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30일 토요일

지문

등록외국인에 대한 지문등록제가 작년부터 다시 실시되었습니다. 사실 재작년부터 기계가 들어와서 열심히 찍고 있었습니다만, 사무소 민원혼잡문제 때문에 공식적으로는 2012년 1월부터 시행하는 것으로 되었죠.
2003년말에 등록외국인 지문날인제도가 폐지되면서 문제가 많이 있었는데, 늦은 감이 있지만 다행입니다.

등록외국인 지문등록제가 다시 시행되면서, 담당자 입장에서는 민원인들의 반발이 걱정되었습니다. 지문날인제도가 자리잡은 지금도, 솔직히 부담이 없진 않구요.
그래서 지문입력이 한번에 되지 않아 여러번 찍어야 할 때[지문이 잘 안나오는 살갗이 있더군요. 나라에 따라서도 좀 다른 게 있고, 사람에 따라서도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면, 민원인이 짜증낼까봐 은근슬쩍 눙치기도 합니다.
'고생을 많이하셔서 지문이 잘 안 찍히네요'하고 말이죠.

제가 그런 말을 할 때, 남자들과 여자들-정확히 말하면 주부들-의 반응은 완전히 다릅니다
남자들은 그저 씁쓸하게 웃을 뿐입니다.
여자들, 정확히 말하자면 남편과 함께온 여성분들은 순간 기세등등해집니다. 함께 온 남편은 바로 죄인이 되어 풀이 죽어버리구요.

산업재해로 다친 손가락의 지문이 잘 안찍히는 것을 빼면, 사실 고생을 많이해서 지문이 안나오는 분은 거의 없습니다. 저도 한두분 밖에 못 봤죠. 하지만 지문이 잘 안나오는 분들의 입장에서는 아주 다르게 받아들여지나 봅니다.

제가 무심코 던진 너스레 한마디에, 평생 부부싸움할 때마다 시달릴 남편분들....
이자리를 빌어 사죄라도 해야할 것 같습니다. ^^;;

2013년 3월 19일 화요일

장군님 단타치신다

이젠 모두 무신경해졌습니다만, 북한에서 이런 저런 짓들을 하며 전쟁위협을 하고 있습니다. 나름 노리는 것이 있어서겠지요. 그러나 그 게 먹히는 것도 하루이틀이지, 이제는 약발이 떨어져 가는 듯 합니다. 그걸 뻔히 알텐데도 계속 저러는 것을 보면, 달리 뾰족한 수가 없으니 저러지 싶습니다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자식, 단타치나?

김정일도 그렇고 김정은도 그렇고, 세계경제는 물론이고 우리 경제에 결정적인 영향력은 없습니다. 전쟁을 하면 우리 경제가 잿더미로 되어버리겠지만, 제 목숨도 끝장날테니까요. 하지만 우리 주식시장의 단기적인 낙폭은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홍콩이나 마카오에 끄나풀을 두고 우리 주식시장에 손을 대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예컨대 농협해킹 건을 생각해보죠[정부발표대로 북한이 한 짓이라는 전제하에]. 많은 분들이 불편을 겪었습니다만, 북한이 만족할만한 사회혼란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럴 건도 아니었죠. 하지만 그 일로 보안관련 주는 상한가를 쳤다는군요.

'장군님 축지법 쓰신다'는 많은 '웃음'만 안겨주었습니다만,
'장군님 단타치신다'는 그럴 듯 하지 않습니까? ^^;;
물론 웃자고 해 본 소립니다.



2013년 1월 5일 토요일

투표

얼마전 대선이 있었습니다. 선거때마다 세대별 투표율이나 투표성향으로 말이 좀 있었죠. 생각나는 일이 있습니다.

저희 사무소에 1930년대 태어나신 할머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젊어서 간호사로 서독에 일하러 가셨던 분인데, 은퇴 후 고국으로 돌아오신 분이시더군요. 오셔서는 '국적회복'에 대해 물어보셨습니다. 우리나라 국민이 다른 국가의 국적/시민권을 얻으면, 우리 국적은 원칙적으로 없어집니다. 이 분께서는 독일시민권을 취득하였으니 우리 국적을 잃으신 것이죠. 이런 분들이 다시 우리나라 사람이 되려고 할 경우, 일반적인 '귀화'가 아니라 '국적회복'에 해당하게 됩니다. 이 분께서는 바로 이 '국적회복'을 하고 싶어하셨습니다.
나이들어 고국으로 돌아왔으니 다시 한국인으로 살겠다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입니다만, 이런 경우 조금 복잡한 문제가 있습니다.

국적회복을 하면, 이전의 다른 나라 국적은 포기해야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그 나라에서 연금 기타 사회보장제도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생기게 되더군요. 나라에 따라/상황에 따라 다를테니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겠습니다만, 그런 일이 꽤 많은 듯 싶습니다.

그래서 우리 정부에서도 대책으로 내놓은 것이 복수국적[이중국적]의 예외적 인정입니다. 65세이상의 고령자가 영주귀국을 할 경우 예외적으로 복수국적을 인정해서, '외국국적 불행사 서약[특별한 것은 아니고, 한국에서는 한국인으로만 살겠다. 불리할 때 외국인행세 하지 않겠다고 서약하는 것입니다]'이란 것을 하면 그 나라 국적을 버리지 않아도 되죠.

다만 이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이는 우리나라가 복수국적을 인정해준다는 것 뿐이지, 그 나라에서 우리의 국적회복을 어찌 다루는 지는 완전히 다른 문제입니다. 그 나라의 주권이 걸린 문제로 우리 정부가 전혀 손을 댈 수도 없죠.
그 나라에서 복수국적을 인정하지 않을 경우, 한국국적을 다시 얻었으니 자국 국적을 없애버리게 됩니다.
그 나라에서 복수국적을 인정한다고 하여도, 미국법상 denaturalization 과 같은 문제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저도 아는 게 없습니다만, 미국의 경우 시민권을 취득(naturalization)한 뒤에도 일정한 경우에는 시민권을 박탈(denaturalization)해버립니다. 여러가지 사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만, 원국적의 회복도 사유가 되는 듯 하더군요]--바로잡습니다. 원국적의 회복이 denaturalization의 사유가 되는 것으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책을 다시 보니 그 내용을 찾을 수 없네요. 아마 제 기억이 잘못된 것 같습니다. 잘못된 글을 썼네요.  죄송합니다.--

그 나라 국적은 유지할 수 있다고 하여도, 연금 등 사회보장 수급의 문제는 또 다른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 국적의 회복이 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저희로서는 알 수 없지요. 다만 어느 나라든지 돈 나가는 것은 싫어한다는 것, 영주귀국/국적회복은 그 나라에서 돈을 주지 않을 좋은 구실이 될 수 있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담당자분께서 그 할머님께 모든 사정을 말씀드렸습니다. 지금 이대로도 우리나라에서 사시는 데 아무런 불편이 없으시다는 것, 국적회복은 복잡하고 기간도 여러 달 걸린다는 것. 국적회복을 하셨을 때 독일 쪽에서 문제가 생길 수도 있고, 우리 정부는 거기에 어떤 도움도 드릴 수 없다는 것.
그러나 그 할머님의 뜻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독일시민권 없어져도 좋고, 독일쪽 연금 날려도 좋답니다. 까닭은? 아주 간단하고도 확고했습니다. '다시 투표해야겠다'

순간, 서독으로 간 광부들과 간호사들이 서독에 온 박정희 대통령 내외를 붙잡고 울던 이야기가 생각나더군요. 이 분께서는 어디에 투표하실까요. 그리고 이분께 투표권은 어떤 의미일까요.

제 아버지께서는 아마 반대이실 겁니다.
일흔이 넘으신 분이십니다만, 어릴 때 단지 '빨갱이 아들'이란 이유로 길가다가 얻어맞던 일을 잊지 못하십니다.
다른 형제자매의 희생 덕에 7남매 중 유일하게 정규교육을 받으실 수 있었습니다만, 취업을 하려니 갈 수 있는 곳이 없었습니다. 요즘은 '해외여행 자유화'가 이루어졌습니다만, 옛날에는 웬만한 회사 구인광고에 '해외여행에 결격사유가 없는 자'란 요건이 빠지지 않았거든요. '빨갱이 아들'이 그런 게 될 리 없지 않습니까. 가난 때문에, 자신의 졸업을 위해 다른 6남매가 국민학교 2학년만 마치고 작파한 것을 두눈으로 똑똑히 지켜본 아버지께, 이것은 어떤 의미였을까요.
결국 아버지께서는 교사가 되셨습니다. 요즘이야 공무원/교사의 인기가 높습니다만, 그 때는 '할 것 없으면 면서기하고, 면서기도 못하면 선생한다'는 시절이었더랍니다. 그런데 교사가 된 뒤에도, 그 문제는 끝까지 발목을 잡았습니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만, 예전에는 평교사 바로 위에 '주임교사'란 자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시절에는 주임교사가 되려해도 비밀취급인가가 필요했다네요. 물론 '빨갱이 아들'에게 그런게 나올 리 없었고, 승진은 아예 남의 일이었죠.
아버지께서는 단 한번도 여당에 표를 줘 보신 적이 없습니다. 아버지께 투표권은 어떤 의미일까요.

노인들의 투표성향에 대해, 젊은 사람들의 말이 많습니다.
저 또한 30대 중후반으로 세상 많이 겪어보진 못했고 별다른 고생없이 자랐습니다만, 저보다도 더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내 뜻과는 다르게 투표한다고 해서, 악담을 퍼부을 일은 아닙니다. 그 분들의 투표에는 나름의 가슴아픈 사연이 새겨져있다는 것은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2012년 12월 7일 금요일

족보

저희 일을 하다보면, 혈연관계를 입증하기 위하여 각종 자료를 제출하시는 민원인들을 자주 뵙게 됩니다. 그 가운데 족보를 보여주시는 분들도 많죠.
그런데 죄송한 말씀이지만, 솔직히 족보는 미덥지가 못합니다. 역사적으로 족보를 팔고사는 '환부역조'가 자주 있었던 것은 모두 아시겠거니와, 법적으로 봐도 개인 또는 집안에서 특별한 검증절차 없이 작성한 자료만으로 어떤 처분을 하기엔 모자람이 있겠죠.

그런데 언젠가, 우리 말도 잘 못하시는 고려인 동포께서 오래된 족보를 꺼내실 때 느낌은 완전히 다르더군요. 할아버지에게서 아버지에게로 전해져 내려온 것이라면서 낡은 러시아 신문에 싸여있는 족보를 보여주셨습니다.
보존상태가 좋지 못하거니와, 제가 워낙 무식해서 제대로 알아보기는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조선시대 만들어진 족보인 것은 틀림없어 보이더군요.

그 분의 할아버지께서 구한말인지 일제시대인지 조국을 떠나야했고, 연해주로 흘러들어가셨던 모양입니다. 그 뒤 아버지께서는 스탈린때문에 우즈베키스탄으로 끌려갔고. 그분은 우여곡절 끝에 우크라이나를 거쳐 카자흐스탄까지 가셨나 봅니다. 거기서 아들과 한국으로 돌아오셨고.

조국을 떠나실 때 상황은 좋지 못했을 겁니다. 가볍지도 않은 짐들을 메고 지고 끌고 갔겠죠.  반겨주는 사람도 없었을테고, 뭐하나 갖추어진 것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 곳에서 힘들게 농사를 시작하면서 삶의 터전을 일구었겠죠. 간신히 자리를 잡은 뒤, 스탈린은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시켜버립니다. 제가 알기로는 이때  많은 분들이 죽어갔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지 않으면 얼어죽은 것이었다는 말까지 있더군요.
이 모든 과정에서 끝내 지켜냈던 족보.

제가 이분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습니다. 결과를 기다리고 있죠. 잘 될 겁니다.

2012년 11월 3일 토요일

E-6 비자

한겨레신문에서 E-6 비자에 대한 기사가 났더군요.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58845.html

저 기사에서 말하는 E-6는 정확히 말하면 E-6-2 입니다. E-6-1은 예술/방송연예활동을 하는 체류자격이고, E-6-3는 운동선수/감독/매니저에게 주는 체류자격이거든요.
뭐 E-6 가운데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것이 E-6-2이고, 작년부터 나온 신형 외국인등록증에는 세부자격이 나오지 않고 E-6라고만 쓰여져 있어서 저리 아는 것이 당연할 수도 있습니다만.

E-6-2 사증은 기본적으로 호텔/유흥업소에서의 공연활동을 하는 자격입니다. 워커힐호텔/관광유람선/롯데월드나 에버랜드 등에서 외국인들이 공연하는 것 아시죠? 그 사람들이 받는 비자가 E-6-2입니다. 하지만 본래의 취지와 달리, 성매매가 문제되는 곳도 있죠[성매매 처벌이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잠시 접어두고, 여기서는 왜 막지 못하는지만 다루기로 합니다].

저희 쪽에서 E-6-2와 관련된 업무처리 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국내연예기획사에서 외국에 있는 피초청자를 초청하죠. 이 일은 사증관련 부서에서 합니다. 사증관련부서에서 사증발급인정서 발급을 허가[명칭은 허가지만 행정법적 개념으로는 특허에 가깝겠죠]하면, 그걸로 해외 공관에서 사증[비자]을 받죠.
그 비자로 공항만에서 입국심사를 받고 입국합니다.
입국한 다음 공연장소로 와서, 외국인 등록을 마치고, 체류기간 연장이나 근무처변경허가 등을 하게 됩니다[이 일은 체류관련 부서에서 합니다. 마찬가지로 명칭은 허가지만 행정법적 개념으로는 특허에 가까울 겁니다].
이후 조사관련 부서에서 동향조사를 해서 문제점이 있는지 알아보고, 단속을 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를 가지고 사범관련 부서에서 처벌을 하게 됩니다. 통고처분을 해서 범칙금을 부과할 수도 있고, 고발을 하기도 하죠.

그런데 막지 못한 이유는 뭘까요? 사증/체류/조사 가운데 한군데서만 막았어도 그런 일은 없을텐데. 가장 중요한 것은 '구체적인 증거'입니다. 어디에서 무슨 일이 있다더라 하고 '사람들이 아는' 것과, 불허처분 또는 처벌을 위해서 '증거를 갖추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거든요.

이와 관련해 핵심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저 기사와는 달리, '이주여성'들은 사실 '피해자'라기보다는 '공범'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죠.
유흥업소를 단속할 때, '이주여성'이 감금되어 있다가/강요에 시달리다가 저희를 보고 구원을 요청하는 경우는 들어본 적도 없습니다.
E-6-2 자격 소지자도 아닌 '이주여성'이 유흥업소 등지에 있다가 적발되면 언제나 '놀러왔다'고 둘러대죠[유흥업소에서 일하는 게 아니라 그냥 아는 사이라서 놀러왔는데, 마침 단속반이 왔을 뿐이라는 말입니다].
E-6-2 자격소지자가 공연이 아닌 술자리에 있다가 적발되면, '강요에 못이겨 한 일'이라며 피해를 호소하는 게 아니라 오리발 내밀기 바쁘죠. 제가 단속했을 때, 술자리에서 뭐했냐고 물어보니 노래불렀다고 하더군요[공연했다는 뜻입니다. 가수명목으로 온 '이주여성'이었거든요]. 무슨 노래를 불렀냐고 물어보니 사랑 노래를 불렀답니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무슨 사랑노래를 불렀냐니, 대답을 못합니다.
제가 겪은 일은 아닙니다만, 어떤 '이주여성'들은 아예 단속에 항의하며 옷을 홀랑 벗고 사무소 바닥에 드러누워버린 적도 있었다네요. 남자직원들은 모두 도망가야했고, 여직원들이 힘든 일을 겪었답니다. 구체적인 말은 못하면서 치를 떨더군요.
'이주여성'들이 피해자라면, 증거수집이 훨씬 쉬워질 것입니다. 하지만 '이주여성'이 공범이고, 업소/손님과 이해관계가 일치하다보니 증거수집은 참 힘들어집니다.

업무과정을 좀 더 말해보면..
먼저 사증발급인정서/ 체류허가 등에 대해서 보죠.
이들은 법리상 수익적 행정처분일테니 관련사실의 입증책임이 신청인[연예기획사나 '이주여성'] 쪽에 있겠습니다만, 현실적으로 불허처분을 위해서는 처분청에서 관련사실을 입증해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때 '심증은 가나 물증이 없으면' 담당자 입장에서는 불허를 하기 힘듭니다. 국가기관인 영상물 등급위원회에서 공연추천까지 받아왔는데, 구체적인 증거는 아무 것도 없이 그냥 '모두가 다 알지 않느냐'며 불허하기란 쉽지 않죠.
저도 여러 건 다뤄봤습니다만, 불허에 성공한 건은 단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그 것도 과장님과 실장님께서 든든한 분이셨고, 단속을 통해 처벌이 이뤄진 업소였기에 가능했죠. 그래도 연예기획사 쪽에서 항의를 해서 쉽지 않았습니다.
그 쪽 사람들이 워낙 '드센 사람들'이라, 사무소에 와서 행패부리면 요즘 같이 공권력이 무너진 시대에 불허는 쉽지 않습니다.

실제로 현장에서 조사해야할 동향조사 부분은 더합니다- 상식적으로도 처벌과 단순한 수익적 처분의 불허는 비교할 수 없겠죠.
가장 큰 문제는 인력부족입니다. '또 그 소리냐' 하시겠지만, 사실입니다.
저희쪽에서 가장 큰 사무소를 둘 꼽으라면 인천공항 사무소와 서울사무소인데, 단속반[동향조사를 담당하죠] 인원은 스물 조금 넘거나 조금 못미칩니다. 그런데 서울사무소의 경우, 관할지역이 서울시 전역과 광명시/성남시/안양시/하남시/과천시입니다. 여기에 있는 경찰서가 몇개인지, 경찰서 하나에 경찰이 몇명 있는지 생각해보셨습니까? 제가 세어보니 경찰서 숫자만 서른 여덟개군요. 저희 단속반원 숫자가 경찰서 숫자보다도 훨씬 적습니다.
지방은 더하죠. 제가 전에 있던 곳은 열 조금 넘는 사람들이 도 하나를 다 맡았고, 지금 있는 곳은 다섯개 시군을 맡고 있는 단속반원이 딱 둘입니다. 더구나 지방의 경우 실태조사나 출입국심사 등 함께 해야하는 일이 많아서, 인천공항이나 서울처럼 동향조사에만 전념할 상황도 못되죠.
단순 불체자 잡기도 일손이 딸리는데, 유흥업소 기획조사란 쉽지 않습니다.

E-6-2 사증의 문제점을 알면서도 고치지 못하는 것을 보고, 국민들이 비리 의혹을 가지는 게 당연합니다. 하지만 담당자 입장에서 보면, 부정부패 이전에 공권력의 현실적 한계문제입니다.

그건 그렇고, 만약 저 기사처럼 피해여성이 있다면 어찌될까요? 기사에서는 캐나다/미국의 구제를 위한  체류자격이 소개되었군요.
우리나라의 경우, 외국인이 소송 등을 통해 권리구제를 받는데 체류자격상 제한이 없습니다. 그 자격이 E-6-2 건 무엇이건, 체류자격상 활동범위때문에 권리구제를 못받는다는 것은 말이 안되죠. 한마디로, E-6-2로 그냥 살면서 권리구제절차를 밟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런 일이 생긴다면, 근무처변경허가를 받고 다른 공연장소에서 일하면서 권리구제 절차를 밟게 되겠죠.

그런데 현 체류자격으로 체류기간 연장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권리구제 절차가 덜 끝났다면 어찌될까요? 그럴 때는 G-1자격으로 바꾸고 권리구제 절차가 끝날 때까지 머물 수 있습니다. 여기에 들어가는 비용은 자격변경수수료 5만원과 등록증 재발급비용 1만원 뿐입니다.
인권침해를 당한 외국인의 경우, 체류자격외 활동허가를 받아서 취업도 가능합니다.

캐나다나 미국의 경우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다고 기사에 나왔군요. '신청할 수 있다'와 '허가가 잘 된다'는 완전히 다른 문제입니다만, 그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았네요. 우리나라의 경우 어떨까요?
등록외국인으로 5년이상 거주한 경우, 다른 요건을 갖추어 일반영주권이나 국적신청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쉽게 받아들여지진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고해서 국적이나 영주권을 주지 않는 것이 잘못된 것 같지는 않네요. 인권침해를 당한 외국인에게 보상을 해주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입니다만, 국적이나 영주권까지 주는 것이 바람직한 지는 모르겠습니다.
한국에 꿈을 안고 왔다가 저런 일을 당했다면, 오만정 다 떨어져서 권리구제가 끝나는 대로 집에 가고 싶어하는 게 정상아닐까요?

2012년 10월 6일 토요일

두려움

SNS로 많은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남겨두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사회지도층' 들도 많죠.
그들의 글이 언론매체에 오르내릴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그런 글들을 읽다보면 크게 실망할 때가 많습니다. 그들에게는 제가 알지 못하는 어떤 깊은 통찰이 있는 줄 알았는데, 그런 것을 찾을 수 없었거든요.
'걸출한 인물들'의 어떤 사회적 쟁점에 대한 태도[적극적인 지지 또는 분노에 가까운 반대]들을 보면서, 저들은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을 알고/ 보지 못하는 것을 보았기에 그런 것이리라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은 없고, 그저 그들의 아집일 뿐이었다는 것이 그들의 SNS를 통해서 드러날 때가 자주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럴 때면 저들도 나보다 별로 나은 게 없구나, 나만 이모냥으로 사는 게 아니었구나 싶어서 마음이 편해지기도 합니다만...
어찌되었든 이 나라는 저들이 이끌어 나가는데, 우리들은 어디로 나가게 될까 두려워집니다.

우리에게 보수와 진보는 정책과 논리가 아닌, 파벌과 정서의 문제였을 뿐이란 것을 깨닫게 되면서, 점점 더 두려워집니다.
이렇게 복잡한 사회를 저런 아집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이끌어 간다는 것, 그리고 바로 우리가 그들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있다는 것. 이런 일들은 앞으로도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란 것...

2012년 8월 17일 금요일

독립운동가 후손에 대한 처우문제

독립운동가 후손들 가운데 어렵게 사는 분들이 많다죠. 그 때문에 이런 저런 말이 많습니다.
저도 몇마디 보태볼까 합니다. 

저희 할아버지께서는 일제 때 학생운동을 하셨던 분입니다[물론 증거는 남아있지 않죠.  아마 역사책에 이름이 나올 정도의 위인 몇분 빼면, 다른 분들도 사정은 저희집안과 거의 같지 않을까 싶네요]. 덕분에 할머니와 고모들, 아버지께서 고생을 하셨죠[궁금하신 분은 제가 예전에 썼던 글을 보시죠: http://keyboardwarrior7.blogspot.kr/2009/06/625.html ].

저희 집안에서 국가로부터 무슨 혜택같은 것을 받아 본 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나라에 뭔가를 요구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조상이 독립운동을 했다면 그건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 뿐이죠. 그걸 내세워서 뭔가를 받아내려 한다면, 독립운동을 하신 분의 뜻은 아닐겁니다. 직접 고생을 하셨던 고모님들이나 아버님께서는 생각이 다르시겠습니다만,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그래서 어렵게 사는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혜택이 없다며 울분을 토하는 언론보도를 보면 그닥 좋게 보이지만은 않습니다.

말그대로 굶고 살아야 했던 고모님들이나 아버님 세대[모두 일흔을 넘기신 분들입니다]라면 그런 원망하는 것이 당연하겠습니다만, 그 아랫세대는 좀 달라야 하지 않을까요?
아버님세대까지는 낮에 공부하려면 꼴 베와라/밭매라 시키고, 밤에 공부하려면 등잔불 기름 닳는다고 혼나던 분들이었습니다. 당연히 가난은 그분들 탓이 아니죠. 부모의 독립운동 때문에 자녀가 가난한 시대 맞습니다.
그러나 저나 제 누나 세대[70년대 출생]만 해도 다릅니다. 물론 힘들고 어려운 시절을 살아오신 분들도 계시겠습니다만, 공부마저 못하는 가난이 흔한 세대는 아니었습니다. 예전에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만, 제 친구들은 서울 달동네 출신들이지 부촌출신은 아닙니다. 이 친구들마저도 공부안한다고 혼나거나/ 참고서 산다고 돈 타서 오락하다가 맞은 적은 많아도,  돈 없어서 공부 못하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열심히 공부하면 좋은 대학 갈 수 있었고, 좋은 대학 나오면 좋은 일자리 얻을 수 있던 세대입니다. 아니면 기술이나 장사로 성공한 사람들도 많죠. 물론 열심히 해도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도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만.

이제는 피해의식은 벗어버릴 때가 된 것 같습니다. 과거는 잊지 말고 역사는 전해져야 합니다만, 과거에 매달려 불필요한 피해의식을 키울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