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9월 25일 토요일
불체자와 개
공항에서 있었던 일이랍니다. 어떤 여자가 강아지를 데리고 출국을 하려고 했는데, 심사를 맡은 분이 보니 다른 사람의 여권으로 나가려는 듯 했답니다. 불체자들이 다른 사람의 여권으로 나가는 일이 자주 있거든요. 그러나 말씀드릴 수 없는 이유로, 눈물을 머금고 보냈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타고 가려던 항공기의 기장이 개는 못태운다고 하자, 개를 놓고 갈 수 없다며 돌아왔습니다. 그때는 상황이 달라져 있었죠. 결국 그 사람은 불체자라는 것이 밝혀져 버렸습니다. 그 개는 어찌 되었나 모르겠네요.
제가 겪은 일입니다.
단속을 나갔는데, 우거진 숲속으로 불체자 두엇이 달아났습니다[야산을 끼고 지어진 공장들이 참 많거든요]. 찾기 난감한 일이었죠. 그래도 한참을 쫓고 있었는데, 웬 개가 저와 함께 일하는 분을 향해 짖더랍니다. 그래서 가보니 불체자 남녀가 숨어있더라는 군요. 여자도 함께 있어서 저항할만한 상황은 아니었던지 순순히 잡혔고[저희도 공격받는 일이 있습니다. 특히 저런 인적없는 숲속에서는], 곧 저와 만나게 되었죠.
공장에서 불체자 남녀가 사귀게 되었고, 떠돌이 개와도 친해졌나봅니다. 불체자들이 달아나자 개도 따라서 갔고, 저희가 가까이 가자 별 생각없이 짖다가 들켜버린 것 같았습니다. 제가 갔을 때, 개가 별로 짖지도 않고 그냥 앉아있던 걸로 봐서는 주인을 지켜보려 했던 것은 아닌 것 같더군요. 불체자들이 개도 데려갈 수 있냐고 물었습니다만, 그럴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차에 태우고 돌아가는데, 그 개가 한참을 따라오더군요. 그 개는 불체자들과 만나기 전의 삶으로 돌아갔을 듯 하네요.
제 일이 일이다보니, 좋은 인연보다는 그렇지 못한 인연을 많이 만들게 됩니다. 업보를 쌓아 가고 있죠.
2010년 9월 21일 화요일
가난한 나라 관광객들의 입국심사
그런데 그 나라에서 오는 항공노선 하나가 제가 일하는 곳에 있는 공항에 생겨버렸습니다. 요즘은 브로커들도 머리를 씁니다. 처음 그 나라 노선이 생겨서 아무래도 대응이 서툴 수 밖에 없는 곳, 베테랑들이 빠져나가고 업무파악이 안된 직원들이 많은 인사철 즈음, 심사관들의 주의력이 떨어지는 새벽시간대를 노리죠. 저희가 맡은 공항이 바로 첫번째에 해당하게 되었습니다.
그 나라에서 처음 비행기가 오던 날, 저희들은 말 그대로 뒤집어졌습니다. 가장 급한 것이 통역을 구하는 일이었는데,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주변에 영어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는 사람은 찾기 쉽지 않죠. 중국어나 일본어로 가면 더 해집니다. 하물며 그 나라 말을 가르치는 학원을 찾기도 힘든 나라의 말을 하는 사람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서울도 아닌 지방에서.
할 수 없이 그 나라에서 온 결혼이민자를 몇 분 만나봤습니다만, 그 비행기가 오는 이른 아침에 나와주실 수 있는 분은 거의 없었습니다. 간신히 한분을 모시고 공항으로 갔습니다[그런데 심사과정에서 이 분께서 -팔은 안으로 굽다보니- 자기 나라 사람들 편을 들어서 애먹었습니다. 그들이 저희도 뻔히 아는 거짓말을 늘어놓는 데 은근슬쩍 그대로 넘겨주려 하시더군요].
아무튼 거의 백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몰려온 그날, 한바탕 북새통이 오랬동안 펼쳐졌죠. 어찌저찌해서, 브로커가 낀 사람들 수십명을 가려내서 돌려보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경찰에서 수사해보니[원래는 특별사법경찰인 저희가 해야합니다만, 워낙 일손이 모자라다보니 손을 못 댑니다. 그래서 경찰 외사계가 맡게 되었죠], 성공하면 일인당 200만원씩 받기로 하고 불러들인 우리나라 사람이 있더군요.
하지만 그 과정에서 정말 관광하러 온 사람들 수십명이 많은 불편을 겪었습니다. 앉을 곳도 제대로 없는 입국심사장에서 한나절을 지내면서, 친절한 서비스와는 거리가 먼 조사를 견뎌야했죠. 저희도 이게 문제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만,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브로커도 바보가 아니기 때문에 멀쩡한 관광객들 사이에 섞여서 들여보내는데, 이마에 불체하러 왔다고 써 있는 것도 아니죠. 결국 불체가능성 없는 게 한눈에 보이는 사람이 아닌 한, 조사를 해 볼 수 밖에 없는 겁니다. 단돈 10만원이나 40만원을 들고 와서는, 4일동안 쇼핑하고 가겠다는 사람은 의심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조사를 하면, 그 사람은 자존심이 상하고 기분나쁠 수 밖에 없죠.
통역문제나 편의시설 문제도 그렇습니다. 모든 사무소에 모든 나라 말의 통역을 여럿씩 붙여두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해마다 수백억씩 적자가 나는 시골공항에, 일반적인 사람은 별문제없이 지나가는 곳에 수십명이 편안하게 머물 시설을 갖추라고 할 수는 없죠.
아무튼 그날이 그렇게 지나갔고, 얼마 뒤 그 나라에서 또 수십명이 몰려왔습니다. 역시 북새통이 펼쳐졌고 그 사람들은 불편하고 자존심 상하는 과정을 겪어야 했습니다. 어떤 분들이 정중하게[점잖은 분들이었습니다] 항의하더군요.
그래서 당신나라에서 온 불체자가 많아서 조사를 해야 하는데, 통역이 한 사람뿐이고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오래 걸릴 수 밖에 없다고 말했더니 아무 말씀도 못하시더군요. 그 나라의 공직자라고 신분을 밝히며 항의하는 분께는, 불체자들이 모두 공무원 행세를 하고 있고 가지고 있는 문서도 위조된 것들이 많다고 했더니 역시 아무 말씀도 못하시더군요. 자신의 나라 사정을 뻔히 아는 그 분들로서는 대꾸할 말이 없는 뼈아픈 한마디였고, 약소국의 설움을 톡톡히 맛본 셈입니다. 저도 그런 사람들 마음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았지만, 사실이 그러니 어쩔 수 없었구요.
한바탕 난리굿이 펼쳐진 뒤 모든 게 끝났고, 잠시 뒤 사증면제협정이 맺어진 잘사는 나라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아무 일 없이 모두 무사통과 되었죠. 저도 솔직히 깔끔하지 못한 외모와 넉넉치 못한 살림살이 때문에 어디가서 좋은 대접 받기 힘든 사람입니다. 그래서 겉모습이나 차림새로 사람을 봐서는 안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잘사는 나라 사람이라고 착한 거 아니고 못사는 나라 사람이라고 나쁜 거 아니란 거,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참 뭐하지만 어쩔 수가 없습니다. 못사는 나라 사람들은 들어오는 사람의 반 넘게 불체하지만[위에서 쓴 날들 말고, 다른 날에도 그 나라 사람들이 왔었습니다. 그나마 불체가능성이 적은 사람들을 들여보냈더니, 여행일정이 끝났는데도 반 가까이 돌아가지 않았더군요--바로잡습니다. 나중에 한번 더 조사해보니 많이들 나갔더군요. 여행일정 끝나고 가이드는 먼저 돌아갔는데 남아있길레 불체자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네요. 영어도 우리말도 못하면서 왜 더 머물다 갔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잘사는 나라 사람은 제 때 잘 돌아가죠. 예전에 잠시 범죄경력 조회를 맡았던 적이 있었는데, 외국인 범죄자 가운데 잘사는 나라 사람은 거의 없더군요. 열이면 여덟아홉은 불체자가 많은 나라 사람들이었고, 불체자 적은 나라 사람은 한둘 쯤 밖에 안되었습니다.
그 북새통을 모두 지켜본, 다른 기관 분이 슬쩍 한마디 던지시더군요. '많이 수상해 보였나봐요?' 왜 그런 난리굿을 피우며 관광객들을 쫓아내냐는 투였습니다. 사시는 동네에 불체자가 별로 없지 않냐고 되묻자, 역시나 없다고 하시더군요. 불체자 많은 동네 사정을 말씀드렸더니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이시더군요.
그런 분들을 마주칠 때마다, 어느 진보적인 지식인께서 도심에 나타난 멧돼지를 사살한 것을 비판 하시던 게 생각나요. 멧돼지를 바라보는 시각은 도시에 사는 사람과 시골에 사는 사람이 같을 수 없죠. 불체자 문제도 그렇습니다. 폭력사건이 벌어져 순찰차가 출동하자 불체자들이 떼를 지어 막아선 일[이건 제가 겪은 건 아니고, 언론보도에서 본 겁니다. 제가 언론보도는 그다지 믿진 않지만, 있을 법한 일이라 생각되네요]을 모르면, 불체자들이 서넛씩 사는 집이 골목마다 여럿 있는 동네에 가보지 못했으면, 저희가 왜 이러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시겠죠.
정말 길었던 하루를 끝내고, 한가위를 쇠러 집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정중하게 항의하던 분들이 잊혀지지 않아 기분이 참 뭐한 길, 불체자인 듯 한 사람들이 너댓 보이더군요[그 친구들도 저희가 언제 쉬는지 잘 알아서, 그때 많이 돌아다닙니다].
2010년 9월 5일 일요일
탈북여성
이분들이 탈북해서 중국에 숨어 살아야 하다보니, 중국의 신분증을 위조해서 써야합니다. 더구나 모두가 좋은 사람일 수는 없으니까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도 없지 않은 듯 하구요. 그래서 이분들과 관련된 일을 할 때는 조심해야 하죠.
얼마전, 탈북여성과 결혼한 조선족이 신청한 것을 제가 조사하게 되었습니다. 두분의 혼인경위를 알아보면서, 어떻게 남편과 만나게 되었냐고 묻자 그분이 그러시더군요.
'팔려갔어요'
처음엔 제 말을 잘못 알아들으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머리가 띵해지더군요.
물론 탈북자 특히 여성들이 인신매매되고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제 귀로, 더구나 그 여자분이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것을 들으니 느낌이 정말 달랐습니다.
윤락가도 아닌 곳에서 인신매매가 이루어지는 중국[물론 우리나라도 80년대까지 윤락가의 인신매매가 사회적 문제였고, 지금도 각종 인권단체나 다른 국가에서 인신매매국가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만, 이것과는 상황이 좀 다른 것 같습니다]이나, 그런 중국으로라도 탈출을 해야 하는 북한. 뭐라고 할 말이 없어지더군요.
그렇게 팔려갔으면, 남한에 넘어오면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차버릴텐데 그렇지 않으시더군요. 경제적으로도 뭐하나 바라볼 게 없는 남편인데도. 비록 아들이 하나 있긴 했지만, 저로서는 쉽게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아무튼, 이 일을 하게 되면서 힘들고 어렵게 사는 외국인들을 많이 보는 셈입니다. 그러면서 저는 마음가짐이 달라진게 있습니다.
주말에 서울로 돌아와서 번화가에서 잘 차려입은/예쁘게 꾸민 사람들이 즐겁게 다니는 걸 보고 있으면, 어떻게든 이걸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다행히도 어렵게 산다는 게 어떤 건지는 모르고 삽니다만, 지키지 못하면 어찌될지 조금씩 감이 오거든요. 더구나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닌, 우리 할머니 우리 아버지어머니들이 피땀흘려 일궈낸 것들 아닙니까.
2010년 8월 28일 토요일
불체자와 노동시장 임금
합법체류자의 임금수준은 노동부쪽에서 파악을 하고 있는 듯 합니다.
다만 그게 정확한지는 모르겠습니다. 방문취업비자[조선족/고려인이 우리나라에서 일할 수 있는 비자입니다]로 들어온 사람 가운데, 저희쪽에 취업개시신고가 되어 있는 사람에게는 혜택을 주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희에게 취업개시신고를 하려면, 고용센터에 신고를 한 뒤 표준근로계약서를 떼 와야 합니다. 그래서 방문취업비자로 들어온 사람들 가운데 혜택을 노리고 취업을 하지도 않은 곳의 업주와 고용센터에 가는 일이 정말 많거든요. 당연히 임금도 되는대로 적어서 내는 경우가 많겠죠.
물론 이런 경우에도 황당한 임금을 적어내지는 않고 일반적인 임금을 적어낼테니까 믿을만 하다고 볼 수도 있을 겁니다. 서울에서 식당은 80~160 사이[대개 120~150]에서, 건설업체는 200~260[형틀목수/철근 그밖에 맡은 일에 따라 달라지죠] 사이에서 정해지는 것 같았는데, 그 일 한지 몇달 지나서 가물가물하네요. 맞나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 일을 하다보면 퇴직신고를 하러 오는 사업주들을 맞이하게 되는데, 그 사람들은 외국인도 우리 국민과 동등하게 대우해 주고 있다고 강조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맞나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불법체류자의 임금수준은 파악이 안되고 있습니다. 다만 단속된 불체자의 체불임금을 정산하는 과정에 노동부쪽 분들과 저희가 개입을 하게 되면서 이 정도 받았구나 하고 알게 되는데, 그걸 자료화 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제가 하는 일이 아니라서요].
아무튼 불체자가 노동시장의 임금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요?
사업주들은 항상 말합니다. 한국인들은 일하러 오질 않아서 쓸 수가 없다고. 그래서 불체자를 쓸 수 밖에 없다고 하소연하죠.
그런데 한국인 노동자들의 말은 또 다릅니다. 사업주들이 불체자만 써서 일자릴 구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불체자 신고를 받다보면, 자신이 불체자들 때문에 짤릴 위기에 있다면서 다급하게 단속을 요청하는 분들도 많고, 아예 짤린 다음 복수심에 불타서 제보하는 경우도 많습니다[한국인의 불체자 신고는 거의 이런 경우라고 보시면 됩니다].
어느 쪽 말이 맞을까요? 단속된 불체자의 말을 들어보니 알 수 있었습니다.
언젠가 단속된 불체자에게 얼마 받았냐고 물어보니 180을 받았다더군요. 나보다 많이 받는다고 했더니[제가 200쯤 받는데, 그 때 분위기가 농담따먹기 하는 분위기라서 우스개로 그랬습니다],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지면서, 처음부터 그렇게 받은게 아니라 몇년동안 오르고 올라서 그렇게 받은 거라고 말하더군요. 그 사람이 있던 곳은 폐수가 발목까지 차오르는 3D업체였습니다. 그들은 장화를 신고 저희는 운동화를 신고 이리저리 첨벙거리며 쫓고 쫓기던게 생각나는 곳이죠. 그런 곳에서 처음엔 100 남짓 받다가 여러해 동안 오른게 180이었던 것입니다. 그 사람은 6년간 불법체류를 해서 그렇게까지 받았고, 같이 잡힌 다른 사람은 100 좀 넘게 받았다더군요. 아마 우리 국민을 썼다면 250은 넘게 줘야 했을 겁니다.
흔하지는 않은 일입니다만, 어느 공장에서 잡힌 사람은 80쯤 받았더군요.
어느 음식점에서 불체자를 100~120 쯤 주고 요리사로 쓰다가 단속된 경우도 있었습니다. 우리 국민을 썼다면 200은 넘게 줘야 하는 자리라더군요.
그래서 저와 함께 일하는 분께서는 그런 말씀을 하십니다. '사람이 오지 않아서 불체자를 쓸 수 밖에 없다고? 돈을 적게 주니까 그렇지!'
위에서 말한 공장에서 80주고 불체자 쓰다 걸린 사업주가 합법적인 외국인 근로자마저 도망가서 불체자를 쓸 수 밖에 없다고 하소연하는 걸 보면 얼마나 사람을 막 대했으면 외국인까지 도망가나 싶기도 해요.
이런 걸 보면, 불체자가 노동시장의 임금에 어떤 영향을 주는 지 감이 오실 겁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반이민정서가 꿈틀거리는게 이해가 가기도 해요.
이 글을 읽으시면서, 제가 사업주와 불체자가 좋은 관계에 있는 때도 많다는 글을 썼던 걸 떠올리시는 분도 있으실 겁니다. 어느 게 거짓이냐고 하실지 모르겠네요. 그런데 이 글도 그 글도 모두 저나 제 주변의 다른 분들이 겪은 일들입니다.
뭔가 앞뒤가 안맞는다고 느끼실 겁니다. 그런데 삶이란게 그렇더군요.
-- 덧붙입니다.
얼마전 도축가공업체에서 불체자를 단속했습니다. 125만원/135만원/175만원을 받고 일했더군요[경력이 쌓인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더 받은 것 같습니다]. 도축가공업체가 뭐하는 곳인지 모르시는 분들은, 간단하게 옛날의 백정 생각하시면 됩니다. 피비린내가 가실 날이 없고, 무슨 특별한 경력이 될만한 곳도 아니다보니, 한국인을 쓰려면 저 돈 가지고는 안될 겁니다.
2010년 8월 21일 토요일
재회 2
또 가난한 분들이 국제결혼을 하는 것을 보면, -언젠가도 썼다시피-아내를 맞아오는 것인지 강아지를 얻어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때도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이게 위장결혼인지 아니면 참된 결혼이지만 사는 게 막 사는 것일 뿐인지 가려내기가 힘들어지고, 늘 망설이게 되죠. 특히 제가 처음 맡았던 일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제가 아무 것도 모르고 위장결혼같다고 보고했던 것들이, 참된 결혼이지만 사는 게 막사는 것일 뿐인데 잘못 본 것은 아닌지 늘 찜찜했죠.
그런데... 제가 처음 불허의견을 냈던 분이 다시 신청을 했고, 이 건이 어쩌다가 다시 제게 맡겨졌습니다. 불허가 된 뒤 쫓아와서 대판 싸우고 갔다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변에서는 윗분께 말씀드리고 사건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라고 말씀하시더군요. 하지만 그냥 제가 맡았습니다. 내가 싼 똥은 내가 치운다는 마음도 있었고, 무엇보다도 제가 제대로 본 것이었는지 다시 한번 확인해보고 싶었습니다. 만약 잘못 본 것이라면 제 손으로 바로잡아 주고 싶었죠.
다시 만나게 된 그분. 대판 싸우고 갔다기에 한번 소란이 있겠구나 싶었는데, 뜻밖에도 순하셨습니다. 대판 싸웠을 때, 저희쪽에도 만만치 않은[?] 분이 계셨기 때문에 그런 듯 싶습니다. 다행히 저를 기억하지 못하시더군요.
처음에는 구비서류 등 뭐하나 제대로 준비해둔 것이 없으셨는데, 이번에는 이것저것 열심히 준비해오셨더군요. 순간 흔들립니다. 내가 막사는 걸 위장결혼으로 잘못 본 게 아닐까? 조금 캐보니 여기저기서 거짓말이 드러납니다. 그래도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 위장결혼이 아닌데도, 딴에는 잘 해보겠다고 거짓말 하는 사람도 많거든요. 한참을 고민하면서 이것저것 물어보고 있는데, 뭔가가 잡힙니다. 두가지가 수상하더군요. 제가 잘못 봤던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다행히.
다시 보고서를 썼습니다. 이번에는 '불허'라고 쓰지는 않았습니다. 그냥 제가 본 대로 썼습니다. 담당하시는 분이 읽어보시고 결정하시도록. 담당하시는 분들은 그런 의견을 더 싫어하시더군요. '도대체 날더러 어쩌란 말이냐'며... ^^;; 하지만 저도 어쩔 수 없습니다.
제가 이 일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지 않고 그냥 한 것을 아시게 되자, 선배님들이 그러시더군요. 불허된 사건을 다시 맡기지 않는 까닭은, 감정싸움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함도 있지만, 자기가 맡았던 사건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일을 망치지 않기 위해서라고. 법원에서 재판할 때 전심[前審]재판에 관여한 판사는 맡을 수 없게 되어 있는 것과 똑같은 이치더군요. 거기까진 생각을 못했습니다.
적어도 이번은 제가 선입견으로 한사람의 혼사에 딴지를 걸어버린 건 아닌 것 같습니다만, 모르죠. 사람 사는 게.
제 선배 한분이 겪은 일입니다. 어떤 부부를 조사하고는 위장결혼으로 판단했답니다[제가 들어봐도 위장결혼으로 보이더군요]. 그런데 그게 아니었나봅니다. 그 뒤 약 5년동안 그 사람이 술만 마시면 -조사과정에서 실수로 노출 된- 개인 휴대전화 번호로 전화해서 퍼부어 댔답니다. 결국 5년 뒤 그 사람은 많은 노력을 하고 우리나라에 들어왔다는군요. 그런 일을 생각하면, 아무래도 조심하게 됩니다. 내가 아무 잘못도 없는 사람 고생시키는 것은 아닌가 싶어서.
저희가 막아버리는[결혼은 약탈혼이 아닌 이상 국가가 막을 수 없죠. 저희는 그 외국인의 입국을 막아버릴 뿐입니다. 한국인이 외국으로 나가서 같이 사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죠. 다만 맞선을 통한 국제결혼은 입국불허가 곧 혼인불허와 같죠] 국제결혼은 위장결혼 냄새가 물씬 나거나, 아니면 위장결혼이 아니라도 곧 도망가버릴 게 뻔히 보이는 결혼들입니다. 가끔씩 외국인 배우자 쪽에 한국인 배우자는 모르는 문제가 있는 때도 있구요. 아는 사람이라면 정말 다시 생각해보라고 말해주고 싶은 결혼들만 그렇게 하는데... 모르겠습니다. 사람 사는 일이라는 것이.
2010년 7월 24일 토요일
재회
우연히 그 사람도 제가 타려는 버스를 기다리면서, 저 구석에서 담배만 피우더군요. 그 사람도 얼떨결에 웃으면서 인사는 했는데 정신차려보니 뜨악해서 피하는 것인지, 어색한 걸 참고 인사까지 했는데 제가 뜨악해하니 뭐해서 그러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어찌된 일인가 하면....
여름철에 수박들 많이 드시죠. 그 수박에도 불체자의 손길이 미쳐있다는 것 아실지 모르겠습니다. 수박은 묵직하고 둥글어서, 하루에 수백통씩 다루다보면 놓치기 쉽겠죠. 그래서 수박 딸 때 힘이 센 우즈벡 불체자들을 많이 씁니다. 수박으로 유명한 곳에는 우즈벡 불체자들을 보내주는 브로커도 활동하죠.
저희가 수박따러 온 불체자들을 덮쳤는데, 거기에 체류자격외 활동허가를 얻지 않고 일하던 우즈벡 유학생이 몇 끼어 있던 겁니다[비자/사증에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일을 하며 돈을 벌 수 있는 것도 있고 그렇지 못한 것도 있습니다. 유학생들은 공부를 하러 온 것이기 때문에 일은 할 수 없습니다(다른 나라도 그렇다는군요. 다른 나라로 유학가신 분들이 많이들 이야기 하시죠?). 일을 할 수 없는 비자도 체류자격외 활동허가를 얻으면 일을 할 수 있게 해 주는데, 유학생의 경우 신청만 하면 다 내줍니다. 다만 유학생은 공부하러 온 것이니까, 휴일/방학이 아닌 때에는 '하루에 몇시간까지만 일하라'는 시간제한을 두죠. 그런데 이 학생들은 그 허가없이 일했던 겁니다.]. 신분확인 전에는 도주와 저항 우려 때문에 수갑을 채웠다가, 학생이란 게 밝혀져서 수갑 풀어주고, 사무소로 데려와서 반성문 한 장씩 쓰는 걸로 끝을 냈었죠.
가난한 나라에서 유학온 학생/ 얼마전까지 무척 가난하다가 지금은 어느 정도 살게 된 나라에서 외국인을 다루는 공무원- 어찌보면 정말 할말이 많을 관계인데, 만난 인연이 아름답지 못하다보니 저리 되더군요.
그런데 이 일을 오래하신 분들은 그렇지 않으시더군요. 어떤 분은 자신이 단속한 바로 그 업체에 손님으로 가시기도 합니다. 물론 뭔가를 받아먹고/받아내려고 가는 건 절대 아니구요[제가 그 분을 알고 그 업체도 아는데, 그럴 분도 아니고 그럴만한 곳도 아닙니다], 단속하러 가보니 괜찮더라 해서 가는 거죠. 저로서는 참 따라하기 힘든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만, 어찌보면 이해도 가요. 십여년을 이 일만 하시면, 도대체 단속 안한 곳이 있어야 단속한 곳을 피하며 살죠.
아무튼... 뭐한 만남이었습니다. 이와는 조금 다르지만 어찌보면 비슷한 만남이 한번 더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이야기는 그 때 써 볼까 합니다.
편견
많은 사람들이 동남아인들을 '좀 못살고 좀 무식한' 사람으로 내리깎은 저 광고를 참 부끄러워 하시던데, 저도 몇마디 보태볼까 합니다.
저 광고에서는 그들이 '좀 다르게 생겼다'고 했던데, 좀 '다르게' 생긴 건 맞습니다. 그런데 모르긴 해도, 그 광고에서는 그들이 우리보다 못생겼다고 말하고 싶었던 모양인데, 그건 아닙니다. 동남아 아가씨들도 예쁜 사람 얼마나 많은데요. 남자들도 잘생긴 사람 많구요. 솔직히, 우리나라 사람들도 예쁘고 잘생긴 사람들보다는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훨씬 많지 않습니까. 저들도 똑같습니다. 그들이 체격이 좀 작고 가무잡잡한 것은 맞는데, 그래서 못생겼다는 말은 완전히 틀린 겁니다. 그 사람들 많이 보시면 아실겁니다.
그리고 그들이 '좀 못살고'라는데, 동남아쪽이 우리나라보다는 조금 못사는게 맞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와 있는 동남아 사람들이 모두 못사는건 절대 아닙니다. 막일이라도 해서 돈벌러 온 사람들은 우리보다 가난한게 맞는데, 부잣집 자식들도 많이 놀러 오거든요. 우리나라에 돈 쓰러 온 부잣집 자식들, 과연 우리보다 가난할까요? 재벌집 자식 아니면 그들보다 돈 많은 사람 별로 없다는데 한표 던집니다.
또 그들이 '좀 무식하고'라는데.... 이건 더 말할 필요가 없을 듯 싶네요. 제가 동남아 쪽 사정에 대해 별로 알지 못합니다만, 그들을 대하면서 '정말 무식하구나'라고 느껴본 적은 거의 없습니다.
외국인관련 일을 하면서, 사람들이 우리보다 못 사는 나라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그런 편견은 두가지로 갈리는 듯 해요. 그들을 무시하거나, 선민의식이나 우월감에서 그들을 불쌍하게 보는. 그런데 이 두가지 모두 틀린 겁니다. 둘 다 그들이 우리보다 못났다는 걸 깔고 있거든요. 그들은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인데, 그러면 우리만 우스워지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