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오신 분들은, 아마 제가 어딘가에 남긴 덧글을 보고 오신 분들이리라 생각됩니다.
글이 새로 올라오지 않아도 버려진 블로그가 아니니, 제게 하실 말씀이 있으시면 이 글에 덧글로 남겨주십시오. 아마 주말에는 답글을 달아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다만 매주 들어오지는 못합니다]. 덧글을 남기실 때, 어디에서 무슨 덧글을 보고 말씀하시는 것인지 써주시면 좋겠군요.
이 블로그의 오래된 글에 덧글을 올리시면 제가 모를 수 있습니다. 이해해주십시오.
2019년 5월 8일 수요일
2012년 1월 8일 일요일
단군신화의 쑥과 마늘
어떤 분과 이야기를 하다가, 몽골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 분께서 몽골에 갔을 때 보니, 들판 가득 쑥과 마늘이 자라고 있더라네요. 바로 단군신화가 떠오르면서, '그게 사실이었구나. 우리 겨레가 여기서 왔구나' 싶더랍니다.
생각해보니 그럴 듯 해요. 우리 조상들이 북에서 내려왔다지 않습니까.
역사책에서는 그 때 마늘이 없었다 해서 마늘이 아니라 달래일 것이라고 합니다만, 들판에 마늘과 쑥이 야생으로 자라고 있다면 얘기가 달라지지 않을까요?
우리 조상들이 북방에서 양식이 떨어져 쑥과 마늘만 먹어야 했던 게 아닐까. 동굴에서 햇볕을 보지 않아야 했다는 것은, 동굴에서 겨울을 나거나/ 악천후를 버텨야 했던 것을 뜻하지 않을까. 그래서 무리가 흩어지면서, 호랑이 족은 다른 곳으로 가버리고 곰 족은 만주/한반도 쪽으로 내려왔던 게 신화로 남은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드네요.
뭐 정확한 것은 역사학자들이 밝혀주겠죠.
그 분께서 몽골에 갔을 때 보니, 들판 가득 쑥과 마늘이 자라고 있더라네요. 바로 단군신화가 떠오르면서, '그게 사실이었구나. 우리 겨레가 여기서 왔구나' 싶더랍니다.
생각해보니 그럴 듯 해요. 우리 조상들이 북에서 내려왔다지 않습니까.
역사책에서는 그 때 마늘이 없었다 해서 마늘이 아니라 달래일 것이라고 합니다만, 들판에 마늘과 쑥이 야생으로 자라고 있다면 얘기가 달라지지 않을까요?
우리 조상들이 북방에서 양식이 떨어져 쑥과 마늘만 먹어야 했던 게 아닐까. 동굴에서 햇볕을 보지 않아야 했다는 것은, 동굴에서 겨울을 나거나/ 악천후를 버텨야 했던 것을 뜻하지 않을까. 그래서 무리가 흩어지면서, 호랑이 족은 다른 곳으로 가버리고 곰 족은 만주/한반도 쪽으로 내려왔던 게 신화로 남은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드네요.
뭐 정확한 것은 역사학자들이 밝혀주겠죠.
2011년 12월 4일 일요일
사고
저희가 단속을 하다보면 가끔 사고가 납니다. 그 가운데는 언론에 나가는 것들도 있죠. 그런 보도들을 보고 저희들을 '인간사냥꾼'이라고 깎아내리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 이야기들을 해 볼까 합니다.
`
1. 언젠가 베트남 불체자들의 도박모임을 단속하는 과정에서, 베트남인 둘이 추락사한 일이 있었죠. 경찰과 저희 쪽[제가 있는 곳이 아닌, 다른 사무소였습니다]의 합동단속이었습니다. 다행히[?!] 저희가 주관한 단속도 아니었고, 불법도박 건이라서 그런지 언론에서 그리 크게 문제삼지는 않아 그냥저냥 넘어간 일이죠.
`
그런데 어느 진보적 언론에서 단속대상보다 적은 인원을 투입하고 별다른 안전장치도 없었다며 비판하더군요. 한마디로 제대로 된 대비도 없이 단속해서 사람이 둘이나 죽은 것 아니냐는 말이죠.
`
세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가. 언론에도 보도되었습니다만, 단속전 들어온 첩보로는 도박판이 벌어질 곳은 지하였습니다.
나. 에어매트 등의 안전장비를 갖추면 좋겠습니다만, 경찰은 어떤지 몰라도 저희는 그런 장비 자체가 없습니다. 있다고 쳐도, 은밀히 덮쳐야 하는 단속의 특성상 사전에 안전장비를 설치해 둔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사전에 안전장비를 설치한다면? 안전장비 설치하는 걸 보고 단속 눈치채고 다른 방향으로 달아나다가 다른 사고가 나겠죠.
다. 30명 가까운 사람들이 모인 곳을 [경찰과 저희 다 합쳐]15명으로 단속한 것을 문제삼던데, 현실적으로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단속반이 기껏해야 열명도 안되는 사무소가 많습니다[큰 사무소는 좀 더 많습니다만, 그래봤자 뻔한 숫자입니다]. 단속시 상대보다 우리의 인원이 많은게 안전하다는 것은 저희가 가장 잘 압니다. 불체자가 저희를 공격하지 않고 몸싸움만 한다고 해도, 한사람 당 최하 두명은 달라붙어야 수갑을 채울 수 있거든요. 여자 또는 체구가 왜소한 사람들이나 두명으로 통제가 되지, 힘이 센 몽골/우즈벡 사람이라면 서넛은 달라붙어야 합니다. 근육으로 뭉친 나이지리아 사람이라면? 너댓은 돼야 할 걸요?
여러분이 단속반이라면 어쩌시겠습니까? 안전하게 불체자가 서너명 있는 곳만 단속하고, 숫자가 많은 곳은 그냥 나몰라라 할까요? 아니면 다는 못 잡더라도 단속을 해서, 최소한 쫓아내기라도 해야할까요? 단속을 하지 않으면, 안전하다고 더 몰려듭니다. 그러면 결국 무법천지가 되어버리겠죠.
`
2. 단속된 불체자를 수갑 따위로 때려서 문제된 사건이 있었죠.
제가 아는 분이 계신 사무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그 분 말씀을 들어보니, 단속과정에서 각목과 소주병을 들고 공격을 했던 사람이라는 군요. 단속된 뒤에도 나이든 실장님께 침을 뱉으며 욕설을 퍼부었답니다. 그 꼴을 보다 못한 직원분이 마침 옆에 있던 수갑을 들고 때렸다는군요. 결국 때린 직원분은 사표를 써야 했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십시오. 수갑이 사람패기 좋은 도구인가요? 그거라도 들고 때릴 정도면 어떤 상황이었을까요? 그 때 그 자리에 여러분이 있었다면 어떻게 하셨을까요?
`
3. 얼마전 단속된 불체자가 사망한 사건이 있었죠. 어느 대학교수님께서는 함께 단속된 불체자들이 구타를 증언하고 있다며 '눈부처'를 바라보자는 칼럼까지 썼던 일입니다.
이 사건이 터진 곳에도 제가 아는 분이 계셔 사정을 들었습니다. 죽은 사람이 빠루[뭔지 모르시는 분을 위해 설명하자면, 통쇠로 된 공구입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보시면 쉽게 사진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를 들고 덤비기에, 단속반원이 옆에 있던 빗자루로 손목을 때렸을 뿐이랍니다. 그 이외의 구타는 없었고, 빗자루로 때린 손목에는 외상도 남지 않았을 정도라네요.
국과수 부검결과, 심장의 혈관 3개 가운데 하나는 아예 막혔고 하나는 거의 막혔던 것이 사인이라합니다[그 때문에 단속차량에 제세동기를 비치하는 조치가 이뤄지고 있죠].
덧붙이면, 이 사람의 죽음 뒤에도 역시나 보기 안좋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네요. 저는 잘 모르고/ 알아도 말할 처지는 아닙니다만, 사람의 죽음을 이용해 먹으려는 사람들은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합니다.
`
4.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만, 제가 겪은 일입니다.
단속을 나갔는데 불체자 십여명이 단속반을 밀어젖히고 우르르 도망가더군요[이 일도 단속반이 적어서 생긴 일입니다. 단속반이 많았으면 일어나지도 않았을 일이죠]. 그러다가 골조공사를 위해 세워둔 철근들을 마주치자, 그대로 뚫고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은 이 철근을 타넘으려다가, 그러지 못하고 매달리더군요. 직경이 30밀리쯤 되는 굵은 철근이었지만, 사람이 붙잡고 매달리자 휘어져버렸습니다. 그러면서 콘크리트 바닥에 뒤통수를 처박아버렸죠.
`
저는 바로 몇미터 뒤에서 그걸 봤습니다. 이런 말하기 뭐 합니다만, 순간 떠오른 것은 '불쌍하다'가 아니라 '실장님[단속반 책임자] 옷벗겠구나'였습니다.
`
한국인 노가다 아저씨들이 몰려와서 쌍욕을 퍼부으며 항의하더군요. 언론에서 흔히 떠드는 대로 '야만적인 불체자 단속에 격렬히 항의'했다고나 할까요? 단속을 시작하자마자 저리 된 일이고, 저 일 뒤에도 저희를 공격한 불체자가 없었기 때문에 저희가 때린 사람은 아예 없었는데도 그러더군요[건설현장에 일하는 한국인 노동자들의 태도를 보면 이건 아니다 싶은 경우도 많아요. 술에 취해 전화해서는 외국인이 저렇게 많아서 일감도 없고 일당도 오르지 않는데 왜 단속하지 않냐고 욕을 퍼붓다가도, 막상 단속을 나가면 아무 것도 안했는데도 쌍욕을 해대며 시비걸면서 한대 쳐보라고 하는 일도 많거든요].
`
119를 불러 병원으로 보내니, 의사가 심각하게 말했다는군요. 입원을 시켜놓고 돌아왔는데, 바로 그날 밤 환자가 달아나버렸습니다. 의사도 '야만적인 인간사냥꾼'보다는 '불쌍한 미등록외국인 노동자' 편이었던거죠.
`
5. 역시 제가 겪었던 일입니다.
단속된 외국인 하나가 눈치가 예사롭지 않더군요. 공연히 엄살을 피우는 꼴이 곧 무슨 짓 하겠구나 싶었습니다. 점심 때가 되어 단속차량이 멈춰서자, 화장실을 가겠다고 하더군요. 제가 화장실로 데려갔는데, 역시나 일을 보지 못하더군요[지켜보는 사람이 있으면 나오지 않는 것을 알기에 오래 기다려줬더니, 쪼르륵 하고 끝을 내더군요]. 화장실로 가며 감시가 덜한 틈에 달아나보려 했던 것이죠. 그 사람 수갑이 헐렁하기에 조이고[수갑이 헐렁하면 손목을 뺄 수 있습니다], 잔머리 쓰지 말라고 윽박지르며 돌아왔습니다.
돌아오자, 화장실에서 제가 때렸다고 다른 직원들에게 하소연하더군요. 그러자 놀라운 것은, 다른 직원들이 제가 때리기라도 한 듯 취급하는 것이었습니다. 어이가 없더군요. 모든 사람과 잘 지낼 수는 없고, 저를 좋지 않게 보는 동료도 있긴 했습니다만, 이런 식으로 될 줄은 몰랐습니다.
단속이 비전이 없다는 것은 진작부터 잘 알고 있었습니다만, 제 마음이 조사과를 완전히 떠난 것은 이 일 때문이었습니다. 개인사정으로 조금 더 있다가, 기회가 왔을 때 조사과를 떠났습니다.
`
단속이란게 험한 일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다 불필요한 누명까지 쓰게되면, 일하고 싶은게 이상한 거죠. 요즘들어 공무원 인기가 좋아졌다고는 해도, 공무원 조직이 일류급 인재들이 모이는 곳은 아닙니다. 그런데 단속분야는 기피보직이 되어버리면서, 결국 그나마 쓸만한 인재도 다른 곳으로 빠져나가게 되죠. 제가 처음 조사과에 왔을 때, 단속이 주먹구구로 이뤄진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게 무엇 때문일까요? 그리고 누구의 손해가 될까요?
`
누구나 잘못은 하고, 그에 대한 비판은 받아야 합니다. 시민이 공권력을 비판적으로 감시한다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없는 말 만들어가면서 물어뜯는 것이 바람직한 민주시민의 자세일까요?
`
****
`
이 글을 쓰다가 시간이 없어서 마무리를 못짓던 사이, 중국 어선을 단속하시던 해경분께서 순직하셨더군요.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희도 노가다판 등을 덮칠 때 일어나기 쉬운 일인데, 예전에 썼듯이 '무리한 추적은 자제해서' 일어나지 않을 뿐이죠. 해경은 배위라서 그러지 못해 일어난 일인 듯 합니다. 돌아가신 분의 명복을 빕니다.
`
이 일로 여론이 격앙되어 있더군요. 저건 어민이 아니라 해적이라고. 예 맞는 말입니다. 흉기를 휘두르면 사살이라도 해야 하는게 옳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저들도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인간이 원래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한편으로는 위험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불쌍한. 감옥의 범죄자들도 똑같습니다. 위험하니 감옥에 있어야 합니다만, 나름의 사연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죄에 맞게 엄벌에 처해야 마땅하고, 흉기를 들고 저항하는 자는 사살이라도 해야 마땅합니다만, 모든 일이 끝나고 나면, 죄는 미워해도 사람을 '필요 이상으로' 미워할 것 까지는 없는 것 같습니다. 저도 겪은 일이 있어서 이럽니다.
`
언젠가 갈고리를 든 불체자와 싸운 글을 썼습니다만, 그럴 뻔한 일이 또 있었습니다. 단속을 나갔는데, 불체자 한명이 한팔 길이 쇠갈고리를 꼬나잡고 슬금슬금 빠져나가더군요- 다가서기만 하면 찍어버릴 기세로. 제가 따라붙으니 지하실로 숨었습니다.
`
삼단봉으로는 도저히 해결이 되지 않을 일이라서 마침 옆에 있던 삽을 집어 들었습니다. 조명도 없는 지하실에 랜턴을 켜들고 내려가보니, 천장 배관에 매달려 숨어있더군요. 삽으로 엉덩이를 툭툭치면서 내려오라고 소리쳤습니다. 제가 삽을 들고 있어서인지, 싸울 생각은 않고 내려오더군요.
`
손에 갈고리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저도 삽을 내려놓았더니, 반항하려고 하더군요. 별 수 없이 때려잡았습니다[물론 삽이나 도구를 쓴 건 아니구요]. 수갑을 채워서 단속차량에 실어놓고, 시커멓게 뒤집어쓴 검댕을 털어내며[지하실에 검댕이 무척 많았습니다] 한숨 돌린 다음 돌아와보니, 얼굴에 눈물자국이 가득한 사십대 중반의 꾀죄죄한 아저씨가 앉아있더군요. 제게 얻어맞을 때 많이 무서웠나봅니다. 솔직히 저도 한팔길이 쇠갈고리만 보였지, 그 사람은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수갑채워 놓고 한숨돌리고 나니 사람으로 보이더군요. 중국 어민들도 이렇지 않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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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언젠가 베트남 불체자들의 도박모임을 단속하는 과정에서, 베트남인 둘이 추락사한 일이 있었죠. 경찰과 저희 쪽[제가 있는 곳이 아닌, 다른 사무소였습니다]의 합동단속이었습니다. 다행히[?!] 저희가 주관한 단속도 아니었고, 불법도박 건이라서 그런지 언론에서 그리 크게 문제삼지는 않아 그냥저냥 넘어간 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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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느 진보적 언론에서 단속대상보다 적은 인원을 투입하고 별다른 안전장치도 없었다며 비판하더군요. 한마디로 제대로 된 대비도 없이 단속해서 사람이 둘이나 죽은 것 아니냐는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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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가. 언론에도 보도되었습니다만, 단속전 들어온 첩보로는 도박판이 벌어질 곳은 지하였습니다.
나. 에어매트 등의 안전장비를 갖추면 좋겠습니다만, 경찰은 어떤지 몰라도 저희는 그런 장비 자체가 없습니다. 있다고 쳐도, 은밀히 덮쳐야 하는 단속의 특성상 사전에 안전장비를 설치해 둔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사전에 안전장비를 설치한다면? 안전장비 설치하는 걸 보고 단속 눈치채고 다른 방향으로 달아나다가 다른 사고가 나겠죠.
다. 30명 가까운 사람들이 모인 곳을 [경찰과 저희 다 합쳐]15명으로 단속한 것을 문제삼던데, 현실적으로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단속반이 기껏해야 열명도 안되는 사무소가 많습니다[큰 사무소는 좀 더 많습니다만, 그래봤자 뻔한 숫자입니다]. 단속시 상대보다 우리의 인원이 많은게 안전하다는 것은 저희가 가장 잘 압니다. 불체자가 저희를 공격하지 않고 몸싸움만 한다고 해도, 한사람 당 최하 두명은 달라붙어야 수갑을 채울 수 있거든요. 여자 또는 체구가 왜소한 사람들이나 두명으로 통제가 되지, 힘이 센 몽골/우즈벡 사람이라면 서넛은 달라붙어야 합니다. 근육으로 뭉친 나이지리아 사람이라면? 너댓은 돼야 할 걸요?
여러분이 단속반이라면 어쩌시겠습니까? 안전하게 불체자가 서너명 있는 곳만 단속하고, 숫자가 많은 곳은 그냥 나몰라라 할까요? 아니면 다는 못 잡더라도 단속을 해서, 최소한 쫓아내기라도 해야할까요? 단속을 하지 않으면, 안전하다고 더 몰려듭니다. 그러면 결국 무법천지가 되어버리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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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단속된 불체자를 수갑 따위로 때려서 문제된 사건이 있었죠.
제가 아는 분이 계신 사무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그 분 말씀을 들어보니, 단속과정에서 각목과 소주병을 들고 공격을 했던 사람이라는 군요. 단속된 뒤에도 나이든 실장님께 침을 뱉으며 욕설을 퍼부었답니다. 그 꼴을 보다 못한 직원분이 마침 옆에 있던 수갑을 들고 때렸다는군요. 결국 때린 직원분은 사표를 써야 했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십시오. 수갑이 사람패기 좋은 도구인가요? 그거라도 들고 때릴 정도면 어떤 상황이었을까요? 그 때 그 자리에 여러분이 있었다면 어떻게 하셨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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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얼마전 단속된 불체자가 사망한 사건이 있었죠. 어느 대학교수님께서는 함께 단속된 불체자들이 구타를 증언하고 있다며 '눈부처'를 바라보자는 칼럼까지 썼던 일입니다.
이 사건이 터진 곳에도 제가 아는 분이 계셔 사정을 들었습니다. 죽은 사람이 빠루[뭔지 모르시는 분을 위해 설명하자면, 통쇠로 된 공구입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보시면 쉽게 사진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를 들고 덤비기에, 단속반원이 옆에 있던 빗자루로 손목을 때렸을 뿐이랍니다. 그 이외의 구타는 없었고, 빗자루로 때린 손목에는 외상도 남지 않았을 정도라네요.
국과수 부검결과, 심장의 혈관 3개 가운데 하나는 아예 막혔고 하나는 거의 막혔던 것이 사인이라합니다[그 때문에 단속차량에 제세동기를 비치하는 조치가 이뤄지고 있죠].
덧붙이면, 이 사람의 죽음 뒤에도 역시나 보기 안좋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네요. 저는 잘 모르고/ 알아도 말할 처지는 아닙니다만, 사람의 죽음을 이용해 먹으려는 사람들은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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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만, 제가 겪은 일입니다.
단속을 나갔는데 불체자 십여명이 단속반을 밀어젖히고 우르르 도망가더군요[이 일도 단속반이 적어서 생긴 일입니다. 단속반이 많았으면 일어나지도 않았을 일이죠]. 그러다가 골조공사를 위해 세워둔 철근들을 마주치자, 그대로 뚫고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은 이 철근을 타넘으려다가, 그러지 못하고 매달리더군요. 직경이 30밀리쯤 되는 굵은 철근이었지만, 사람이 붙잡고 매달리자 휘어져버렸습니다. 그러면서 콘크리트 바닥에 뒤통수를 처박아버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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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바로 몇미터 뒤에서 그걸 봤습니다. 이런 말하기 뭐 합니다만, 순간 떠오른 것은 '불쌍하다'가 아니라 '실장님[단속반 책임자] 옷벗겠구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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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노가다 아저씨들이 몰려와서 쌍욕을 퍼부으며 항의하더군요. 언론에서 흔히 떠드는 대로 '야만적인 불체자 단속에 격렬히 항의'했다고나 할까요? 단속을 시작하자마자 저리 된 일이고, 저 일 뒤에도 저희를 공격한 불체자가 없었기 때문에 저희가 때린 사람은 아예 없었는데도 그러더군요[건설현장에 일하는 한국인 노동자들의 태도를 보면 이건 아니다 싶은 경우도 많아요. 술에 취해 전화해서는 외국인이 저렇게 많아서 일감도 없고 일당도 오르지 않는데 왜 단속하지 않냐고 욕을 퍼붓다가도, 막상 단속을 나가면 아무 것도 안했는데도 쌍욕을 해대며 시비걸면서 한대 쳐보라고 하는 일도 많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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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를 불러 병원으로 보내니, 의사가 심각하게 말했다는군요. 입원을 시켜놓고 돌아왔는데, 바로 그날 밤 환자가 달아나버렸습니다. 의사도 '야만적인 인간사냥꾼'보다는 '불쌍한 미등록외국인 노동자' 편이었던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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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역시 제가 겪었던 일입니다.
단속된 외국인 하나가 눈치가 예사롭지 않더군요. 공연히 엄살을 피우는 꼴이 곧 무슨 짓 하겠구나 싶었습니다. 점심 때가 되어 단속차량이 멈춰서자, 화장실을 가겠다고 하더군요. 제가 화장실로 데려갔는데, 역시나 일을 보지 못하더군요[지켜보는 사람이 있으면 나오지 않는 것을 알기에 오래 기다려줬더니, 쪼르륵 하고 끝을 내더군요]. 화장실로 가며 감시가 덜한 틈에 달아나보려 했던 것이죠. 그 사람 수갑이 헐렁하기에 조이고[수갑이 헐렁하면 손목을 뺄 수 있습니다], 잔머리 쓰지 말라고 윽박지르며 돌아왔습니다.
돌아오자, 화장실에서 제가 때렸다고 다른 직원들에게 하소연하더군요. 그러자 놀라운 것은, 다른 직원들이 제가 때리기라도 한 듯 취급하는 것이었습니다. 어이가 없더군요. 모든 사람과 잘 지낼 수는 없고, 저를 좋지 않게 보는 동료도 있긴 했습니다만, 이런 식으로 될 줄은 몰랐습니다.
단속이 비전이 없다는 것은 진작부터 잘 알고 있었습니다만, 제 마음이 조사과를 완전히 떠난 것은 이 일 때문이었습니다. 개인사정으로 조금 더 있다가, 기회가 왔을 때 조사과를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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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속이란게 험한 일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다 불필요한 누명까지 쓰게되면, 일하고 싶은게 이상한 거죠. 요즘들어 공무원 인기가 좋아졌다고는 해도, 공무원 조직이 일류급 인재들이 모이는 곳은 아닙니다. 그런데 단속분야는 기피보직이 되어버리면서, 결국 그나마 쓸만한 인재도 다른 곳으로 빠져나가게 되죠. 제가 처음 조사과에 왔을 때, 단속이 주먹구구로 이뤄진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게 무엇 때문일까요? 그리고 누구의 손해가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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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잘못은 하고, 그에 대한 비판은 받아야 합니다. 시민이 공권력을 비판적으로 감시한다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없는 말 만들어가면서 물어뜯는 것이 바람직한 민주시민의 자세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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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다가 시간이 없어서 마무리를 못짓던 사이, 중국 어선을 단속하시던 해경분께서 순직하셨더군요.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희도 노가다판 등을 덮칠 때 일어나기 쉬운 일인데, 예전에 썼듯이 '무리한 추적은 자제해서' 일어나지 않을 뿐이죠. 해경은 배위라서 그러지 못해 일어난 일인 듯 합니다. 돌아가신 분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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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로 여론이 격앙되어 있더군요. 저건 어민이 아니라 해적이라고. 예 맞는 말입니다. 흉기를 휘두르면 사살이라도 해야 하는게 옳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저들도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인간이 원래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한편으로는 위험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불쌍한. 감옥의 범죄자들도 똑같습니다. 위험하니 감옥에 있어야 합니다만, 나름의 사연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죄에 맞게 엄벌에 처해야 마땅하고, 흉기를 들고 저항하는 자는 사살이라도 해야 마땅합니다만, 모든 일이 끝나고 나면, 죄는 미워해도 사람을 '필요 이상으로' 미워할 것 까지는 없는 것 같습니다. 저도 겪은 일이 있어서 이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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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갈고리를 든 불체자와 싸운 글을 썼습니다만, 그럴 뻔한 일이 또 있었습니다. 단속을 나갔는데, 불체자 한명이 한팔 길이 쇠갈고리를 꼬나잡고 슬금슬금 빠져나가더군요- 다가서기만 하면 찍어버릴 기세로. 제가 따라붙으니 지하실로 숨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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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단봉으로는 도저히 해결이 되지 않을 일이라서 마침 옆에 있던 삽을 집어 들었습니다. 조명도 없는 지하실에 랜턴을 켜들고 내려가보니, 천장 배관에 매달려 숨어있더군요. 삽으로 엉덩이를 툭툭치면서 내려오라고 소리쳤습니다. 제가 삽을 들고 있어서인지, 싸울 생각은 않고 내려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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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갈고리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저도 삽을 내려놓았더니, 반항하려고 하더군요. 별 수 없이 때려잡았습니다[물론 삽이나 도구를 쓴 건 아니구요]. 수갑을 채워서 단속차량에 실어놓고, 시커멓게 뒤집어쓴 검댕을 털어내며[지하실에 검댕이 무척 많았습니다] 한숨 돌린 다음 돌아와보니, 얼굴에 눈물자국이 가득한 사십대 중반의 꾀죄죄한 아저씨가 앉아있더군요. 제게 얻어맞을 때 많이 무서웠나봅니다. 솔직히 저도 한팔길이 쇠갈고리만 보였지, 그 사람은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수갑채워 놓고 한숨돌리고 나니 사람으로 보이더군요. 중국 어민들도 이렇지 않을까 싶어요.
2011년 11월 26일 토요일
국무상강 무상약 (國無常强 無常弱)
제가 일을 하다 보면 여러 나라 사람들과 만나게 됩니다. 그러다보니 느끼게 되는 것이 있더군요.
얼마전 러시아가 불법체류 다발국가 명단에서 빠졌습니다.
세계를 호령하던 소련이 무너지면서, 그 나라 사람들은 살아보겠다고 여기저기로 흘러가게 되었죠. 그러면서 우리나라에 와서 이런저런 사고도 많이 쳤습니다. 불법체류는 물론이고 총기밀수나 성매매까지.
그런데 지금은 한풀 꺾인 느낌입니다.
제가 있는 쪽에서는 불체자단속을 하면서 러시아 사람을 잡은 일은 많지 않거든요.
언젠가 러시아 여성분의 일을 처리한 적이 몇번 있었습니다. 기록을 보니 몇년 전만해도 몸을 팔던 분들이었습니다만, 지금은 직장인이나 가정주부로 평범하게 살고 있더군요. 과거는 가슴에 잘 묻어두었겠죠. 예전엔 러시아 아가씨들이 있던 업소에 지금은 다른 나라 아가씨들이 더 많은 듯 합니다. 물론 부산이나 동해같은 항만지역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래서 불체다발국 명단에서도 빠지게 되었겠죠. 러시아가 다시 세계를 호령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한고비 넘긴 것은 확실합니다.
유흥업소에서 러시아 아가씨들이 빠져나간 자리를 필리핀 아가씨들이 메꿔버린 듯 합니다. 필리핀 사람들이 불체하다 잡히는 일도 많고, 우리나라에서 살아보려고 늙은 우리나라 남자와 결혼하는 아가씨들도 많습니다.
불과 수십년 전만해도 필리핀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잘 살던 나라였죠. 황석영 선생의 무기의 그늘이었던가요? 수세식 화장실을 어떻게 쓰는 지 몰라, 좌변기 위에 쪼그리고 앉아 일을 보는 우리나라 사람들을 비웃던 필리핀 선원들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그 시절을 기억하는 필리핀 사람들은 오늘날 어떤 심정일까요?
몽골을 보면 더합니다.
제가 일하는 사무소 바로 옆에는 작은 산이 하나 있습니다. 그 곳에 산성이 있구요. 몽골의 침입 때, 사람들이 산성 안의 샘물 덕분에 간신히 살아남게 되면서 산 이름까지 바뀌었죠[몽골침입 당시 춘주성에서는 물이 떨어져 모두 죽은 일이 있다는데, 샘물이 아니었으면 이곳도 그리 되었겠죠].
그렇게 우리나라를 휩쓸던 몽골사람들. 지금은 우리나라에서 궂은 일 하면서 어렵게 사는 일이 많습니다. 어떻게든 우리나라에 더 머물러 보려 아쉬운 소리하는 / 불체하다 단속된 몽골인들이 저희 사무소를 드나들고 있죠.
베트남을 보면, 지금은 어렵지만 앞으로는 달라질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똘똘한 친구들이 많이 눈에 띄거든요. 지금 베트남 사람들이 고생하는 것은 머지않아 옛이야기가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나라는 어찌될까요? 언젠가는 힘든 시절이 다시 오게 되겠지만, 적어도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더 뻗어나가게 애써야겠죠.
얼마전 러시아가 불법체류 다발국가 명단에서 빠졌습니다.
세계를 호령하던 소련이 무너지면서, 그 나라 사람들은 살아보겠다고 여기저기로 흘러가게 되었죠. 그러면서 우리나라에 와서 이런저런 사고도 많이 쳤습니다. 불법체류는 물론이고 총기밀수나 성매매까지.
그런데 지금은 한풀 꺾인 느낌입니다.
제가 있는 쪽에서는 불체자단속을 하면서 러시아 사람을 잡은 일은 많지 않거든요.
언젠가 러시아 여성분의 일을 처리한 적이 몇번 있었습니다. 기록을 보니 몇년 전만해도 몸을 팔던 분들이었습니다만, 지금은 직장인이나 가정주부로 평범하게 살고 있더군요. 과거는 가슴에 잘 묻어두었겠죠. 예전엔 러시아 아가씨들이 있던 업소에 지금은 다른 나라 아가씨들이 더 많은 듯 합니다. 물론 부산이나 동해같은 항만지역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래서 불체다발국 명단에서도 빠지게 되었겠죠. 러시아가 다시 세계를 호령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한고비 넘긴 것은 확실합니다.
유흥업소에서 러시아 아가씨들이 빠져나간 자리를 필리핀 아가씨들이 메꿔버린 듯 합니다. 필리핀 사람들이 불체하다 잡히는 일도 많고, 우리나라에서 살아보려고 늙은 우리나라 남자와 결혼하는 아가씨들도 많습니다.
불과 수십년 전만해도 필리핀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잘 살던 나라였죠. 황석영 선생의 무기의 그늘이었던가요? 수세식 화장실을 어떻게 쓰는 지 몰라, 좌변기 위에 쪼그리고 앉아 일을 보는 우리나라 사람들을 비웃던 필리핀 선원들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그 시절을 기억하는 필리핀 사람들은 오늘날 어떤 심정일까요?
몽골을 보면 더합니다.
제가 일하는 사무소 바로 옆에는 작은 산이 하나 있습니다. 그 곳에 산성이 있구요. 몽골의 침입 때, 사람들이 산성 안의 샘물 덕분에 간신히 살아남게 되면서 산 이름까지 바뀌었죠[몽골침입 당시 춘주성에서는 물이 떨어져 모두 죽은 일이 있다는데, 샘물이 아니었으면 이곳도 그리 되었겠죠].
그렇게 우리나라를 휩쓸던 몽골사람들. 지금은 우리나라에서 궂은 일 하면서 어렵게 사는 일이 많습니다. 어떻게든 우리나라에 더 머물러 보려 아쉬운 소리하는 / 불체하다 단속된 몽골인들이 저희 사무소를 드나들고 있죠.
베트남을 보면, 지금은 어렵지만 앞으로는 달라질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똘똘한 친구들이 많이 눈에 띄거든요. 지금 베트남 사람들이 고생하는 것은 머지않아 옛이야기가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나라는 어찌될까요? 언젠가는 힘든 시절이 다시 오게 되겠지만, 적어도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더 뻗어나가게 애써야겠죠.
2011년 11월 20일 일요일
외국인노동자의 임금체불
모든 직장인들이 그렇듯, 외국인근로자들도 임금을 받지 못할 수 있죠. 예전에는 이 때문에 많은 피해가 있었던 듯 싶습니다.
불법체류를 하면서 일했던 사람들이 아무래도 임금체불의 위험이 크죠. 많은 사람의 오해와는 달리, 이들도 법적 구제가 가능합니다. 불법체류 여부와 상관없이 노동관계법이 적용된다는 것이 판례의 확고한 입장이고, 저희도 불체자들이 권리구제절차를 밟는 경우에는, 합법적으로 체류할 수 있도록 조치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개입해야만 불체자가 밀린 월급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불법체류의 경우 유효한 외국인등록증이 없어서 금융거래가 힘들죠(금융기관쪽 얘기를 들어보면, 여권만으로도 금융거래가 가능하다고는 합니다만, 많은 금융기관에서 외국인등록증이 없으면 금융거래를 해주지 않는다고 하네요). 모든 일이 잘 풀려서 밀린 월급을 그냥 현찰로 주고받는 경우라면 그럴 필요가 없지만, 각종 구제절차를 거쳐 국가기관이나 보험사가 임금을 지급해주는 경우에는 불체자 명의의 예금계좌로 입금해줘야 하나봅니다. 이 때문에 저희를 찾아오는 불체자들도 없지 않습니다.
[여담입니다만, 불체자들이 저희를 찾아오는 또 한가지 이유는 의료보험 문제입니다. 의료보험혜택을 받기 위해서 합법체류자로 자격변경이 필요할 때죠. 따지고 보면, 둘 다 돈문제군요.]
다만 불체자의 임금과 관련해서는 문제가 두가지 있습니다. 이들은 불체상태이기 때문에 법적으로 대처할 생각을 못하는 일이 많고, 고용주가 정말로 돈이 없다면 어떻게 할 수가 없게되죠.
합법체류자의 경우 임금체불을 대비한 보험을 들어두게 됩니다. 보험으로 모든 것이 해결 가능하죠. 그런데 이를 악용하는 사람들도 있더군요. 무슨 말인가 하면..
단순노무를 하는 외국인근로자들은 우리나라에 머물 수 있는 기간이 정해져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그 기한이 다가오면 어떻게든 눌러앉아 보려고 이런저런 머리를 굴려보죠. 우리나라 여자와 결혼하겠다는 사람, 우리나라 사람에게 입양되었다는 사람, 느닷없이 난민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난민신청자가 2009년 즈음부터 급증했죠. 일반인들은 잘 모르시겠지만 실제 이유는 이 때문입니다. 제가 난민인정업무를 해보진 않았습니다만, 난민신청자들의 체류자격변경 신청건은 가끔 다뤄봤습니다. 신청인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뻔히 보이는 경우가 상당수였습니다. '어? 이거 진짠가?' 싶었던 건도 한두군데 전화 걸어보니 불법취업이 드러나기도 하더군요]....
이런 건들은 아예 눌러앉아보려고 머리를 쓰고 발품도 많이 파는 경우이고, 간단하게 몇 달 더 버티는 방법이 임금체불이라며 구제절차를 밟는 것입니다. 대개는 고용주와 짜는 눈치더군요. 심각한 임금체불문제가 되어서 고용주가 불이익을 받지 않을만한 선까지 버티다가, '이제 돈 다 받았다'며 나가는 것이죠. 그 동안 외국인근로자는 몇 달 더 돈을 벌고, 고용주는 한국인보다 싼 값에 외국인인력을 계속 쓰는 것이구요.
물론 이는 불법취업/불법고용으로, 단속되면 고용주는 범칙금을 세게 맞습니다만, 현실적으로 모든 업체를 다 단속되지는 않으니까 자주 써먹게 되나 봅니다.
외국인근로자의 임금체불 문제가 나오면, 이런 사정이 있어서 통계상 임금체불 건이 많아진다는 것도 알아주시길 바랍니다.
불법체류를 하면서 일했던 사람들이 아무래도 임금체불의 위험이 크죠. 많은 사람의 오해와는 달리, 이들도 법적 구제가 가능합니다. 불법체류 여부와 상관없이 노동관계법이 적용된다는 것이 판례의 확고한 입장이고, 저희도 불체자들이 권리구제절차를 밟는 경우에는, 합법적으로 체류할 수 있도록 조치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개입해야만 불체자가 밀린 월급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불법체류의 경우 유효한 외국인등록증이 없어서 금융거래가 힘들죠(금융기관쪽 얘기를 들어보면, 여권만으로도 금융거래가 가능하다고는 합니다만, 많은 금융기관에서 외국인등록증이 없으면 금융거래를 해주지 않는다고 하네요). 모든 일이 잘 풀려서 밀린 월급을 그냥 현찰로 주고받는 경우라면 그럴 필요가 없지만, 각종 구제절차를 거쳐 국가기관이나 보험사가 임금을 지급해주는 경우에는 불체자 명의의 예금계좌로 입금해줘야 하나봅니다. 이 때문에 저희를 찾아오는 불체자들도 없지 않습니다.
[여담입니다만, 불체자들이 저희를 찾아오는 또 한가지 이유는 의료보험 문제입니다. 의료보험혜택을 받기 위해서 합법체류자로 자격변경이 필요할 때죠. 따지고 보면, 둘 다 돈문제군요.]
다만 불체자의 임금과 관련해서는 문제가 두가지 있습니다. 이들은 불체상태이기 때문에 법적으로 대처할 생각을 못하는 일이 많고, 고용주가 정말로 돈이 없다면 어떻게 할 수가 없게되죠.
합법체류자의 경우 임금체불을 대비한 보험을 들어두게 됩니다. 보험으로 모든 것이 해결 가능하죠. 그런데 이를 악용하는 사람들도 있더군요. 무슨 말인가 하면..
단순노무를 하는 외국인근로자들은 우리나라에 머물 수 있는 기간이 정해져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그 기한이 다가오면 어떻게든 눌러앉아 보려고 이런저런 머리를 굴려보죠. 우리나라 여자와 결혼하겠다는 사람, 우리나라 사람에게 입양되었다는 사람, 느닷없이 난민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난민신청자가 2009년 즈음부터 급증했죠. 일반인들은 잘 모르시겠지만 실제 이유는 이 때문입니다. 제가 난민인정업무를 해보진 않았습니다만, 난민신청자들의 체류자격변경 신청건은 가끔 다뤄봤습니다. 신청인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뻔히 보이는 경우가 상당수였습니다. '어? 이거 진짠가?' 싶었던 건도 한두군데 전화 걸어보니 불법취업이 드러나기도 하더군요]....
이런 건들은 아예 눌러앉아보려고 머리를 쓰고 발품도 많이 파는 경우이고, 간단하게 몇 달 더 버티는 방법이 임금체불이라며 구제절차를 밟는 것입니다. 대개는 고용주와 짜는 눈치더군요. 심각한 임금체불문제가 되어서 고용주가 불이익을 받지 않을만한 선까지 버티다가, '이제 돈 다 받았다'며 나가는 것이죠. 그 동안 외국인근로자는 몇 달 더 돈을 벌고, 고용주는 한국인보다 싼 값에 외국인인력을 계속 쓰는 것이구요.
물론 이는 불법취업/불법고용으로, 단속되면 고용주는 범칙금을 세게 맞습니다만, 현실적으로 모든 업체를 다 단속되지는 않으니까 자주 써먹게 되나 봅니다.
외국인근로자의 임금체불 문제가 나오면, 이런 사정이 있어서 통계상 임금체불 건이 많아진다는 것도 알아주시길 바랍니다.
2011년 10월 16일 일요일
환부역조[換父易祖]
모욕 가운데 가장 심한 것이 부모와 관련된 모욕이죠. 한 입으로 두말하면 아버지가 둘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버지는 하나 뿐일 수 밖에 없는데, 둘 이상이라면 아주 상식적이지 않은[?] 일이니까요[물론 어릴 때 어머니가 재혼한다든지, 아니면 아예 고아원에서 입양되었다든지 해서 친아버지와 양아버지가 계실 수는 있습니다. 그런 가슴아픈 일을 겪은 분들께 할 말은 전혀 아니겠죠].
그런데... 우리나라에 들어오기 위해/ 더 머물기 위해/ 영주권이나 국적을 따기 위해 멀쩡한 아버지를 갈아치우는 일들도 일어납니다. 우리 국민의 외국인 자녀는 F-2-2 라는 체류자격으로 우리나라에 머물 수도 있고, 일정요건을 갖추면 영주권이나 국적도 신청할 수 있거든요. 이 시대의 환부역조[換父易祖]랄까요?
가장 흔한 방식이 아주머니가 국제결혼으로 시집온 다음, 아들이나 딸[물론 갓난아이나 어린아이는 아니죠. 그런 사람들은 의심도 안합니다.]을 새 남편에게 입양시키는 것입니다. 물론 위에서 쓴 것처럼 가슴아픈 집안 일인 경우도 있습니다만, 위장결혼이라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아무리 다른 나라 사람이니 그 이름을 외우기 힘들다고는 해도, 몇달씩 같이 살아왔고 지금도 집에서 함께 잘 살고 있다고 주장하는 '자기 아들'의 이름도 잘 모르는 사람을 보면 의심을 안할 수 없죠.
심지어는 '아버지 갈아타기'도 합니다. '남편 갈아타기'와 함께 하더군요. 처음 그런 사람을 봤을 때, 참 당황했습니다. 남편 갈아타기야 하도 봐서 그러려니 하고, 나름 이런저런 꼴 많이 봤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아버지 갈아타기'는 충격력이 컸습니다. 무슨 삼국지의 여포도 아니고, 아버지가 셋이라니...
조선족의 경우, '외국국적동포'로서 여러가지 혜택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국적취득 요건이 갖추어지면, 현 체류자격이나 체류기간을 묻지 않고 바로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죠. 그래서 국제결혼해서 온 아주머니의 아들/딸들이 계부에게 입양되어 국적법 7조의 특별귀화자로서 영주권이나 국적을 신청하는 일도 많고, 돌아가신 아버지가 우리나라 제적등본에 남아있다면서 국적법 6조의 간이귀화자로서 영주권이나 국적을 신청하는 일도 많습니다.
앞의 경우는 위에서 다룬 것과 같고, 뒤의 경우는 참 큰일입니다. '내가 누구 아들이다'라면서 영주권이나 국적을 신청하는데, 문제는 그 사람이 해방 전 중국으로 건너가 중국에서 죽은 사람이라는 거죠. 한마디로 확인이 거의 불가능한 것입니다. 심지어 우리나라 제적등본의 인적사항이 중국 호구부의 인적사항과 다른 경우도 많은데, 당시 시대상황을 생각하면 이해할 수도 있는 일이겠습니다만, 한편으로는 그 처럼 악용하기 좋은 상황도 없죠. 요즘은 검찰 쪽과 연계해서 유전자감정을 하고 있습니다만, 전에 국적이나 영주권을 취득한 사람 가운데 할아버지나 아버지를 갈아치운 사람은 얼마나 될 지 알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에는 단순노무인력도 많이 들어와 있습니다. E-9이라고 해서 각종 공장이나 농장 등 중소업체에서 일하는 분들인데, 흔히 외국인노동자라고 하면 떠올리는 그 분들이죠. 언젠가도 말씀드렸다시피, 이분들은 우리나라에서 머물 수 있는 기한이 정해져 있습니다. 이분들이 무더기로 국적을 취득했다가는 어떠한 일이 벌어질 지 알 수 없거든요. 그런데 단순노무인력 가운데 상당수가 머물 수 있는 기한이 끝났습니다. 그러자 더 머물려고 이리저리 찔러보는 일이 많은데, 어떤 사람은 아예 양자로 들어가더군요. 어떤 아주머니의 양자로 들어갔는데, 두 사람의 태도를 보고 있자면 뭔가 묘한 분위기가 느껴지더군요. 양어머니의 적극적인 애정표현을 양자가 참고 견디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아무튼 국민의 양자라도 성년인 사람은 F-1자격을 가질 수 있는데, 쉽지는 않습니다. 이 사람도 -제가 따로 찾아보진 않았습니다만 아마도- 생각대로 되지는 않았을 것 같네요.
아무튼 어찌되었던 저렇게 해서라도 뜻을 이루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아무래도 일찍부터 들어왔고/국제결혼도 많이 했고/외국국적동포로서 혜택도 있는 조선족이 많죠. 각종 언론에서 조선족들이 한국에 와서 돈은 많이 벌었지만 가정이 깨지는 일도 많다는 이야기를 보신 일이 있으실 겁니다. 모르긴 해도, 그 가운데 상당수는 저 얘기가 아닌가 싶어요.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돈 벌어보려고 아버지를 갈아치웠는데 집안이 무사하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겠죠.
뜻은 이루었겠지만, 그래서 더 좋아졌는지는 모르겠네요.
그런데... 우리나라에 들어오기 위해/ 더 머물기 위해/ 영주권이나 국적을 따기 위해 멀쩡한 아버지를 갈아치우는 일들도 일어납니다. 우리 국민의 외국인 자녀는 F-2-2 라는 체류자격으로 우리나라에 머물 수도 있고, 일정요건을 갖추면 영주권이나 국적도 신청할 수 있거든요. 이 시대의 환부역조[換父易祖]랄까요?
가장 흔한 방식이 아주머니가 국제결혼으로 시집온 다음, 아들이나 딸[물론 갓난아이나 어린아이는 아니죠. 그런 사람들은 의심도 안합니다.]을 새 남편에게 입양시키는 것입니다. 물론 위에서 쓴 것처럼 가슴아픈 집안 일인 경우도 있습니다만, 위장결혼이라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아무리 다른 나라 사람이니 그 이름을 외우기 힘들다고는 해도, 몇달씩 같이 살아왔고 지금도 집에서 함께 잘 살고 있다고 주장하는 '자기 아들'의 이름도 잘 모르는 사람을 보면 의심을 안할 수 없죠.
심지어는 '아버지 갈아타기'도 합니다. '남편 갈아타기'와 함께 하더군요. 처음 그런 사람을 봤을 때, 참 당황했습니다. 남편 갈아타기야 하도 봐서 그러려니 하고, 나름 이런저런 꼴 많이 봤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아버지 갈아타기'는 충격력이 컸습니다. 무슨 삼국지의 여포도 아니고, 아버지가 셋이라니...
조선족의 경우, '외국국적동포'로서 여러가지 혜택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국적취득 요건이 갖추어지면, 현 체류자격이나 체류기간을 묻지 않고 바로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죠. 그래서 국제결혼해서 온 아주머니의 아들/딸들이 계부에게 입양되어 국적법 7조의 특별귀화자로서 영주권이나 국적을 신청하는 일도 많고, 돌아가신 아버지가 우리나라 제적등본에 남아있다면서 국적법 6조의 간이귀화자로서 영주권이나 국적을 신청하는 일도 많습니다.
앞의 경우는 위에서 다룬 것과 같고, 뒤의 경우는 참 큰일입니다. '내가 누구 아들이다'라면서 영주권이나 국적을 신청하는데, 문제는 그 사람이 해방 전 중국으로 건너가 중국에서 죽은 사람이라는 거죠. 한마디로 확인이 거의 불가능한 것입니다. 심지어 우리나라 제적등본의 인적사항이 중국 호구부의 인적사항과 다른 경우도 많은데, 당시 시대상황을 생각하면 이해할 수도 있는 일이겠습니다만, 한편으로는 그 처럼 악용하기 좋은 상황도 없죠. 요즘은 검찰 쪽과 연계해서 유전자감정을 하고 있습니다만, 전에 국적이나 영주권을 취득한 사람 가운데 할아버지나 아버지를 갈아치운 사람은 얼마나 될 지 알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에는 단순노무인력도 많이 들어와 있습니다. E-9이라고 해서 각종 공장이나 농장 등 중소업체에서 일하는 분들인데, 흔히 외국인노동자라고 하면 떠올리는 그 분들이죠. 언젠가도 말씀드렸다시피, 이분들은 우리나라에서 머물 수 있는 기한이 정해져 있습니다. 이분들이 무더기로 국적을 취득했다가는 어떠한 일이 벌어질 지 알 수 없거든요. 그런데 단순노무인력 가운데 상당수가 머물 수 있는 기한이 끝났습니다. 그러자 더 머물려고 이리저리 찔러보는 일이 많은데, 어떤 사람은 아예 양자로 들어가더군요. 어떤 아주머니의 양자로 들어갔는데, 두 사람의 태도를 보고 있자면 뭔가 묘한 분위기가 느껴지더군요. 양어머니의 적극적인 애정표현을 양자가 참고 견디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아무튼 국민의 양자라도 성년인 사람은 F-1자격을 가질 수 있는데, 쉽지는 않습니다. 이 사람도 -제가 따로 찾아보진 않았습니다만 아마도- 생각대로 되지는 않았을 것 같네요.
아무튼 어찌되었던 저렇게 해서라도 뜻을 이루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아무래도 일찍부터 들어왔고/국제결혼도 많이 했고/외국국적동포로서 혜택도 있는 조선족이 많죠. 각종 언론에서 조선족들이 한국에 와서 돈은 많이 벌었지만 가정이 깨지는 일도 많다는 이야기를 보신 일이 있으실 겁니다. 모르긴 해도, 그 가운데 상당수는 저 얘기가 아닌가 싶어요.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돈 벌어보려고 아버지를 갈아치웠는데 집안이 무사하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겠죠.
뜻은 이루었겠지만, 그래서 더 좋아졌는지는 모르겠네요.
2011년 10월 9일 일요일
임신
국내 체류중인 불체자 등이 임신을 한 것을 가끔 보게 됩니다. 물론 우리 국민과의 사이에서 아이를 가진 것이라면 국내에서 그 사람과 혼인관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게 됩니다만, 같은 불체자와의 사이에서 아이를 가진 경우라면 자기나라로 돌려보내야죠.
언젠가 만삭의 불체자에 대한 글에 썼듯이 어느 정도 융통성을 발휘할 여지가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외부기관에서 받아온 건이라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불체를 하다보면 몸도 마음도 힘들겠죠. 그때 같은 나라 사람이 곁에 있으면, 정도 들고 함께 하게 되겠죠. 그러다보면 아이도 생기게 될 테고.
그런데... 그러다가 여자가 잡혔을 때, 남자가 제발로 오는 경우는 별로 못본 것 같습니다.
물론 불체자판 기러기아빠가 되어, 여자와 아이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돈을 벌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만...
한편으로는 나중에 자기 나라로 돌아가서, 먼저 온 여자와 아이를 찾긴 할까 싶기도 해요.
언젠가 단속에서, 여자가 잡히던 말던 열심히 도망가던 녀석이 떠올라서 이렇게 생각하게 될지도 모르겠네요. 잡고나서 왜 여자는 팽개치고 갔냐고 하니, 멋적게 웃기만 하던데...
언젠가 만삭의 불체자에 대한 글에 썼듯이 어느 정도 융통성을 발휘할 여지가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외부기관에서 받아온 건이라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불체를 하다보면 몸도 마음도 힘들겠죠. 그때 같은 나라 사람이 곁에 있으면, 정도 들고 함께 하게 되겠죠. 그러다보면 아이도 생기게 될 테고.
그런데... 그러다가 여자가 잡혔을 때, 남자가 제발로 오는 경우는 별로 못본 것 같습니다.
물론 불체자판 기러기아빠가 되어, 여자와 아이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돈을 벌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만...
한편으로는 나중에 자기 나라로 돌아가서, 먼저 온 여자와 아이를 찾긴 할까 싶기도 해요.
언젠가 단속에서, 여자가 잡히던 말던 열심히 도망가던 녀석이 떠올라서 이렇게 생각하게 될지도 모르겠네요. 잡고나서 왜 여자는 팽개치고 갔냐고 하니, 멋적게 웃기만 하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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