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7월 10일 토요일

관계

불체자 신고를 받고 단속을 나가다 보면, 불체자/고용주가 아닌 사람들과 마주치는 일이 많습니다. 공장에 단속을 나갔을 때 직원들이라던가, 시골 민가에 단속을 나갔을 때 이웃이라던가.... 한마디로 제3자인 사람들이죠.

그런데 이 사람들의 태도나 반응을 보면, 불체자나 고용주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짐작이 갈 때가 많습니다.

어떤 불체자의 이웃들은 마치 자기가 단속된 듯 안타까워하기도 하지만, 어떤 불체자의 이웃들은 저희에게 따라오라며 앞장 서시기도 하죠.
공장을 갔을 때도, 어떤 공장 직원들은 마치 저희들이 자기 집에 쳐들어오기라도 한 것처럼 싸우려 들지만, 어떤 공장 직원들은 팔짱끼고 구경만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안보는 곳에서 슬그머니 어디에 숨어있다고 가르쳐 주시기도 하죠.

이건 한국인만의 일이 아닙니다.
공장에 단속을 나가면 합법체류자가 저희를 유인하기 위해 먼저 달아나고 불체자가 슬그머니 사라지는 곳도 있지만,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민가에서 외국인을 검문한 일이 있었습니다. 합법적체류자 였죠. 그런데 그 분이 서툰 한국어로 손짓 발짓 해가면서 자기 앞 방에 불체자가 있는데 언제 돌아온다고 알려주더군요. 저희 차에 함께 타고는 다른 불체자들이 숨어 있는 곳을 직접 가르쳐 주기도 했습니다. 어떤 공장에 단속을 나갔을 때는 합법적으로 체류하는 외국인이 자기 공장의 불체자가 지금은 없는데 돌아오면 신고하겠다면서 전화번호를 알려달라시던 일도 있었고, 언젠가는 저희가 단속한 불체자가 자기와 함께 있던 다른 불체자를 찾아주겠다며 앞장서셨던 일까지 있었습니다.
단속된 불체자가 자기 짐을 가져가겠다며 저희를 데리고 자기 숙소로 가는 일도 많습니다. 가보면 거의 다른 불체자도 있죠. 챙겨가려는 짐이란게 별 거 아닌 일이 많은데[새 구두와 입던 옷가지 조금이라던지], 저희와 가면 함께 있던 다른 불체자가 잡힐거란 것 뻔히 알면서도 그녀석 잡히던 말던 나는 조금이라도 손해보지 않겠다 뭐 이런 거죠.

단속된 불체자와 함께 일하던 한국인들이 이별을 안타까워하며 작별하시는 일도 자주 있죠. 고용주도 그렇습니다. 꼭 면회가겠다며 지갑에서 되는대로 돈을 꺼내 불체자에게 용돈을 찔러주시던 고용주나, 벌금은 자신이 얼마든지 내겠으니 불체자가 계속 있게 해달라시던 고용주도 있었습니다. 거꾸로 단속된 불체자가 밀린 임금을 포기하면서 고용주를 보호하려던 일도 있었습니다[불체자를 쓴 고용주도 불법고용으로 범칙금을 내게 되는데, 불체자가 -밀린 임금까지 포기하면서- 자신은 그 고용주 밑에서 일한 적 없다고 주장하는 거죠].

이야기를 쓰다보니, 문득 언론이 잘못 만들어낸 상식[?] 하나가 생각나네요.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만, 불체자를 '미등록이주노동자'라 부르는 언론들의 기사에 '고용주들이 미등록이주노동자의 임금을 떼먹기 위해 불체자로 신고하는 일이 많다'는 이야기가 가끔 나왔죠.
글쎄요....제가 우리나라의 모든 불체자의 모든 사정을 알지는 못합니다만, 그런 일은 거의 없습니다.
고용주가 불체자와 관계가 좋아서가 아닙니다. 불체자는 강제퇴거 되면 그만이지만[이제는 범칙금이 부과됩니다만, 얼마전까지 법률에 규정이 있어도 불체자에게 범칙금을 부과하지 않았습니다], 고용주는 불법고용으로 범칙금을 부담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범칙금이 꽤 쎕니다. 몇십만원정도가 아니죠. 이게 고용기간이 길면 더 늘어나고, 고용한 불체자 수만큼 곱해집니다. 여기에 양벌규정이 보태지면? 정말 곡소리 나는 액수가 되버립니다.
더구나 불체자를 고용한 업체는 대부분 기숙사를 제공하다보니 불체자는 잡아넣고 고용주는 빠져나가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만은 않고, 불체자를 단속하면 강제퇴거 전에 체불임금정산과정을 거치게 되어 있습니다.

아무튼, 이런저런 일을 겪다보면, 생전 처음 보는 저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짐작이 가는 때가 많습니다.
'역사앞에서'라는 책을 보면, 후기에서 글 쓴 분의 아내가 한국전에서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로 이웃과 잘 지낸 것을 꼽으시더군요. 그 구절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저는 어떨까요. 아마 죄를 짓지 말고 살아야 할 듯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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