱멀뚱 그 아이를 보고 있자니, 어머니가 당황해서 아이에게 말합니다.
"아니야, 아저씨도 한국인이야"
그때서야 감을 잡고 아이에게 말했습니다.
"너도 한국인이야"
그러자 아이 엄마는 얼른 맞장구를 칩니다.
"맞아, 너도 한국사람이고, 아저씨도 한국사람이야"
그리고 힘없이 한마디 덧붙입니다.
"엄마만 외국인이야"
아마도 아이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큰 고민을 하는 모양이더군요.

'외국신부수입'이 시작되고 세월이 좀 흐르니, 그 아이들이 문제가 되기 시작하나 봅니다. 옛날에는 국제결혼은 있었어도 신부수입은 아니었죠. '신부수입'이 시작되었을 때 조선족/고려인 신부들이 많이 왔었지만, 한민족이었으니까 아이들의 정체성이 크게 문제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신부수입'이 동남아로 뻗어나가면서, 얘기가 달라진 것 같습니다.
이제 시대의 화두가 하나 드러난 것이죠.

먼저 못박아둘 것이 하나 있습니다.
저는 대규모 이민정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절대 반대입니다. 인구감소가 문제인지 모르겠습니다만, 대규모 이민을 받아들였다가는 어마어마한 사회적 갈등이 우리나라를 휩쓸 것이 뻔히 보이거든요[노동력 감소가 문제된다면, 비전문취업 E-9 이나 방문취업 H-2 같은 사증들을 발급 수를 늘리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이들 사증을 받은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가 체류기간만료 후 귀국하지 않고 불법체류를 할 가능성이 있습니다만, 방법이 없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예컨대 임금이나 각종 보험금의 일부를 귀국한 다음 자국내에서 받게 한다든지. 그러면 우리는 불체의 위험이 줄고, 외국인노동자 본인은 도난/강탈이나 낭비의 위험없이 목돈을 만들 수 있겠죠-바로잡습니다. 보험금의 경우 이런 것들이 벌써 이뤄지고 있네요. 이 때문에 군말없이 돌아가는 사람도 많다고 합니다-].

그러나 일단 우리나라에 와서 결혼해서 잘 사는 분들, 그리고 그렇게 해서 태어난 아이들은 끌어 안아야겠지요. 여기서 문제되는 것이 이른바 사회통합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보면, 사회통합이 제대로 된 것 같지가 않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인력부족입니다. 불과 2년 전만 하더라도, 저희 조직 일선 사무소에 사회통합 전담직원은 거의 없었습니다. 체류지사무소 가운데는 가장 큰 서울사무소에는 전담직원이 두어분 계셨습니다만, 절대 다수의 지방사무소에서는 아예 전담인력이 없었죠. 다른 일 하는 짬짬이 위에서 내려오는 지시나 어찌저찌 해내는 수준이었습니다. 요즘은 계약직 직원 한둘 쯤 두게 되었죠. 사무소마다 사회통합과를 두려는 움직임이 있습니다만, 그렇게 된다 해도 실제로 일을 하는 사람들은 몇을 넘기기 힘들 겁니다.

그 때문인지, 사회통합을 위한 활동들은 아직 이벤트성 행사 정도에 머무른 상태죠.[사통에 대해서 거의 아는게 없는 제 생각이 아니라 사통담당자의 고백입니다. 물론 각종 사회통합과정 교육도 많이 합니다만]. 아직은 걸음마 단계이니, 일단 사람들을 끌어 모으고 봐야 하는 상황인가 봅니다.

그러다보니 부작용도 나타나는 것 같더군요. 사람들을 끌어모으려고 이것저것 나눠주다보니, 이젠 무슨 행사를 하려고 홍보하면 나오는 반응이 '가면 뭐주는데?'랍니다. 10만원어치 쯤 되지 않으면 시큰둥 하다네요. 그만큼 가봐야 별 도움도 되지 않고 귀찮기만 하다는 뜻이겠죠.

문제는 저희뿐만 아니라, 다른 조직에서도 비슷한 상황이라는 것이죠.
사회통합이란 것이 여러 기관의 소관이 되나 봅니다. 외국인이니 저희 소관이고, 여성과 가족의 문제라 해서 여성가족부 소관이기도 하고, 지역주민의 문제라고 지자체 소관이기도 하나봅니다. 솔직히 각 조직에서 조직확대를 위해 사회통합에 경쟁적으로 뛰어든 면도 있다는 군요. 그래서 여러 기관에서 사회통합에 손대고 있는데, -그쪽에서는 다르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저희보다 인력과 예산면에서 훨씬 나은 곳에서도 저희와 크게 다르지 않은 상태인가 봅니다.

솔직히 이런 문제에 대해서 국가가 뭘 할 수 있는지 의문이기도 합니다. 예컨대 다문화와 관련된 사회시설을 짓는다든지, 인력을 양성하는 것까지는 국가가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거기까지입니다. 생각해보면, 국가가 할 수 있는 것은 교육/홍보 정도인데, 그걸로 뭔가가 될 것 같지는 않네요[그렇다고 해서 그마저 손 놓아버릴 수는 없지만].

예를 들어보죠. 우리는 국민학교에 들어가서 바른생활을 배웠고, 중학교 때 도덕, 고등학교 때 윤리를 배웠습니다. 매일 아침 저녁 조회종례, 매주 월요일 애국조회 때마다 좋은 얘기 많이 들었죠. 그래서 우린 착해졌을까요? 우리가 바르게 산다면 그 덕분일까요? 군에서, 예비군/민방위 때마다 교육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린 애국심이 고취되고 안보의식이 투철해졌을까요?

국가가 이 이상 뭘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요?

사회통합도 마찬가집니다. 아무리 교육과정을 만들어 강사가 거품을 물고 떠들어도, 받는 사람입장에서는 귀찮은 일일 뿐이죠. 열심히 듣는다해도, 그 덕에 뭔가가 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언젠가 혼혈가수 인순이씨의 삶이 주목받은 때가 있었죠. 그것도 한 때였습니다만, 아무튼 사람들 인식이 좀 달라지긴 했을 겁니다. 이런 바람이 자연발생적인 것이었는지 누군가의 의도적 띄우기였는지 알 수 없습니다만, 어느 정도 먹혀들어간 것 같습니다. 아마 사회통합과 관련해서, 몇번 쯤은 써먹을만한 것 같습니다. 환풍기 수리공이었다는 허각씨가 돌풍을 일으키며 연예인이 된 것처럼, 다문화가정의 아무개가 무슨 대회에서 우승을 하며 화려하게 연예계에 발을 들여놓는다는 식으로 말이죠. 하기도 쉽고 홍보효과도 만점일듯 합니다[예컨대 다문화가정 아이가 사법시험에 붙는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국가가 어떻게 조작하기도 힘들고, 며칠 뉴스에 나오고 끝날 겁니다. 효과측면에서, 연예인이 계속 활동하는 것과 차원이 다르죠]. 그러나 저것도 오래, 많이 할 일은 못되는 것 같습니다.

이렇듯 국가가 할 수 있는 것은 뻔한데, 문제는 심각합니다. 결혼이민자의 아이들은 단순히 외모만 다른 게 아니거든요.

저는 민원창구에서 매일 여러 쌍의 결혼이민자와 그 배우자를 만나봅니다. 그런데 '신부수입'이 이루어진 부부의 경우, 아내의 이름을 제대로 쓸 줄 아는 남편은 몇 없습니다. 대개는 비슷하게 소리나는 한글로 한두마디 간신히 쓰는 것이 전부죠. 그만큼 교육수준이 낮고, 아내쪽 문화에 대한 관심이 적다는 뜻입니다. 어찌보면 그럴만 하죠. 돈 천만원 들여서 데려오고-솔직히 말하면 사오고-, 아내 친정에 돈도 부쳐주는데 관심까지 퍼부어야 하냐고 대꾸하면 할말은 없어집니다[오해를 막기 위해 덧붙이면, 저런 사람들이 모두 아내를 종부리듯 한다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만남은 저러했고 아내쪽 문화에 관심은 없어도, 사이좋게 사는 분들 많아요. 두사람 표정을 보면 알죠. 쉽게 이해가 가지 않지만 산다는 게 그렇더군요]

아버지는 교육수준이 낮고, 어머니는 -자기나라에서는 어떠했을 지는 몰라도-우리나라에 와서 아는 게 별로 없으니, 아이 교육은 뻔해지는 겁니다. 그러면 가난은 대물림되겠죠. 이제 못배우고 가난한데 생긴 것까지 다른 사회계층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영호남/서울과 지방의 갈등도 어쩌지 못하던 우리나라가, 이런 사태를 어떻게 풀어갈 수 있을까요?

50년쯤 뒤 우리나라에도 오바마와 같은 대통령이 나올까요? 정말 힘들어 보입니다만, 아직 글러버리진 않았습니다. 어떻게든 해 봐야죠.


**글을 끝내며 덧붙입니다.

다문화가정은 저렇게 문제가 심각해도, 적어도 혈연적 유대관계는 강력합니다. 아버지는 한국인, 자식들도 우리 피가 섞였고 이 땅에서 나고 자랐죠. 아마 그것이 문제해결의 가장 강력한 밑바탕이 되겠죠. 그런데 대규모 이민정책으로 피한방울 안섞인 가정들이 몰려온다면?

대규모 이민정책으로 우리 '상전들'을 모셔들이자는 이야기는 아닐겁니다. 정책을 세우시는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실 지 몰라도 일반국민의 정서가 받아들일 수 없겠죠. 그러면 우리 사회에서 이민가정에게 주어지는 위치는 뻔해지죠. 생각해보십시오, 글로벌 인재가 우리나라에 그런 대접 받으러 오겠습니까? 그러면 어떤 사람들이 몰려올까요? 그들은 어떤 문제에 마주치고, 또 어떤 문제를 일으킬까요? 그런 문제들을 해결 하기 위해 국가/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아무리 봐도 희망적인 상황이 그려지지가 않습니다. 대규모 이민정책은 누군가의 지적처럼 '역사적 과오'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