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 2일 화요일

제가 고소를 당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제 일자리에서 소란이 있었습니다.
중국에서 귀화한 어떤 영감님께서 창구에 오셔서는 따지고 시작했거든요. 보완서류를 14일 이내 제출하여야 한다고 쓰여 있는 접수증을 들고 와서는, 14일이 지났는데 왜 허가를 내주지 않느냐고 소리를 치고 있었습니다.

어? 이상한데? 라고 느끼신다면 정상이신 겁니다. -_-;;
접수증에는 접수가 되었다. 그런데 보완서류를 14일 이내 제출하지 않으면 접수가 취소될 수 있다고[정확한 문구는 생각이 안나네요. 매일 보는 것인데도 -_-;;] 쓰여져 있습니다. 그런데 그걸 '접수가 되었으니 14일이 지나면 허가가 나온다'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고서는, 허가가 왜 안나오냐며 따지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있을 리가 있나 싶으시겠지만, 자주 있는 일입니다. 대륙의 기상이 넘쳐나는 분들이 여기저기 많이 계시죠.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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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3일 밤에 고칩니다.
접수증에는 '귀하가 제출하신 신청서는 접수되었습니다. 다만, 보완서류를 14일 이내에 제출하신 경우에 한해 처리될 수 있습니다'라고 쓰여있군요. 이게 행정절차법 17조 5,6항과 관련되어, 실무상 가접수/임시접수라 불리는 것 때문에 쓰여진 글귀입니다.
어떤 기한이 다 되었는데 신청인이 구비서류를 갖추지 못하면, 가져온 서류만 가지고 임시로 접수를 해주죠. 그리고 저 기간내 나머지 서류를 제출하면, 처음 접수를 한 때 접수한 것으로 보고 심사하게 됩니다. 한마디로 기한을 지키지 못할 경우에, 기한 내 신청한 것으로 봐주는 겁니다.
기간내 구비서류를 갖추지 못하면 신청을 반려하게 되죠. 그래서 제가 저렇게 착각한 것 같습니다.

어찌 보면 민원인이 저럴만 하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실무상 접수증을 주면서, 허가가 나오는 날을 딱 정해서 그날 오시라고 하거나/ 허가가 나오면 추후통보를 해 드리니 그때 오시면 된다고 말씀을 드리고, 접수증에 적어 드립니다. 날을 정해서 오시라고 하는 경우는 한번만 말씀 드리고 접수증에 적어드리면 다 알아듣는데, 추후통보의 경우에만 이해를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타나더군요. 접수하며 말씀 드리고+접수증에 적어 드립니다. 그래도 찾아오시면 또 설명을 해 드립니다. 그런데도 이해를 '안'합니다. 아무리 설명을 드려도 '14일 지났지 않느냐, 된다더니 왜 안됐냐'는 소리만 되풀이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투덜거리면서 돌아가고, 어떤 사람들은 저렇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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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이 영감님께서 오셔서는 따지시다가, 일이 뜻대로 안 풀리자 욕까지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곳에는 어린 공익 하나 뿐이었거든요. 여직원이나 나이 어린 공익이 있는 곳에서는 자주 벌어지는 일입니다. 남자직원들이 있는 곳에서는 훨씬 드물죠.

하도 소란을 피워대자, 보다 못한 옆자리 여직원이 따졌지만 여직원 쯤은 우스웠나봅니다. 그래서 나이드신 제 상사분까지 가셔서 여기서 그러지 말고 이쪽으로 오라고 했습니다만 소용없었습니다. 결국 남자직원 셋[저도 끼어 있었습니다]이 갔습니다. 왜 욕을 하냐며 이리 오라고 했죠.
남자직원 셋이 둘러싸자, 바로 '욕 안했어요'라면서 큰 소리로 억울함을 호소하더군요. -_-;;

아무튼 데리고 나와서 엘리베이터를 탔습니다. 거기서 제가 욕하지 않았느냐며 큰소리로 따졌죠. 처음엔 '욕 안했어요'라고 뻗대기만 하던 영감님, 자신을 때리지는 못한 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다시 기세등등해졌습니다. 다른 곳[원래는 범죄자들을 조사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난동부리는 사람이 있으면, 거기서 경고해서 조용히 시키기도 합니다. 말그대로 귀찮은 일을 해주시는 셈이죠]에 넘겨주고 오는데, 저보고 이리 와보라며 큰 소리를 치더군요. 중국공안에게 대들면 벌어지는 일들이, 한국에선 벌어지지 않는다는 게 실감났나 봅니다.

제 자리로 돌아와서 다시 일을 하는데, 조금 있자니 그 영감님이 다시 돌아와서는 소란을 피우기기 시작합니다. 엘리베이터에서 두들겨 맞았답니다. 경찰까지 부르더군요. 정말로 젊은 남자 셋이 영감님 때렸다면, 그 영감님 엘리베이터에서 뻗었을 겁니다. 아마 다시 돌아와서 큰 소리칠 수도 없었겠죠? 아무튼 고래고래 소리치던 영감님,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서 더 난리를 쳤나봅니다. 고소한다고 펄펄 뛰었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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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3일 밤에 다시 보탭니다. 그날 그 자리에 있던 어떤 분[저희 직원 아닙니다]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때 욕질하던 영감님 주변에 앉아있던 조선족들이, 저희가 영감님을 데려 간 다음, 저 영감님은 욕한 적이 없다고 이구동성으로 편을 들더랍니다. 모두들 그 영감님의 일행도 아니었는데도 말입니다. 그 이야기를 해주시면서 혀를 내두르시더군요.

그 말씀을 들으니, 각종 운동경기 생각이 나더군요. 한국과 다른 나라가 경기할 때, 한국이 골을 먹거나 지면 조선족들의 함성이 터져나오던 게 말입니다. 평소에는 그 나라들에 대해 아무런 호감도 없던 조선족들이, 단지 한국과 싸운다는 한가지 이유로 그 나라 편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이런 일에서는 오죽하겠습니까.
어떤 분들은 이게 다 우리의 잘못 때문이라고 하시겠지만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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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시끄러워지자... 제 상사분께서 조용히 물으시더군요.
'정말 안 때렸지?'
허탈하고 씁쓸했습니다. 제가 가기 전부터 그 영감님과 있었고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쭉 함께 있던 분이, 일이 시끄러워질 듯 싶자 '난 모르는데 너 혹시 때렸니?'라는 식으로 나오시는 겁니다.

저는 그 영감님이 고소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조사받으러 간 김에 무고죄로 고소해 드리게.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복지부동이란 말이 곧 제 생활신조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참 제가 아는 분이 겪으신 일이 하나 생각나네요.
그 분이 불체자 단속업무에 투입되어서, 여성 불체자 하나를 추격하고 있었답니다. 죽자살자 도망가던 그 여자, 따돌리긴 글렀다 싶자 글쎄....

옷을 벗으려더랍니다!!! -_-;;

그 분은 기겁을 해서 얼른 수갑을 채우고, 옷을 못 벗게 막았답니다.
만약 조금만 늦었다면 여성불체자를 어떻게 했다면서 난리가 났을지도 모릅니다.
이 일도 포장되기에 따라서는 꽤나 자극적인 사건이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다행히 그냥 넘어갔습니다만.

아무튼..
'노인이 관공서에 가서 잘못된 행정에 항의하자, 건장한 공무원 넷이 엘리베이터로 끌고가서 개 패 듯 팼다'는 이야기를 들으시면, 사실은 그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번 쯤 해주시길 바랍니다.

2010년 2월 23일 화요일

어떤 죽음들

일터에서 자리를 옮기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했던 일들 가운데 하나는 사망신고를 받는 것이었는데, 마지막날인 오늘, 기억에 남을만한 사람 둘을 보았습니다.
모두 국제결혼한 부부였는데, 외국인 배우자가 죽어서 남은 사람이 사망신고한 일이었습니다.

한 사람은 아주머니였습니다. 위장결혼관련혐의를 받던 사람이었죠.
남편이 병으로 죽었다고 사망진단서를 떼어서 왔는데, 역시나 얼굴에서 슬픔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오직 '이제 이 사람은 지워지는 거죠?'라 다져 묻기만 하더군요. --이제 이 사람으로 문제될 거리는 없는 것 아니냐는 말을 하고 싶은 모양인데, 별로 배우지 못해서인지 저렇게 묻더군요[아무래도 위장결혼은 못배운 사람들이 하는 일이 많습니다].
참고로 여성이 위장결혼해서 오는 경우가 더 많긴 합니다만, 남성도 위장결혼해서 오는 일이 많습니다. 아마 이 아주머니도 외국남자와 위장결혼했다가, 이런저런 조사를 받으면서 마음고생을 했나봅니다.

다른 한 사람은 아저씨였습니다. 아내가 죽었다고 사망신고를 하더니, 슬그머니 물어보더군요.
'사망신고를 하면 화장비를 준다는데 여기서 주나요?'
그 일을 맡았던 분께서 -황당한 얼굴로- 여기서는 드리지 않고 어디서 주는지도 모르겠다고 하자, 누군가 그러더라며 얼버무리고 사라지더군요.
잘사는 것 같이 보이지는 않았습니다만, 그리 가난해 보이지도 않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지금까지 왔던 다른 사람들도 슬픔이 묻어나오는 사람은 적었던 것 같습니다. 죽은 사람과 어떻게 되시냐고 물어보면, 애인이라고 얼버무리는 아주머니들이 많았죠. 사망신고를 하지 않으면 자신에게 어떤 불이익이 돌아올 것 같아서 하는 사람들이 거의 다였던 것 같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겪고 나면 마음이 착 가라앉으면서 맥이 쭉 빠져버립니다.
남은 아내/남편이라는 사람들이 저러고 있는 걸 보니, 죽은 사람들이 참 가엾다는 생각이 듭니다. 남의 나라에 와서 쓸쓸하게 죽어갔을 테니까요.

왜 저럴까 싶다가 다시 생각해보니, 제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때도 식구들이 크게 슬퍼하진 않았군요. 하지만... 그냥 그렇게 잊혀지나 싶더니, 가끔씩 뭔가가 치밀어 오르고는 했습니다.
그 사람들도 가끔씩 그런 일을 겪을까요? 아니면 누구였는지 생각도 안날까요.

문득, 어찌보면 저런 죽음은 스스로가 불러들인 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나의 죽음은 어떨까요. 아마 내가 어떻게 사는가에 달려있겠죠.

2010년 1월 20일 수요일

공무원의 보수

저는 공무원입니다. 오늘 두번째 월급을 받았습니다.
지난 달에는 신입교육 수당과 월급으로 60만원 쯤과 80만원 쯤을 받았는데, 교육 때문에 일을 며칠 못했기에 정확한 월급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두번째 월급날이 되어서 보니, 128만원 쯤 받았더군요. 7급인데, 실무수습기간이라서 수당이 없다보니 이런가 봅니다.

음... 기억에 남을 숫자가 하나 더 생겼군요. ^^;;

2009년 11월 19일 목요일

사람들에게 달동네는 어떤 의미일까요?

참 뒷골 땡기게 만드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88307.html

언론보도만 읽고 거품물고 흥분할 수는 없죠. 맞는지 틀리는지, 앞뒤 사정은 어떠했는지 알아봐야할 겁니다. 그런데 저 사건에 대한 사람들의 의견들을 읽어보다가, 뜻밖의 주장들을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어떤 분들이 저 어머니의 행동을 옹호하시더군요. 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극빈자들이 사는 곳은 치안상황이 무척 나쁠 것이므로, 가장이 없는 것보다 저런 가장이라도 있는 게 나을 수 있다. 그러므로 저 어머니의 행동은 어쩔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말들도 하시더군요.

다른 건 모르겠고, 달동네에 대한 저분들의 생각을 보면서 저는 놀랐습니다. 달동네에서 도대체 무슨 일을 겪으셨기에 저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궁금해지더군요.

저는 다행히 굶어본 적도 없고, 달동네에 살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달동네 바로 옆에서 자랐고, 지금도 살고 있습니다. 제 국민학교 동창들은 봉천동의 달동네 아이들이 많았고, 중학교 동창들은 신림동 달동네 출신들이 많았습니다. 저는 공업고등학교를 나왔는데, 고등학교 동창들도 형편이 어려운 친구들도 많았죠. 제 고모들 가운데 두분이 서울에 사시는데, 한분은 답십리의 달동네에 사셨고, 다른 한분은 금호동의 달동네에 사셨습니다[두분은 다행히 재개발로 새집을 얻으셨습니다]. 지금은 재개발이 많이 되었지만, 요즘도 봉천동/신림동에는 달동네가 꽤 남아있습니다. 저는 밤에 달동네 골목을 걸어다닐 때도 많죠.

그런데 그 분들이 생각하시는, '10살짜리 의붓딸을 강간한 남자라도 있어야하는 ' 그런 곳은 본 적도 없고, 들어보지도 못했습니다. 그분들이 저로서는 상상도 못 할 달동네를 겪으신 것인지, 막연하게 외국영화에 나오는 슬럼가와 같은 곳이 아니겠냐고 짐작하신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아주 가까운 곳에서 같은 시절을 살아가면서도, 서로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는게 아닐까. 어쩌면 우리 사회의 여러 갈등-사람들 사이에 다툼이 없을 수 없지만, 불필요한 충돌말입니다-은 바로 여기서 비롯되는게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오해를 막기 위해 덧붙입니다. 저도 집안에 아버지/남편이 있어야 한다는 것, 달동네 치안이 다른 곳보다 좋지 못하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그런데 어떤 인간쓰레기 가장이라도 있어야만할 정도의 치안상황은 아니란 것이죠--

2009년 9월 8일 화요일

국제기능올림픽 우승 -기능반의 기억

http://app.yonhapnews.co.kr/YNA/Basic/article/search/YIBW_showSearchArticle.aspx?searchpart=article&searchtext=%ea%b8%b0%eb%8a%a5%ec%98%ac%eb%a6%bc%ed%94%bd&contents_id=AKR20090907117000004&search=1



우리나라가 국제기능올림픽에서 우승을 했군요. 생각나는 게 있어서 좀 적어봅니다.


저는 공업고등학교를 나왔습니다. 그곳엔 과마다 기능반이란게 있었죠. 기능경기대회를 준비하는 친구들이었습니다. 과마다 실습실이 있었는데[과실이라고 불렀습니다], 거기서 먹고자며 실습하는 게 그 친구들 일이었습니다.


대학입시에서 4당5락이란 말이 있던가요? 그 친구들도 거의 하루 서너시간 밖에 못자면서-그러다 보니 항상 눈이 풀려있었죠- 실습을 했습니다. 수업은 거의 빠졌죠.


인문계에서 공부만하면서 그리 지내도 지저분할텐데, 기름과 먼지가 뒤범벅이 되어서 그렇게 지내다보니 항상 거지꼴이었습니다. 제 동기였던 기능반 하나가 며칠만에 집에 가는데, 꼴이 하도 그러다보니 경찰이 불심검문을 하더랍니다. 다른 동기는 실습 도중 화상을 입어서 병원에 갔더니, 간호사 표정이 볼 만했다죠.

체벌도 심했죠. 교사가 아니라 선배나 조교[조교도 대개 몇년 선배]가 관리를 하다보니 더 심했던 것 같습니다. 야구방망이보다 굵은 몽둥이-누군가는 처음 봤을 땐 무슨 기둥인 줄 알았다죠-를 기름에 푹 담가두었다가[기름을 먹이면 더 무거워지죠. 옛날에 몽치를 오줌독에 담가두었던 것 생각하시면 됩니다] 패곤 했으니까요.

기능반출신이 군대에 가면, 군대구타 쯤은 우습더란 말이 있었습니다. 사실이더군요. 저는 경비교도대 출신입니다. 다른 건 몰라도 군대 내에서 구타로는 별로 밀리지 않는 곳인데[인터넷에서 돌아다니는 군시절 추억담을 읽어보면 구타이야기도 많이 나오는데, 우리보다 심했구나 싶은 곳은 아직 못봤습니다], 거기에 대면 별 것 아니었습니다.
아무튼 제가 겪거나 지켜 본 곳 가운데 가장 구타가 심한 곳을 고르라면 공고기능반을 꼽을 겁니다.


그렇게 혹독하게 훈련하다보니, 자동차 엔진을 분해조립해서 시동거는데 40분 쯤 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스탠드에 고정된 포니엑셀엔진이었는데, 크랭크축까지 들어낸 다음 다시 조립해서 시동거는 데 그 정도 걸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기 위해 자기만의 공구를 만들고, 스피드핸들 돌리는 연습하고... 참 많이 애쓰죠.

자동차정비를 잘 모르시는 분들은 이게 어느 정도인지 감이 안 오실 겁니다. 제 외삼촌께서는 공대를 나오셔서 자동차정비기사자격증을 가지고 계신데, 엔진분해조립시동을 40분대에 끝내는 애들이 있다고 말씀드렸더니 거짓말 말라고 하시더군요.


아무튼 이런 친구들이 지방기능경기대회에 나가게 됩니다. 그곳에서 입상하면 전국대회를 가게 되고, 거기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 국제기능올림픽을 나가게 되죠[떨어지면? 과선생님들이 괜찮은 공장을 알아봐 줍니다]. 기능올림픽 준비는 학교를 떠나서 다른 곳에서 한답니다. 기능올림픽에서 우승을 하면 현대자동차연구소 같은 곳에 가게된다더군요.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서 좋은 직장에 들어간 선배가 양복을 빼입고 자랑스럽게 학교에 왔을 때, 친구들이 부러워하던게 생각나네요.


그런데, 그렇게 좋은 직장에 들어가도 하는 일은 뻔하다더군요. 연구원들이 연구 할 때, 이것저것 시키는대로 분해하고 조립하는 일 정도랍니다. 그래서, 어느 선배는 결국 공부해서 대학갔다는군요.


기능반이 아닌 학생들은 기능반에 대해 별로 좋지 않은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능반 애들이 생활하다보면 이런저런 쓸 곳은 있는데 돈 나올 곳이 없다보니, 학생들에게서 수시로 휴지나 비누 등을 걷어갑니다. 과실의 청소를 기능반 아닌 학생들이 맡는데, 이 때 기능반 선배들이 많이 때리기도 했죠. 1학년때만 있는 일이고, 2~3학년때는 이러지 않죠.

그러다보니 기능반 친구들이 기능경기대회에서 떨어졌을 때, 동기들이 별로 안타까워하지 않고 그냥 그러려니 했습니다. 누군가는 쌤통이라고까지 하더군요.


그 곳을 떠나온지도 오래되어서 이젠 기억조차 흐릿해져갑니다. 개인적으로 고등학교는 별로 좋은 기억이 없고, 지금까지 만나는 동기도 없어서 더할겁니다. 기능반은 지금도 그 모습 그대로일까요? 기능반에서도 떨궈진 친구, 기능경기대회 나갔다가 떨어진 친구, 우리를 패던 선배, 지금은 다 어디서 뭘할까요.

2009년 8월 15일 토요일

저주

뒷산에 갔다가 뭔가를 보게 되었습니다.
큰 도토리나무에, 한뼘 쯤 되는 허수아비 하나가 못 박혀 있더군요.
벽초 홍명희의 임꺽정에 나오는 인종 방자하던 이야기가 생각나서, 돌을 집어 못을 뽑아주었습니다. 임꺽정에선 허수아비를 태워주라던데, 불도 없거니와 산불날까봐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짚을 구하지 못해서인지 발에 쓰인 갈대를 뽑아 만든 것 같았습니다. 검은 천으로 싸고 붉은 끈으로 묶었군요. 머리 쯤 되는 곳에 못을 박았는데, 허수아비 뒤에 종이봉투 하나가 같이 박혀 있었습니다. 테잎으로 꼼꼼하게 봉한 것을 찢어보니[이때 뭔가 끔찍한게 들어있으면 어쩌나 싶었습니다만], 컴퓨터에서 뽑은 듯한 여자사진이 찢어발겨진 채 들어있습니다. 그 뒤에 쪽지 하나가 들어있네요. 펼쳐보니 주소와 이름이 쓰여 있습니다. 경면주사같은 것은 구하기 힘들었는지 분홍색 펜으로 썼군요. 부천에 사는 박선영이란 사람이네요[정확한 주소를 밝히지도 않았고, 워낙 흔한 이름이니 괜찮겠죠? 이 사람이 범죄를 지은 것도 아니구요] 글씨를 보니 여자가 그런 것 같습니다.
더 어찌해야할 지를 몰라서 그냥 버려두고 왔습니다.

그 산에는 무속인 쯤 되어 보이는 아주머니 하나가 몇년 째 주문같은 것을 외우고 있습니다. 그 아줌마가 그랬나? 큰 길에서 얼마 안들어간 곳에 박아둔 것을 보면 산에 자주오는 사람이 그런 것 같지는 않군요. 경면주사도 아니고 분홍색 펜으로, 사주팔자도 없이 주소와 이름만 적은 쪽지를 보면 무속인이 한 짓은 아닙니다.

그냥 지나갈 걸 괜한 짓 했나 싶기도 합니다만....
부천에 사는 박선영이란 사람이 나쁜 사람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2009년 8월 3일 월요일

중국감옥에 수감중인 한국인재소자들에 대한 기사를 보고

http://www.yonhapnews.co.kr/politics/2009/08/03/0503000000AKR20090803063700097.HTML?template=1010
오늘 언론에서 본 재미있는[?] 기사입니다. 한-중간 수형자이송조약이 발효되었지만, 한국인 재소자들이 중국 감옥을 선택한다는 내용이죠. 이 기사를 읽은 사람들이 달아둔 덧글들을 보니, 몇가지 잘못 아는 것이 있는 듯 해서 좀 적어볼까 합니다.

저는 경비교도대 출신입니다. 한마디로 전의경 비슷한 것인데, 감옥에서 군복무를 하는 것이죠. 제가 제대한 지 오래되서 기억이 잘 안나는 것도 있고, 요즘은 바뀐 것도 있을 겁니다. 잘 아시는 분 계시면, 잘못된 것은 바로잡아 주시길 바랍니다.


1 먼저 한국은 재소자들에게 강제노역을 시켜서 안돌아온다고 하는데, 그건 아닐 겁니다.
보통 강제노역하면 80년대 반공만화에 나오는 것 같은 혹독한 고역을 생각하게 되는데, 그건 아닙니다. 별로 힘들지 않습니다. 그래서 금고[징역과 달리 일을 시키지 않는 형벌]를 선고받은 재소자들도 출역을 나가려고 신청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방 안에 가만히 있으면 심심하고 갑갑하거든요.


2 중국의 감형제도를 좋게 평가하고 있군요. 저도 한번쯤 고려해볼만한 제도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도 그런 역할을 하는 제도가 있습니다. 바로 가석방이죠. 우리의 가석방제도가 그리 뒤떨어진 것 같지는 않군요.

다만 이와 관련해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감형 또는 가석방제도의 자의적 운영과 부패문제입니다. 감형/가석방은 결국 재소자에 대한 평가문제를 전제로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때 담당 공무원이 자의적으로 평가를 한다면, 또는 뇌물을 받는다면 어떤 문제가 발생할까요.

물론 여러가지 정형화된 기준을 세워 자의적인 처분을 방지하겠지만, 그런 기준들이 얼마나 명확할 수 있는지도 문제겠죠. 예컨대 피해자에 대한 손해배상을 마쳤는지는 명확한 기준입니다만, 반성하고 있는지, 재범의 우려는 없는지는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요.

결국 감형/가석방 제도의 운영은 상당히 제한적으로 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잘못하면 가진자가 합법적으로 감옥을 나오는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관련해 우리나라도 그다지 사정이 좋아 보이지 못합니다만, 중국이 우리보다 나을지는 모르겠네요.


3우리나라 감옥은 사식반입이 되지 않습니다. '구매'라고 해서 식료품을 사 먹을 수 있습니다만[그냥 매점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구매물로 들어오지 않는 음식은 먹을 수 없으니 좀 불편하겠죠. 하지만 이것도 생각해볼 문제가 많습니다. 사식을 허용하면 어떤 문제가 생길까요?

가장 먼저 문제되는 것이 반입음식의 부패로 인한 식중독 등의 문제입니다. 특히 여름에 문제가 심하죠. 사회에서는 음식 맛이 이상하면 먹지 않습니다. 하지만 감옥에서 주는 밥 먹다가 사식이 들어왔는데, 맛이 조금 이상하다고 먹지 않을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위험합니다.

더 큰 문제는 흉기/마약 등의 반입 가능성입니다. 어장검 고사 기억하십니까? 물론 요즘은 금속탐지기가 있습니다만, 이것도 금속성 제품만 탐지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금속성 물질만이 흉기 또는 탈출도구로 사용될 수 있는 것은 아니란 것이죠. 재소자들이 비닐봉지를 모아서 철격자[감방의 쇠창살]도 끊을 수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껌은 중요한 탈출도구가 되지요. 팬티나 내복바지의 고무줄로 누워서/앉아서 목을 매 자살하는 일도 있구요. 제가 근무할 때 재소자 하나가 10센티미터도 못되는 쇳조각을 구해서 날을 세운 뒤, 교도관을 인질로 잡은 적도 있습니다[어떻게 가능할까 싶으시겠지만, 방심하고 있는데 목에 들이대면 대책 없습니다].
우리는 생각지도 못한 별별 물건들이 흉기나 탈출도구로 이용가능하므로, 어떤 종류의 물건만 위험물품으로 지정해서 반입을 금지하는 것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한 문제입니다. 음식속에 어떤 물건이 어떻게 숨겨져 들어와, 어떻게 쓰일지 알 수 없는 상황이란 것입니다.

더구나 음식물 속에 숨긴 마약은 가려내기가 거의 불가능하지 않나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독살가능성입니다. 재소자들은 우리사회에서 가장 극렬한 이해관계 대립을 가지고 있는 당사자들일 것입니다[요즘 세상에 감옥보낸 사이보다 더 험악한 사이가 얼마나 될까요].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 감옥에 있는 재소자를 독살하려하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물론 그 가능성은 낮겠죠. 하지만 전국에 있는 재소자의 숫자도 그만큼 많습니다. 따라서, 전국적으로 보면 독살사건이 끊임없이 터질 수 있다는 말이 됩니다.

4중국 감옥에서 텔레비전 시청과 흡연이 가능하다는 것도 장점이라고 했군요.
우리 감옥의 경우, 제가 있을 때는 텔레비전 시청이 특별한 경우에만 인정되었습니다만,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달라졌다는 언론보도를 본 것도 같은데..

흡연의 경우 우리 감옥에서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흡연자들에게는 고통스럽겠죠.
하지만 우리 감옥에서 금지시키는 것도 나름 이유가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는 화재발생 위험입니다. 감옥은 그 구조상 안에서 밖으로 마음대로 나올 수가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감옥에서 한번 화재가 일어나면 대참사입니다. 그래서 감옥에서는 자살/도주/화재를 3대 교정사고라하여 가장 두려워하죠.

재소자들은 생활태도가 그다지 좋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그 사람들이 마음대로 담배를 피울 수 있게 되면, 정해진 장소에서 정해진 방법으로만 담배를 피운다는 보장은 절대 없습니다. 사동하나에 수십개의 사방이 있고, 사방 하나에 여러 명의 재소자가 있습니다. 이들이 하루이틀 지내는 것도 아닙니다. 담뱃불로 인한 화재가 일어나지 말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예전에 불법체류자들이 외국인 보호소에서 화재를 일으켜 탈출을 시도했던 것 기억하십니까? 탈출은 실패하고 많은 사람들이 사망했죠. 이게 우리 감옥에서 얼마든지 되풀이 될 수 있습니다.

중국의 어떤 제도 또는 그 운영이 우리보다 낫다면, 배워야겠죠.
하지만 그보다 먼저, 우리의 현실이 어떠한지 생각해 봐야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