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사무소는 항만에 있습니다. 부둣가 가건물에 세들어 있지요.
얼마전 비가 내리던 날, 동료와 점심을 먹으러 가고 있었습니다.
길로도 갈 수 있고, 부둣가로 갈 수도 있는 갈림길에서, 별 생각없이 부둣가로 갔습니다. 냄새도 나고 더럽기도 하지만, 웬지 길보다는 부둣가가 좋거든요. 동료도 별 생각없이 따라왔습니다.
부둣가에 접어들자 마자, 바다에 사람이 하나 엎어진채 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를 흘낏 보더니 한 손을 조금 움직이더군요.
어처구니없게도, 처음에 든 생각은 '저 사람 수영하나?'였습니다. 해수욕장도 아니었고, 옷을 다 입고 있었는데도 말입니다. 두어걸음 옮기자 상황파악이 되더군요[2~3초 쯤 걸렸을 겁니다] .
일단 급하게 해경 122에 신고했습니다[부둣가에 있어서, 해경쪽 광고 전광판을 자주 봤기에 전화번호는 알고 있었습니다].
전화를 끊자마자 들고있던 우산을 팽개치고, 그 사람 옆에 정박해 있는 작은 어선으로 뛰어올라갔습니다. 그 상황에서도 물에 뛰어들면 함께 빠져죽으니, 밧줄이나 장대로 구해야 한다는 것은 생각나더군요.
올라가보니 어선에서 쓰는 굵은 호스가 있었습니다. '아저씨 아저씨'하고 소리지르면서 호스를 그 사람쪽으로 던졌습니다. 호스도 닿지 않았고, 그 사람도 반응이 없었습니다. 호스를 있던 곳에 던져놓고 다른 것을 찾아 두리번 거리는데, 119에 신고를 마친 동료가 장대를 쓰라고 하더군요. 어선이라서 그랬는지, 선실 위에 대나무 장대와 갈고리가 달린 대나무 장대가 있었습니다만 닿지가 않더군요.
수십미터 옆에 낚시꾼들이 있었습니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낚싯대를 가져오라고 하니[낚싯대로 끌어당겨 보려는 생각이었습니다], 몇 분이 달려오셨습니다. 아저씨 두 분이 상황을 보더니, 안되겠다면서 옷을 벗고 바다로 뛰어드셨습니다. 마침 뱃머리에 굵은 밧줄이 있어서 던져드렸습니다[이제와 생각해보면, 호스나 장대보다 훨씬 눈에 띄기 좋게 있었는데 처음엔 왜 못봤는지 모르겠습니다].
사람 둘이 뛰어들어갔고 굵은 밧줄까지 충분히 있었습니다만, 건져지지가 않았습니다.
엎어져 있던 그 분을 돌려놓은 것까지는 되었는데, 그 이상이 되질 않았습니다. 밧줄로 어떻게든 묶어보려했지만 잘 되지가 않았습니다. 사람이 물에 떠 있으려면 두손/두발을 모두 써야 하죠. 그 상태에서 의식을 잃은 사람을 밧줄로 묶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더군요.
신고한지 5~6분 만에 해경 구조보트가 나타났습니다. 신고한 곳에서도 전화가 와서는, 구조대가 정확하게 가고 있냐고 물어보시더군요. 방향을 한번 정정해드리자, 바로 저희쪽으로 오셨습니다. 구명대로 건지려다 두번 실패하고, 그냥 보트를 붙여서 끌어올렸습니다. 심폐소생술을 실시하면서 급하게 돌아가시더군요.
물에 뛰어들으셨던 분께 수고하셨다고 말씀드리면서, 출동해서 상황파악하고 있는 다른 해경에게 연락처라도 남기고 가시라 했지만[그 때는 구조된 줄 알고, 나중에 그분께 좋은 일이라도 될까 싶어 그랬습니다], 그냥 웃으면서 가시더군요[그 분은 '뭘 이런 걸로. 대가를 바라고 한 일은 아니다'라는 뜻이셨던 것 같았습니다].
사다리차[부둣가에서 사람 건져낼 때 쓰려했던 것 같습니다]까지 동원한 119도 도착했습니다만, 해경에서 먼저 구조해 갔다고 하자 돌아가셨습니다. 오해를 막기위해 덧붙이자면, 소방서는 해경보다 멀리 있어서 몇분 더 늦게 오신 것입니다.
제가 처음 발견했을 때로부터 신고하기까지 2분이 안걸렸고, 신고받고 구조팀이 도착하기까지 10여분 이상은 걸리지 않았습니다. 제가 처음 봤을 때 희미하게나마 의식이 있었던 것 같았으니, 그 분께서 목숨은 건지셨을 거라 생각했었습니다.
동료와 함께, '물에는 뛰어들지 못했지만 그래도 우리가 사람 하나 구했구나'하고 뿌듯해 하면서 점심먹고 사무소로 돌아와서 일하고 있는데.. 해경에서 연락이 오더군요. 그 분께서 돌아가셨다고.
당시 정황을 조사하기 위해 해경분께서 저희 사무실로 오셔서는, 간단하게 진술서를 받아가셨죠[참고로 저는 그 분의 인적사항이나, 물에 빠진 경위 등은 알지 못합니다].
그 뒤에야, 물에 떠 있을 때 이미 그 분의 입에 흰거품이 가득했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제가 그 분야의 문외한입니다만, 해경이나 119에서 잘못한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골든타임 내에 구조가 이뤄지면 '살 수도 있다'는 것이지, '모두가 산다'는 것은 아닌가 봅니다.
성인남자 넷이 밧줄까지 있었지만 제대로 구해내지 못했습니다. 구조란 게 절대 쉬운게 아니더군요. 아무튼 착잡했습니다. 그 분을 살리기 위해 애쓰셨던 모든 분들 수고많으셨습니다.
2014년 8월 10일 일요일
비리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저희 쪽에도 비리가 있습니다. 그 가운데 언론을 탄 것도 있군요.
http://news.donga.com/3/all/20140804/65576095/1
인터넷 속담에 '자기가 한 말에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하지 않은 말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 있더군요. 하지만 제가 여기에 무슨 소리를 한다한들......-_-;;
- 비리건에 대해서는 정말 할말 없습니다.
옛날에는 공무원 처우가 좋지 못해서 비리 없이는 먹고살기 힘들었다고 합니다만, 요즘은 그렇지 않습니다. 언론이나 일부 네티즌이 떠드는 것처럼 많은 월급과 연금을 챙기는 것은 아닙니다만, 아껴쓰면 먹고 살 정도는 받습니다. 비리에 협조하지 않으면 밉보이는 것도 맞습니다만, 사표써야 되는 정도는 아니죠. 8급 서기가 서기관급 기관장 둘이 엮인 비리를 막아내는 것도 봤습니다.
한마디로, 모자란 것은 양심과 용기지 제도와 여건은 아닙니다.
- 비리 등을 막기위해 감사를 받습니다만, 현실적으로 감사과정에서 잡아내지 못하는 일도 많습니다. 현실적으로 짧은 기간에 많은 일을 감사해야 하는 문제도 있고, 감사관이 저희 쪽 일을 잘 모르는 문제도 있습니다.
- 적발되어도 무사히 빠져나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뻔뻔하게 잘 살더군요. 참고로 공직사회에서 '뇌물 받아먹었다고 자르는 것은 심하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http://news.donga.com/3/all/20140804/65576095/1
인터넷 속담에 '자기가 한 말에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하지 않은 말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 있더군요. 하지만 제가 여기에 무슨 소리를 한다한들......-_-;;
- 비리건에 대해서는 정말 할말 없습니다.
옛날에는 공무원 처우가 좋지 못해서 비리 없이는 먹고살기 힘들었다고 합니다만, 요즘은 그렇지 않습니다. 언론이나 일부 네티즌이 떠드는 것처럼 많은 월급과 연금을 챙기는 것은 아닙니다만, 아껴쓰면 먹고 살 정도는 받습니다. 비리에 협조하지 않으면 밉보이는 것도 맞습니다만, 사표써야 되는 정도는 아니죠. 8급 서기가 서기관급 기관장 둘이 엮인 비리를 막아내는 것도 봤습니다.
한마디로, 모자란 것은 양심과 용기지 제도와 여건은 아닙니다.
- 비리 등을 막기위해 감사를 받습니다만, 현실적으로 감사과정에서 잡아내지 못하는 일도 많습니다. 현실적으로 짧은 기간에 많은 일을 감사해야 하는 문제도 있고, 감사관이 저희 쪽 일을 잘 모르는 문제도 있습니다.
- 적발되어도 무사히 빠져나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뻔뻔하게 잘 살더군요. 참고로 공직사회에서 '뇌물 받아먹었다고 자르는 것은 심하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2014년 6월 21일 토요일
난민관련 기사를 보고
언론에 난민관련 기사가 좀 떴더군요.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4/06/18/0200000000AKR20140618197100004.HTML?from=search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4/06/18/0200000000AKR20140618199100004.HTML?from=search
제 업무분장상 난민업무도 들어있기는 합니다만, 제가 워낙 한직에 있다보니 제가 있는 곳에 난민신청을 한 사람은 아직 없습니다.
그래서 좀 부끄러운 얘기지만 난민업무는 잘 모르죠.
다만 예전에 겪었던 일, 보고들은 얘기들을 말씀드려볼까 합니다.
난민신청자가 체류기간 연장차 온 적이 있었습니다[난민신청한 사람은 G-1-5 라는 체류자격이 부여되는데, 이 자격의 체류기간 연장으로 난민인정업무와는 별개 건입니다].
별 생각없이 물어봤죠. 어쩌다가 난민이 되었냐고.
내전 때문에 서로 죽고죽이는 상황이라더군요. 자기가 돌아가면 죽을 거랍니다.
좀 못 미덥긴했지만,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갔습니다.
그런데 며칠 뒤, 바로 그 나라에서 온 다른 사람이 다른 일로 왔더군요. 그래서 물어봤습니다. '당신 나라에서 서로 죽고죽인다는데, 가족들 괜찮아요?'
그러자 그 사람 하는 말. '도대체 무슨 말이요?'
'아니, 그 나라 내전상태라던데?'
'내전? 아... 그거. 10년 전에 끝났소.'
제가 겪은 일은 아닙니다만, 어떤 사람이 '내가 A종교에서 B종교로 개종했다. 고향에 돌아가면 가족들이 나를 죽일 것이다'라며 난민을 신청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사람의 아버지가 그 사람에게 지어준 이름은 B종교에서 대표적으로 쓰는 이름이었죠. 한마디로 원래 B종교 집안에서 태어난 사람이, 우리가 모를 줄 알고 거짓말을 했다가 들통난 것입니다.
어디서 들었는지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만, 어떤 사람은 체류기간 연장이 안되자 자기 나라 대사관에 찾아가서 욕 한바가지 퍼붓고 나서는 난민신청을 했다죠.
이 밖에도 불법체류자가 단속되면 난민을 신청하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난민신청자의 대다수는 난민이 아닙니다.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질까요?
어떻게든 우리나라에 머물면서 돈을 벌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에서 나온 것처럼, 난민판정은 오래 걸립니다. 이 동안은 합법적으로 체류할 수 있다는 뜻이죠. 난민불인정 처분이 나도, 행정소송을 제기해서 대법원까지 간다면 더 오랜기간 버틸 수 있습니다.
참고로, E-9/E-10 자격으로 한국에 머물면서 돈을 버는 것은 최대 4년10개월까지로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래도 하려는 사람이 줄을 서서 대상자로 뽑히기 힘들죠. 그런데 난민신청자는 이에 버금가는, 아니 머리만 잘 쓴다면 이보다 더 오랜기간 머물면서 돈을 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자국에서 E-9 대상자로 뽑히기 위해 노력할 필요도 없죠.
위 언론보도를 보시면, [최대 82명까지 입주할 수 있는 난민지원시설에는 현재 23명만이 생활하고 있다. 자유를 찾아 이국땅을 밟았는데 보호시설로 들어가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외국인이 많고, 도심에서 멀어 일터를 오가기 불편한 탓이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오해하도록 써 놨습니다만, 난민지원센터는 외국의 난민수용소와는 완전히 다른 시설입니다. 언제든지 나갈 수 있죠. 숙식제공하면서 언제든지 나갈 수 있는데도 난민지원센터에 들어가지 않는 것은, 기사에도 인정하듯 주변에 일자리가 없어서 돈벌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이게 뭘 의미할까요?
참고로 우리나라에서 거짓 난민신청이 많은 이유 가운데 하나는, 난민신청자를 다른 나라처럼 수용소에 넣지 않기 때문입니다. 난민인정되면 좋고, 난민인정 안되도 몇년동안 자유롭게 살면서 돈 벌다 나가면 되니까 손해볼 게 전혀 없는 거죠.
우리나라는 식민지배와 독재를 겪어본 나라입니다. 정치적 문제로 고통받는 사람이 있다면 돕는 것이 당연하겠죠. 하지만, 이를 악용하는 사람들은 걸러야하지 않을까요?
너그러운 것과 호구가 되는 것은 다르죠. 이웃들에게 너그러워야 하겠습니다만, 국제호구가 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이 기사와 상관없는 일입니다만, 난민 이야기가 나온 김에 써 봅니다.
어떤 집단은 정말 난민이 맞습니다. 자국에서 박해받고 있죠. 그러나 우리 법질서를 준수할 생각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집단으로 불법체류자 단속반을 습격해서 단속된 불체자를 탈취해가는 짓까지 했으니까요. 이들도 난민으로 대접해줘야 할까요?
2014년 5월 24일 토요일
공무원이 열심히 일하면?
퀴즈를 하나 내보겠습니다. 공무원이 열심히 일하면 어떻게 될까요?
정답: 감사[監 査] 를 받는다. - 사람들이 고마워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설마하시겠지만, 제가 모시던 분이 당한 일입니다.
얼마전, 제가 모시던 분께서 다급하게 연락하셨습니다.
감사관이 자신이 조회한 개인정보들에 대해 조회사유를 소명하라고 하니, 당시 했던 일들을 좀 찾아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개인정보 누출 / 불법적인 개인정보 조회가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었던 것 때문에 그런 듯 합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당연한 일 아니냐고 생각하시겠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그 분께서는 확실하게 업무파악을 하고 계신 분이었고, 그 때문에 결재가 올라오면 관련자료를 직접 조회해보셨던 것입니다. 반대로 대충 훑어보고 사인만 했던 사람들, 업무파악이 되지 않아 뭐가 뭔지도 모르고 사인만 했던 사람들은 관련자료를 조회해 봤을리 없습니다. 따라서 조회한 개인정보의 양이 다를 수 밖에 없고, 그런 사람들은 감사를 받을 까닭이 없죠.
그런데 문제는, 일을 한 뒤 시간이 흘러서 정확한 사유를 기억/소명하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제게 도움을 청하신 것이었습니다.
당시 처리했던 일들을 다시 조회해서 대상자들을 찾아냈지만 많은 건이 남더군요. 그런데 마침 당시 문제되었던 사안이 떠올라서 간신히 조회사유를 찾아냈습니다. 그래도 몇 건은 사유를 찾지 못했습니다. 당시 상황으로 봐서 무엇 때문에 조회했는지 짐작은 갔습니다만, 구체적인 근거는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물론 개별 건을 처리할 때마다 개인정보 조회사유를 모두 입력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시겠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저처럼 한직에 있는 사람이야 가능하겠지만, 서울이나 인천공항처럼 바쁜 곳에서는 일하지 말라는 말밖에 안됩니다.
만약 모든 개인정보시마다 조회사유를 입력해 둔다면? 그 때는 '입력사유의 진실성'에 대한 감사가 벌어지겠죠. 명목만 다를 뿐 똑같은 상황이 펼쳐질 겁니다.
그 분과 반대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업무에 대해 아는 게 없습니다. 결재 때 하는 말을 듣고 있자니, 과연 이 사람이 우리 직원 맞나 싶었습니다. 누군가는 그 사람의 지시를 들을 때 '머리속에서 천둥이 치는 느낌'이라 하더군요. 업무시스템 아이디도 잊어버렸을 정도로 업무에 관심이 없죠.
어떻게 그 자리까지 갔나 궁금했는데, 알고보니 의전 주특기였더군요.
또한 이 사람은 문제가 될만한 일들은 미리 아랫사람에게 떠넘겨뒀습니다.
이 사람이 저런 감사를 받을 일은 없을 것이라는 것이 모든 사람의 공통된 의견입니다.
제가 그 분이 아니니, 그 분께서 불법적인 목적을 가지고 개인정보를 열람하신 적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분께서 열심히 일하지 않으셨다면, 저런 투망식 감사에 걸리는 일은 없었을 것이란 점은 자신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저 일이 아주 특이한 사례는 아닙니다.
감사를 할 때 '처리한 일'에 대한 감사도 벅찹니다. 그러다 보니 '일한 사람'만 감사를 받게 되죠. 처리한 일의 적정성을 따지려면, 그 일을 한 담당자에게 물어볼 수 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결과적으로 '한 일이 없으면 감사받을 일도 없게' 되는 것이죠.
그러면 '일을 열심히 한 사람이 성과급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승진하지 않겠느냐' 라고 하시겠지만.....
글쎄요. 그저 웃지요.
여러분께서 공무원이시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정답: 감사[
설마하시겠지만, 제가 모시던 분이 당한 일입니다.
얼마전, 제가 모시던 분께서 다급하게 연락하셨습니다.
감사관이 자신이 조회한 개인정보들에 대해 조회사유를 소명하라고 하니, 당시 했던 일들을 좀 찾아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개인정보 누출 / 불법적인 개인정보 조회가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었던 것 때문에 그런 듯 합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당연한 일 아니냐고 생각하시겠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그 분께서는 확실하게 업무파악을 하고 계신 분이었고, 그 때문에 결재가 올라오면 관련자료를 직접 조회해보셨던 것입니다. 반대로 대충 훑어보고 사인만 했던 사람들, 업무파악이 되지 않아 뭐가 뭔지도 모르고 사인만 했던 사람들은 관련자료를 조회해 봤을리 없습니다. 따라서 조회한 개인정보의 양이 다를 수 밖에 없고, 그런 사람들은 감사를 받을 까닭이 없죠.
그런데 문제는, 일을 한 뒤 시간이 흘러서 정확한 사유를 기억/소명하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제게 도움을 청하신 것이었습니다.
당시 처리했던 일들을 다시 조회해서 대상자들을 찾아냈지만 많은 건이 남더군요. 그런데 마침 당시 문제되었던 사안이 떠올라서 간신히 조회사유를 찾아냈습니다. 그래도 몇 건은 사유를 찾지 못했습니다. 당시 상황으로 봐서 무엇 때문에 조회했는지 짐작은 갔습니다만, 구체적인 근거는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물론 개별 건을 처리할 때마다 개인정보 조회사유를 모두 입력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시겠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저처럼 한직에 있는 사람이야 가능하겠지만, 서울이나 인천공항처럼 바쁜 곳에서는 일하지 말라는 말밖에 안됩니다.
만약 모든 개인정보시마다 조회사유를 입력해 둔다면? 그 때는 '입력사유의 진실성'에 대한 감사가 벌어지겠죠. 명목만 다를 뿐 똑같은 상황이 펼쳐질 겁니다.
그 분과 반대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업무에 대해 아는 게 없습니다. 결재 때 하는 말을 듣고 있자니, 과연 이 사람이 우리 직원 맞나 싶었습니다. 누군가는 그 사람의 지시를 들을 때 '머리속에서 천둥이 치는 느낌'이라 하더군요. 업무시스템 아이디도 잊어버렸을 정도로 업무에 관심이 없죠.
어떻게 그 자리까지 갔나 궁금했는데, 알고보니 의전 주특기였더군요.
또한 이 사람은 문제가 될만한 일들은 미리 아랫사람에게 떠넘겨뒀습니다.
이 사람이 저런 감사를 받을 일은 없을 것이라는 것이 모든 사람의 공통된 의견입니다.
제가 그 분이 아니니, 그 분께서 불법적인 목적을 가지고 개인정보를 열람하신 적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분께서 열심히 일하지 않으셨다면, 저런 투망식 감사에 걸리는 일은 없었을 것이란 점은 자신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저 일이 아주 특이한 사례는 아닙니다.
감사를 할 때 '처리한 일'에 대한 감사도 벅찹니다. 그러다 보니 '일한 사람'만 감사를 받게 되죠. 처리한 일의 적정성을 따지려면, 그 일을 한 담당자에게 물어볼 수 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결과적으로 '한 일이 없으면 감사받을 일도 없게' 되는 것이죠.
그러면 '일을 열심히 한 사람이 성과급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승진하지 않겠느냐' 라고 하시겠지만.....
글쎄요. 그저 웃지요.
여러분께서 공무원이시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2014년 5월 10일 토요일
빗나간 선의
좋은 뜻으로 한 일이, 좋지 못한 결과를 가져올 때가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얼마전 귀화허가를 받으신 분께서 찾아오셨습니다. 귀화허가 이후의 절차를 밟기위해서였죠.
외국인이 귀화허가를 받아 우리 국적을 취득하면, 원국적을 포기해야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만약 원국적을 포기하지 않으면, 우리 국적이 상실되죠.
그러나 일정한 경우에는 '외국국적불행사서약'이라는 것을 하면, 원국적을 포기하지 않아도 우리 국적을 상실시키지 않습니다. 이것이 몇해전부터 시행된 복수국적의 내용입니다.
그러니까 일정한 경우[모든 귀화허가자가 여기에 해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귀화허가를 받은 사람은 원국적을 포기하거나, '외국국적불행사서약'을 할 두가지 선택권이 있는 셈이죠.
하지만 조심해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복수국적 인정은 상대적 효력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죠. 귀화자의 원국적국이 단일국적주의를 따르고 있다면, 우리 국적을 취득과 함께 원국적이 사라지게 됩니다. 설명이 더 필요할 듯 합니다.
예를 들어보죠. 중국인이 우리나라에서 혼인귀화를 하였다고 가정해봅시다.
우리나라에서는 외국국적불행사 서약을 하면, 이분은 중국국적을 포기하지 않아도 됩니다. 얼핏봐서는 복수국적을 누릴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한국국적 취득시, 중국법에 따라 중국국적은 사라집니다. 아무리 우리 정부가 외국국적불행사서약을 통한 복수국적을 인정해줘도, 원국적이 사라져버리므로 복수국적은 가질 수 없게 되는 것이죠.
이런 나라가 꽤 많습니다. 우리나라도 복수국적을 제한적으로만 인정하고 있을 뿐, 자발적으로 다른나라 국적을 취득한 우리 국민은 즉시 우리국적을 상실하게 되죠.
그러니까 원국적국이 단일국적주의를 따르고 있다면, 외국국적불행사서약은 아무런 의미가 없게됩니다.
또한 원국적국이 단일국적주의를 따르지 않는다고 하여도 문제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나라에 따라서는, 자국민이 외국에서 일정한 내용의 선서를 하는 경우 자국국적을 상실시키는 곳도 많습니다. 우리는 선서/서약에 대해 큰 의미를 두지 않습니다만, 유럽쪽 문화에서는 선서/서약에 대해 아주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듯 합니다. 그래서 자국민이 외국에서 일정한 내용의 선서를 할 경우 국적까지 상실시켜버리는 내용이 법률에 포함된 듯 하고, 이것이 비유럽권 국가의 법에도 영향을 준 것 같더군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귀화허가를 받는 과정에서 서약서를 작성한 경우 및 외국국적불행사서약을 한 경우, 해당국가에서 이 사실을 어떻게 평가할 지 알 수 없습니다. 별일 아니라고 판단한다면 그냥 넘어가겠지만, 자국국적 상실사유에 해당한다고 판단한다면? '한국 국적을 취득한 사실'이 아닌, '한국에서 일정 내용의 선서를 했다는 사실'이 문제가 되어 국적을 상실할 지도 모릅니다.
여기에 국적관계 법령뿐만 아니라, 원국적국의 다른 분야 법령까지 더해지면서 문제가 훨씬 더 복잡해지게 됩니다.
- 지금은 주민등록법이 개정되었지만, 외국에서 영주권을 취득한 우리 국민은 주민등록이 말소되고 재외국민거소신고를 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주민등록 말소로 사실상의[법률상은 아니라도] 불편이 있을 수 있습니다. 외국에서도 이런 문제가 있는 듯 하더군요.
- 우리 세법상 거주자/비거주자는 달리 취급되죠. 다른 나라도 비슷한 것이 있을 것이고, 그 판단과정에서 우리 국적의 취득이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있을 듯 합니다[우리나라는 다른 것 같습니다만].
- 각종 사회보장제도의 혜택과 관련해서도 우리 국적의 취득이 영향을 미칠 수 있겠죠.
- 아무리 복수국적이 인정된다고 하여도 국가안보와 관련된 일정분야에서 타국 국적을 가진 사람에게 각종 제한을 두는 입법이 있을 것입니다. 특히 후진국의 경우, 이를 넒게 해석하여 사실상 아무 상관도 없는 분야에서도 문제가 되겠죠.
- 토지분배 등을 앞둔 나라도 있는 듯 합니다. 이때 우리 국적의 취득은 큰 영향을 미치게 되겠죠.
제가 생각해본 것만 이 정도이고, 수많은 다른 문제가 더 있겠죠. 국적문제로 인한 파생적 법률관계가 어찌 돌아갈지는 예측이 쉽지 않습니다. 예컨대 국적취득후 출입국에도 문제가 생기지만, 여기까지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자발적으로 외국국적을 취득하면 우리 국적이 상실됩니다. 그러면 가지고 있던 우리나라 여권도 별도 절차없이 그 효력을 상실합니다. 출입국시 효력이 없는 여권을 행사한다면, 출입국관리법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외국국적을 취득하고도 국적상실신고 등 절차를 밟지 않은 상태에서, 아무 생각없이 우리나라에 들어오며 한국여권을 썼다가 처벌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물론 악의없이 몰라서 그런 사람에 대한 구제조치는 있습니다]. 외국도 이런 것이 있는 듯 하고, 그 처벌은 우리보다 가혹한 경우도 있는 듯 합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우리 국적을 취득할지, 취득한다면 외국국적불행사서약을 할지/원국적을 포기할지는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닙니다.
그러나 귀화자 가운데, 이 모든 것을 생각해서 결정하는 분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제가 잘 알아보신 다음 결정하시라고 말씀드려도, 그냥 '아는 사람도 그렇게 했다' 또는 '자국 대사관까지 가서 절차를 밟는 것이 귀찮다'면서 외국국적불행사 서약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외국국적불행사서약은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간단하게 끝나거든요.
그날 오신 분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귀화허가를 받기는 했어도 관공서에 혼자 오는 것이 부담스러웠던지, 아는 분과 함께 오셨더군요. 문제는 그 함께 오신 분이었습니다. 도우려는 마음에서 시간을 내서 함께 오셨으니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이 분야에 대해 아는 것이 없으셨습니다. 나중에 문제가 되어도 아무런 책임도 질 수 없고 도움도 될 수 없는 입장, 한마디로 남의 일인데도 자신이 간단하게 일을 결정해버리더군요.
마침 귀화하신 분의 원국적국은, 자국민이 타국에 귀화할 경우/ 타국에서 일정한 내용의 선서를 할 경우 국적을 상실시켜 버리는 나라였습니다. 그런데도 함께 오신 분께서 '아무개도 그렇게 했다'며 그냥 외국국적불행사서약을 하겠다고 결정하더군요.
보다못해 인터넷에서 그 나라 대사관의 전화번호를 찾아, 귀화하신 분께 적어드렸습니다. 한번 전화해서 알아보신 다음에 결정하시라고. 그러나 귀화하신 분도 공무원보다는 시간을 내 함께 와준 사람이 믿음직했던지, 전화 한번 해보지 않고 그냥 함께 오신 분의 말씀대로 하겠다고 하시더군요.
자국에서는 어찌되었든, 우리 국적법상 외국국적불행사서약을 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제가 그 분에게 원국적을 포기하라고 강요할 수도 없죠. 그냥 외국국적불행사서약을 수리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선의를 가지고 남을 돕는다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돕지 않음만도 못할 때도 있습니다. 마치 척추에 손상을 입은 환자를 들쳐업고 뛰는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냥 선의만으로 뛰기엔, 세상이 너무 복잡해진 것 같습니다.
얼마전 귀화허가를 받으신 분께서 찾아오셨습니다. 귀화허가 이후의 절차를 밟기위해서였죠.
외국인이 귀화허가를 받아 우리 국적을 취득하면, 원국적을 포기해야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만약 원국적을 포기하지 않으면, 우리 국적이 상실되죠.
그러나 일정한 경우에는 '외국국적불행사서약'이라는 것을 하면, 원국적을 포기하지 않아도 우리 국적을 상실시키지 않습니다. 이것이 몇해전부터 시행된 복수국적의 내용입니다.
그러니까 일정한 경우[모든 귀화허가자가 여기에 해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귀화허가를 받은 사람은 원국적을 포기하거나, '외국국적불행사서약'을 할 두가지 선택권이 있는 셈이죠.
하지만 조심해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복수국적 인정은 상대적 효력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죠. 귀화자의 원국적국이 단일국적주의를 따르고 있다면, 우리 국적을 취득과 함께 원국적이 사라지게 됩니다. 설명이 더 필요할 듯 합니다.
예를 들어보죠. 중국인이 우리나라에서 혼인귀화를 하였다고 가정해봅시다.
우리나라에서는 외국국적불행사 서약을 하면, 이분은 중국국적을 포기하지 않아도 됩니다. 얼핏봐서는 복수국적을 누릴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한국국적 취득시, 중국법에 따라 중국국적은 사라집니다. 아무리 우리 정부가 외국국적불행사서약을 통한 복수국적을 인정해줘도, 원국적이 사라져버리므로 복수국적은 가질 수 없게 되는 것이죠.
이런 나라가 꽤 많습니다. 우리나라도 복수국적을 제한적으로만 인정하고 있을 뿐, 자발적으로 다른나라 국적을 취득한 우리 국민은 즉시 우리국적을 상실하게 되죠.
그러니까 원국적국이 단일국적주의를 따르고 있다면, 외국국적불행사서약은 아무런 의미가 없게됩니다.
또한 원국적국이 단일국적주의를 따르지 않는다고 하여도 문제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나라에 따라서는, 자국민이 외국에서 일정한 내용의 선서를 하는 경우 자국국적을 상실시키는 곳도 많습니다. 우리는 선서/서약에 대해 큰 의미를 두지 않습니다만, 유럽쪽 문화에서는 선서/서약에 대해 아주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듯 합니다. 그래서 자국민이 외국에서 일정한 내용의 선서를 할 경우 국적까지 상실시켜버리는 내용이 법률에 포함된 듯 하고, 이것이 비유럽권 국가의 법에도 영향을 준 것 같더군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귀화허가를 받는 과정에서 서약서를 작성한 경우 및 외국국적불행사서약을 한 경우, 해당국가에서 이 사실을 어떻게 평가할 지 알 수 없습니다. 별일 아니라고 판단한다면 그냥 넘어가겠지만, 자국국적 상실사유에 해당한다고 판단한다면? '한국 국적을 취득한 사실'이 아닌, '한국에서 일정 내용의 선서를 했다는 사실'이 문제가 되어 국적을 상실할 지도 모릅니다.
여기에 국적관계 법령뿐만 아니라, 원국적국의 다른 분야 법령까지 더해지면서 문제가 훨씬 더 복잡해지게 됩니다.
- 지금은 주민등록법이 개정되었지만, 외국에서 영주권을 취득한 우리 국민은 주민등록이 말소되고 재외국민거소신고를 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주민등록 말소로 사실상의[법률상은 아니라도] 불편이 있을 수 있습니다. 외국에서도 이런 문제가 있는 듯 하더군요.
- 우리 세법상 거주자/비거주자는 달리 취급되죠. 다른 나라도 비슷한 것이 있을 것이고, 그 판단과정에서 우리 국적의 취득이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있을 듯 합니다[우리나라는 다른 것 같습니다만].
- 각종 사회보장제도의 혜택과 관련해서도 우리 국적의 취득이 영향을 미칠 수 있겠죠.
- 아무리 복수국적이 인정된다고 하여도 국가안보와 관련된 일정분야에서 타국 국적을 가진 사람에게 각종 제한을 두는 입법이 있을 것입니다. 특히 후진국의 경우, 이를 넒게 해석하여 사실상 아무 상관도 없는 분야에서도 문제가 되겠죠.
- 토지분배 등을 앞둔 나라도 있는 듯 합니다. 이때 우리 국적의 취득은 큰 영향을 미치게 되겠죠.
제가 생각해본 것만 이 정도이고, 수많은 다른 문제가 더 있겠죠. 국적문제로 인한 파생적 법률관계가 어찌 돌아갈지는 예측이 쉽지 않습니다. 예컨대 국적취득후 출입국에도 문제가 생기지만, 여기까지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자발적으로 외국국적을 취득하면 우리 국적이 상실됩니다. 그러면 가지고 있던 우리나라 여권도 별도 절차없이 그 효력을 상실합니다. 출입국시 효력이 없는 여권을 행사한다면, 출입국관리법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외국국적을 취득하고도 국적상실신고 등 절차를 밟지 않은 상태에서, 아무 생각없이 우리나라에 들어오며 한국여권을 썼다가 처벌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물론 악의없이 몰라서 그런 사람에 대한 구제조치는 있습니다]. 외국도 이런 것이 있는 듯 하고, 그 처벌은 우리보다 가혹한 경우도 있는 듯 합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우리 국적을 취득할지, 취득한다면 외국국적불행사서약을 할지/원국적을 포기할지는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닙니다.
그러나 귀화자 가운데, 이 모든 것을 생각해서 결정하는 분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제가 잘 알아보신 다음 결정하시라고 말씀드려도, 그냥 '아는 사람도 그렇게 했다' 또는 '자국 대사관까지 가서 절차를 밟는 것이 귀찮다'면서 외국국적불행사 서약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외국국적불행사서약은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간단하게 끝나거든요.
그날 오신 분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귀화허가를 받기는 했어도 관공서에 혼자 오는 것이 부담스러웠던지, 아는 분과 함께 오셨더군요. 문제는 그 함께 오신 분이었습니다. 도우려는 마음에서 시간을 내서 함께 오셨으니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이 분야에 대해 아는 것이 없으셨습니다. 나중에 문제가 되어도 아무런 책임도 질 수 없고 도움도 될 수 없는 입장, 한마디로 남의 일인데도 자신이 간단하게 일을 결정해버리더군요.
마침 귀화하신 분의 원국적국은, 자국민이 타국에 귀화할 경우/ 타국에서 일정한 내용의 선서를 할 경우 국적을 상실시켜 버리는 나라였습니다. 그런데도 함께 오신 분께서 '아무개도 그렇게 했다'며 그냥 외국국적불행사서약을 하겠다고 결정하더군요.
보다못해 인터넷에서 그 나라 대사관의 전화번호를 찾아, 귀화하신 분께 적어드렸습니다. 한번 전화해서 알아보신 다음에 결정하시라고. 그러나 귀화하신 분도 공무원보다는 시간을 내 함께 와준 사람이 믿음직했던지, 전화 한번 해보지 않고 그냥 함께 오신 분의 말씀대로 하겠다고 하시더군요.
자국에서는 어찌되었든, 우리 국적법상 외국국적불행사서약을 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제가 그 분에게 원국적을 포기하라고 강요할 수도 없죠. 그냥 외국국적불행사서약을 수리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선의를 가지고 남을 돕는다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돕지 않음만도 못할 때도 있습니다. 마치 척추에 손상을 입은 환자를 들쳐업고 뛰는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냥 선의만으로 뛰기엔, 세상이 너무 복잡해진 것 같습니다.
2014년 4월 27일 일요일
불체자의 아이
1. 외국인이 우리나라에 살다보면, 여기서 아이를 낳는 일도 많습니다.
합법체류자의 아이는 그에 걸맞는 체류자격이 부여됩니다. 부모의 체류자격에 따라서 F-3, F-1, F-4, A-1 등의 자격이 부여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불법체류자도 아이를 낳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2. 한국인과 혼인을 한 뒤 아이를 낳는다면, 국적법 2조에 따라 아이는 우리 국적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문제는 불체자와 한국인 남편이 혼인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태어난 경우지요.
사실혼관계에서 태어난 아이와 아버지는, 법적으로 부자가 아닙니다[다만 인지/준정에 따라 부자관계가 되겠지요].
법적으로 한국인 아버지에게서 태어난 것이 아니다보니, 아이는 우리 국적을 가지지 못하고 태어납니다[다만 외국인으로서 F-2-2라는 합법적인 체류자격이 부여될 수 있습니다].
우리 국적은 없지만 한국인의 아이이므로, 국적법 3조에 따라 신고만으로 간단하게 국적을 취득할 수 있습니다[국적법 4조~9조에 따른 국적취득은 법문상 허가로 되어 있습니다만, 그 실질은 강학상 특허에 해당하고 더 어려운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
이와 관련해서 반드시 아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제대로 절차를 밟으면 문제가 해결이 됩니다만, 그렇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습니다.
국적법에 따른 국적취득 절차를 거치지 않고, '대충 호적에 이름을 올려두면 되는 거 아니냐'고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국적법에 따라 국적을 취득하지 않은 상태에서, 어찌어찌 가족관계등록부에 올라가 있다고 해서 아이가 국민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경우 해당 가족관계등록부는 폐쇄대상일 뿐이죠.
-----
그러나 일이 쉽지 않게 될 때도 있습니다.
국적취득신고든, F-2-2 자격부여든, 어머니 - 그러니까 불체자- 의 나라에서 아이의 여권을 만들어 줘야 가능합니다. 그런데 그 나라 대사관에서는 나몰라라하고 여권을 만들어주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사정은 대충 짐작이 갑니다만, 그러면 안되겠지요.
저희 쪽에서 여권은 모든 절차의 시작입니다. 그런데 아이의 여권이 없다보니, 저희는 어떻게 손도 못대게 됩니다.
'아니, 어찌되었든 해주면 되는 거 아니냐. 공무원들이 쓸데없이 서류를 요구하는 것 아니냐.'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으시겠지만, 법리상/실질적인 문제상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제가 잘 알지도 못하거니와, 자세한 사정을 밝히는 것은 악용가능성 때문에 부적절한 듯 싶습니다].
대개의 경우, 불체자가 임신했을 때부터 아이 아버지가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려 합니다[이런 말하기는 그렇지만,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돈입니다. 불체자는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거든요. 임신 후 출산까지 모두 비보험으로 처리하려면 돈이 꽤 깨지나 봅니다]. 어찌되었든 빨리 온 만큼 문제가 비교적 쉽게 풀리지요.
그러나 아이가 태어난 뒤에도 한참을 그냥 있다가, 뒤늦게서야 문제를 해결해보려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 저렇게 되지요.
3. 한편 불체자들 사이에서 아이가 태어나는 일도 있습니다.
제가 전에 몇건 불체자들의 가족과 관련된 글을 쓴 적도 있군요.
http://keyboardwarrior7.blogspot.kr/2011/10/blog-post_9804.html
http://keyboardwarrior7.blogspot.kr/2010/10/blog-post_23.html
http://keyboardwarrior7.blogspot.kr/2010/04/blog-post_24.html
그런데 얼마전, '이주아동 권리보장 기본법'이라는 것이 추진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4/04/03/0200000000AKR20140403138800372.HTML?input=1179m
http://news.heraldcorp.com/view.php?ud=20140403000159&md=20140406004847_BK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5&artid=201404141817341
http://news.hankooki.com/lpage/society/201404/h2014040421035721950.htm
http://news1.kr/articles/1616841
저 법안에 대해 알아보려 했습니다만, 신뢰할 수 있는 곳에서 법안내용 등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언론보도밖에 읽어보지도 못했으니, 법안 내용에 대한 구체적인 비판은 접어두겠습니다.
언론보도대로라면 틀린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만, 기자가 잘못 이해하였거나 편집과정에서 왜곡되었을 수도 있으니까요. 예컨대 불체자의 아이는 무국적자가 아닙니다. 그 나라의 아이이죠. '아이에게 국적을 부여할 의무'를 지고 있는 국가는 불체자의 나라이지 우리나라가 아닙니다.
언론보도상 법률안의 내용이 맞다면, 글쎄요... 제가 가진 상식을 뛰어넘는 것이라 뭐라 할 말도 없습니다.
불체자도 보장할건 해야죠. 현재 실무상으로도 불체자가 산업재해를 당하면 구제가 가능하고, 불체자가 임금체불이 되면 - 비록 그 실질이 불법행위를 통해 얻은 수익이라 할지라도- 노동청/법률구조공단/법원을 통해 구제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런 법안은 문제의 차원이 다릅니다. 과거 불체상태에서 받은 피해구제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장래의 계속적인 불체를 보장해주는 것 아닙니까.
나는 계속 불법적행동을 할 테니, 대한민국은 내 편의를 돌봐야 한다는 주장이 타당할까요?
언제나 되풀이 합니다만, 한국정부는 불체자를 지옥에 처박는 것이 아닙니다. 제 나라로 돌려보낼 뿐이죠. 아동에 대한 여러가지 권리보장 다 좋습니다. 그러나 그 주체는 그 나라지 우리나라가 아닙니다. 그리고 아동을 핑계로 불체를 보장받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아닐까요?
저 법안을 주도하는 분은 귀화자 출신 국회의원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람이 뿌리를 잊지 않는다는 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이라면, 대한민국의 국익을 위해야 하지 않을까요? 말로만 '나는 한국인이다'라고 하지 마시고, 한국인에 걸맞는 정체성을 보여주셔야 하지 않을까요?
저는 몽골에서 귀화한 분도 장관이 되야 하고, 베트남이 고향인 총리도 나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언젠가는 다문화가정에서 태어난 아이가, 마치 오바마처럼 대통령이 될 날도 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건 아닙니다. 지금 저 분의 행동은 다른 귀화자, 다문화가정출신의 정계진출에 찬물을 끼얹는 것 밖에 안됩니다. 저분이 저런 행동을 하고 나면, 앞으로 누가 귀화자의 정계진출을 도울 수 있겠습니까?
합법체류자의 아이는 그에 걸맞는 체류자격이 부여됩니다. 부모의 체류자격에 따라서 F-3, F-1, F-4, A-1 등의 자격이 부여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불법체류자도 아이를 낳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2. 한국인과 혼인을 한 뒤 아이를 낳는다면, 국적법 2조에 따라 아이는 우리 국적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문제는 불체자와 한국인 남편이 혼인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태어난 경우지요.
사실혼관계에서 태어난 아이와 아버지는, 법적으로 부자가 아닙니다[다만 인지/준정에 따라 부자관계가 되겠지요].
법적으로 한국인 아버지에게서 태어난 것이 아니다보니, 아이는 우리 국적을 가지지 못하고 태어납니다[다만 외국인으로서 F-2-2라는 합법적인 체류자격이 부여될 수 있습니다].
우리 국적은 없지만 한국인의 아이이므로, 국적법 3조에 따라 신고만으로 간단하게 국적을 취득할 수 있습니다[국적법 4조~9조에 따른 국적취득은 법문상 허가로 되어 있습니다만, 그 실질은 강학상 특허에 해당하고 더 어려운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
이와 관련해서 반드시 아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제대로 절차를 밟으면 문제가 해결이 됩니다만, 그렇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습니다.
국적법에 따른 국적취득 절차를 거치지 않고, '대충 호적에 이름을 올려두면 되는 거 아니냐'고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국적법에 따라 국적을 취득하지 않은 상태에서, 어찌어찌 가족관계등록부에 올라가 있다고 해서 아이가 국민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경우 해당 가족관계등록부는 폐쇄대상일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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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일이 쉽지 않게 될 때도 있습니다.
국적취득신고든, F-2-2 자격부여든, 어머니 - 그러니까 불체자- 의 나라에서 아이의 여권을 만들어 줘야 가능합니다. 그런데 그 나라 대사관에서는 나몰라라하고 여권을 만들어주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사정은 대충 짐작이 갑니다만, 그러면 안되겠지요.
저희 쪽에서 여권은 모든 절차의 시작입니다. 그런데 아이의 여권이 없다보니, 저희는 어떻게 손도 못대게 됩니다.
'아니, 어찌되었든 해주면 되는 거 아니냐. 공무원들이 쓸데없이 서류를 요구하는 것 아니냐.'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으시겠지만, 법리상/실질적인 문제상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제가 잘 알지도 못하거니와, 자세한 사정을 밝히는 것은 악용가능성 때문에 부적절한 듯 싶습니다].
대개의 경우, 불체자가 임신했을 때부터 아이 아버지가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려 합니다[이런 말하기는 그렇지만,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돈입니다. 불체자는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거든요. 임신 후 출산까지 모두 비보험으로 처리하려면 돈이 꽤 깨지나 봅니다]. 어찌되었든 빨리 온 만큼 문제가 비교적 쉽게 풀리지요.
그러나 아이가 태어난 뒤에도 한참을 그냥 있다가, 뒤늦게서야 문제를 해결해보려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 저렇게 되지요.
3. 한편 불체자들 사이에서 아이가 태어나는 일도 있습니다.
제가 전에 몇건 불체자들의 가족과 관련된 글을 쓴 적도 있군요.
http://keyboardwarrior7.blogspot.kr/2011/10/blog-post_9804.html
http://keyboardwarrior7.blogspot.kr/2010/10/blog-post_23.html
http://keyboardwarrior7.blogspot.kr/2010/04/blog-post_24.html
그런데 얼마전, '이주아동 권리보장 기본법'이라는 것이 추진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4/04/03/0200000000AKR20140403138800372.HTML?input=1179m
http://news.heraldcorp.com/view.php?ud=20140403000159&md=20140406004847_BK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5&artid=201404141817341
http://news.hankooki.com/lpage/society/201404/h2014040421035721950.htm
http://news1.kr/articles/1616841
저 법안에 대해 알아보려 했습니다만, 신뢰할 수 있는 곳에서 법안내용 등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언론보도밖에 읽어보지도 못했으니, 법안 내용에 대한 구체적인 비판은 접어두겠습니다.
언론보도대로라면 틀린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만, 기자가 잘못 이해하였거나 편집과정에서 왜곡되었을 수도 있으니까요. 예컨대 불체자의 아이는 무국적자가 아닙니다. 그 나라의 아이이죠. '아이에게 국적을 부여할 의무'를 지고 있는 국가는 불체자의 나라이지 우리나라가 아닙니다.
언론보도상 법률안의 내용이 맞다면, 글쎄요... 제가 가진 상식을 뛰어넘는 것이라 뭐라 할 말도 없습니다.
불체자도 보장할건 해야죠. 현재 실무상으로도 불체자가 산업재해를 당하면 구제가 가능하고, 불체자가 임금체불이 되면 - 비록 그 실질이 불법행위를 통해 얻은 수익이라 할지라도- 노동청/법률구조공단/법원을 통해 구제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런 법안은 문제의 차원이 다릅니다. 과거 불체상태에서 받은 피해구제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장래의 계속적인 불체를 보장해주는 것 아닙니까.
나는 계속 불법적행동을 할 테니, 대한민국은 내 편의를 돌봐야 한다는 주장이 타당할까요?
언제나 되풀이 합니다만, 한국정부는 불체자를 지옥에 처박는 것이 아닙니다. 제 나라로 돌려보낼 뿐이죠. 아동에 대한 여러가지 권리보장 다 좋습니다. 그러나 그 주체는 그 나라지 우리나라가 아닙니다. 그리고 아동을 핑계로 불체를 보장받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아닐까요?
저 법안을 주도하는 분은 귀화자 출신 국회의원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람이 뿌리를 잊지 않는다는 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이라면, 대한민국의 국익을 위해야 하지 않을까요? 말로만 '나는 한국인이다'라고 하지 마시고, 한국인에 걸맞는 정체성을 보여주셔야 하지 않을까요?
저는 몽골에서 귀화한 분도 장관이 되야 하고, 베트남이 고향인 총리도 나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언젠가는 다문화가정에서 태어난 아이가, 마치 오바마처럼 대통령이 될 날도 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건 아닙니다. 지금 저 분의 행동은 다른 귀화자, 다문화가정출신의 정계진출에 찬물을 끼얹는 것 밖에 안됩니다. 저분이 저런 행동을 하고 나면, 앞으로 누가 귀화자의 정계진출을 도울 수 있겠습니까?
2014년 3월 29일 토요일
친절
공무원이 친절해야 함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저희 쪽은 현실적으로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때문에 욕도 많이 먹고 있죠. ^^;;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몇해전 어느 장관 때 일입니다.
그 장관의 자식이었던가? 아무튼 아주 가까운 사람이 인천공항에서 출입국심사를 받았습니다. 그 때 저희 직원에게 '푸대접'을 받았다고 느꼈나 봅니다.
그 일로 저희 조직에는 장관의 불호령이 떨어졌습니다.
사실관계를 해명하는 사람에게는 '그럼 내 자식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말이냐'라 호령이 돌아왔고, '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 통행료 징수하는 직원들 봐라, 얼마나 친절하냐. 너희는 왜 그모양이냐'는 질책이 쏟아졌다고 합니다.
곧바로 '친절'이 저희 조직을 휩쓰는 태풍으로 되어 버리더군요.
공무원이 친절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습니다만, 저희의 기본적인 임무는 국경관리입니다. 친절은 그 다음 일이지요. 쉽게 말하면 저희는 대한민국의 경비견입니다. 애완견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경비견에게 애완견처럼 못한다고 나무랄 수는 없는 일이죠. '친절'과 '민완' 모두가 중요한 가치입니다만, 그 가운데 하나를 택하라면 저희 쪽에서는 당연히 '민완'입니다.
말도 안되는 변명을 늘어놓는다고 느껴지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좀 더 설명해보자면, 저희도 검/경과 같은 공안직군에 속합니다. 수사관이 가장 먼저 갖춰야하는 것이 뭘까요? 친절? 당연히 민완입니다. '참고인에게 친절하지만 범인은 못잡는 수사관'을 생각해보십시오.
저희도 똑같습니다. 출입국심사는 '그냥 여권에 도장찍어주는 일'이 아닙니다. 국익위해사범이 국경을 통과하지 못하게 막는 일입니다. 저희가 출입국심사를 할 때 중요한 것은, '환하게 웃으면서 여권에 보기좋게 도장찍어주는 것'이 아닙니다. 과연 이 사람이 테러범/인터폴 수배자/불체자/출국금지된 범죄자인가, 이 여권은 위변조된 것인가, 타인여권을 행사하는 것은 아닌가 등등을 놓치지 않는 것이죠.
신경을 곤두세워 이런 것들을 살펴보면, 당연히 얼굴은 굳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언젠가 다른 기관 분들과 자리를 함께한 일이 있습니다.
어느 분께서 저희에게 한마디 하셨습니다. 출입국은 왜 그리 불친절하냐고. 뭐 솔직히 그 쪽도 친절과는 거리가 먼 곳이었던 터라, 지금 생각하면 웃기기도 합니다만 ^^;;
듣고 있던 국정원 직원이 조용히 한마디 하더군요.
'출입국관리사무소는 관광안내소가 아닙니다'
그 분은 저희가 뭘 해야 하는 집단인지 알고 있었던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 출입국관리사무소가 외국에서 ‘출입국심사 서비스 부분’ 최고상을 수상하거나, 세계공항서비스평가(ASQ)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다는 것은 절대 자랑이 아닙니다.
윗분들이나 대외홍보를 맡은 분들은 큰 자랑으로 여기겠지요. 그러나 우리 조직이 지켜야 할 기본이 무엇인지, 저 것을 얻기 위해 무엇을 잃고 있는지 생각해본다면 자랑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아무튼 장관이 질책이 쏟아지자, 일선 현장은 뒤집어졌습니다.
마침 당시 기관장도 소신있다는 소린 못 들어본 사람이었나 봅니다. 제가 그 때 그 곳에 근무하지 않아서 잘은 모릅니다만, 볼만한 사태가 벌어졌다는 군요.
심지어 불친절한 팀으로 찍힌 곳은 간부들이 검찰에서 조사까지 받았다네요. 솔직히 저는 이게 믿어지지 않습니다. 자신이 불친절한 것도 범죄가 아닌데, '부하가 불친절한 것'으로 무슨 검찰조사를 받겠습니까. 그런데 실제로 그걸 당한 사람은 울분을 토하더군요. 불려간 자신도 황당하고, 조사를 해야하는 검찰직원도 어이없는 일이라, 서로 민망하게 앉아서 잡담 좀 하다가 돌아왔다고 합니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그 때 국경관리에는 거의 구멍이 뚫려있었습니다.
친절하라고 했을 뿐인데 무슨 구멍이냐 싶으시겠지만, 사실입니다.
모든 일에는 불만이 따를 수 밖에 없습니다. 특히 저희가 하는 일은 더욱 그렇죠. 물론 저희가 하는 일에 실체적/절차적인 법적하자가 있다면, 그에 대한 항의는 받아들여져야 하죠.
하지만 말도 안되는 트집은 단호하게 배척되어야 합니다. 예컨대 불체자 단속시 '사전 예고도 없이 단속을 하면 어떻게 하느냐', '불체자가 놀라지 않느냐', '왜 단속에 가죽장갑을 끼고 왔느냐'라는 불만[모두 실제 있던 것들입니다]은 받아들여져서는 안되는 것이죠. 그런 트집이 받아들여지면 공무집행 자체가 불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런 상황에서는, 무슨 일이든 '공무원이 불친절하다'로 트집잡으면 끝입니다. 아무리 정당한 공무집행이라도, '왜 그렇게 불친절하냐' 한마디에 담당자가 깨지거나 좌천되는 분위기에서 무슨 일이 되겠습니까. 뚫릴 수 밖에 없죠.
이 일은 장관의 산하기관 업무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일입니다.
거기에 장관 말이라면 꼼짝못하는 고위 공무원들이 일을 키웠죠.
손해는 말단 공무원들이 봤고, 피해는 사회 전체가 봤습니다. 국경이 뚫렸으니까요.
문제는 이런 일들이 얼마든지 되풀이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불행히도, 일을 모르는 위/ 소신없는 아래는 저희만의 문제가 아니니까요. 요즘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된 규제개혁을 보면서 마음이 착잡해지는 것은 이때문입니다[반드시 짚고 넘어갈 것은, 불합리한 규제를 옹호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언론에서는 규제가 공무원 집단의 탐욕이 만들어낸 것으로, 대통령도 어쩌지 못하는 괴물처럼 그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규제는 법률에 위임을 받은 행정규칙[훈령/예규 등. 일선에서는 지침이라고 부르죠]에 따라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 행정규칙들은 장관 또는 해당 조직의 장이 결재권자입니다. 기안자는 사안에 따라서 다릅니다만 6급 주사에서 5급 사무관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규제가 공무원의 탐욕에서 비롯된 말도 안되는 것이라면? 결재권자가 결재 안하면 그만입니다. 모르고 결재했다면, 나중에 폐기하라고 지시하면 그만입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장관만 진노해도 조직이 뒤집어지는데, 대통령도 못 고치는 규제는 있을 수 없습니다.
헌법학이나 행정법학에서 행정규칙에 대한 통제를 중요하게 다루고 있습니다만, 현실에서는 거기까지 갈 일도 없습니다. 정말로 잘못된 규제라면, 언론보도만 한번 나와도 얼마 뒤에 폐기됩니다.
그러면 언론에서 아무리 비판하고, 여론이 들끓어도 바뀌지 않는 규제는 뭘까요?
간단합니다. 그게 옳거나, 현실적으로 어쩔수 없는 일이겠죠. 언론에서 몰랐거나/다루지 않은 다른 사정때문에 꼭 필요한 규제이거나, 현실적으로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규제개혁 끝장토론을 잠깐 보았는데, 참 씁쓸했습니다. 그 때 마침 끌려 나온 규제는, 제가 알기로는 꼭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그 규제로 불편을 겪는 사업주들이야 불필요한 규제라고 주장하겠지만, 사회 전체의 입장에서는 완전히 얘기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장관이 자기 업무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다면, 이러저러해서 꼭 필요한 규제라고 당당하게 설득할 수 있었겠죠. 그러나 그러지 못하더군요.
이제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씁쓸하게 지켜볼 수 밖에 없습니다. 제 역량이 모자라서,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저희 쪽은 현실적으로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때문에 욕도 많이 먹고 있죠. ^^;;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몇해전 어느 장관 때 일입니다.
그 장관의 자식이었던가? 아무튼 아주 가까운 사람이 인천공항에서 출입국심사를 받았습니다. 그 때 저희 직원에게 '푸대접'을 받았다고 느꼈나 봅니다.
그 일로 저희 조직에는 장관의 불호령이 떨어졌습니다.
사실관계를 해명하는 사람에게는 '그럼 내 자식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말이냐'라 호령이 돌아왔고, '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 통행료 징수하는 직원들 봐라, 얼마나 친절하냐. 너희는 왜 그모양이냐'는 질책이 쏟아졌다고 합니다.
곧바로 '친절'이 저희 조직을 휩쓰는 태풍으로 되어 버리더군요.
공무원이 친절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습니다만, 저희의 기본적인 임무는 국경관리입니다. 친절은 그 다음 일이지요. 쉽게 말하면 저희는 대한민국의 경비견입니다. 애완견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경비견에게 애완견처럼 못한다고 나무랄 수는 없는 일이죠. '친절'과 '민완' 모두가 중요한 가치입니다만, 그 가운데 하나를 택하라면 저희 쪽에서는 당연히 '민완'입니다.
말도 안되는 변명을 늘어놓는다고 느껴지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좀 더 설명해보자면, 저희도 검/경과 같은 공안직군에 속합니다. 수사관이 가장 먼저 갖춰야하는 것이 뭘까요? 친절? 당연히 민완입니다. '참고인에게 친절하지만 범인은 못잡는 수사관'을 생각해보십시오.
저희도 똑같습니다. 출입국심사는 '그냥 여권에 도장찍어주는 일'이 아닙니다. 국익위해사범이 국경을 통과하지 못하게 막는 일입니다. 저희가 출입국심사를 할 때 중요한 것은, '환하게 웃으면서 여권에 보기좋게 도장찍어주는 것'이 아닙니다. 과연 이 사람이 테러범/인터폴 수배자/불체자/출국금지된 범죄자인가, 이 여권은 위변조된 것인가, 타인여권을 행사하는 것은 아닌가 등등을 놓치지 않는 것이죠.
신경을 곤두세워 이런 것들을 살펴보면, 당연히 얼굴은 굳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언젠가 다른 기관 분들과 자리를 함께한 일이 있습니다.
어느 분께서 저희에게 한마디 하셨습니다. 출입국은 왜 그리 불친절하냐고. 뭐 솔직히 그 쪽도 친절과는 거리가 먼 곳이었던 터라, 지금 생각하면 웃기기도 합니다만 ^^;;
듣고 있던 국정원 직원이 조용히 한마디 하더군요.
'출입국관리사무소는 관광안내소가 아닙니다'
그 분은 저희가 뭘 해야 하는 집단인지 알고 있었던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 출입국관리사무소가 외국에서 ‘출입국심사 서비스 부분’ 최고상을 수상하거나, 세계공항서비스평가(ASQ)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다는 것은 절대 자랑이 아닙니다.
윗분들이나 대외홍보를 맡은 분들은 큰 자랑으로 여기겠지요. 그러나 우리 조직이 지켜야 할 기본이 무엇인지, 저 것을 얻기 위해 무엇을 잃고 있는지 생각해본다면 자랑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아무튼 장관이 질책이 쏟아지자, 일선 현장은 뒤집어졌습니다.
마침 당시 기관장도 소신있다는 소린 못 들어본 사람이었나 봅니다. 제가 그 때 그 곳에 근무하지 않아서 잘은 모릅니다만, 볼만한 사태가 벌어졌다는 군요.
심지어 불친절한 팀으로 찍힌 곳은 간부들이 검찰에서 조사까지 받았다네요. 솔직히 저는 이게 믿어지지 않습니다. 자신이 불친절한 것도 범죄가 아닌데, '부하가 불친절한 것'으로 무슨 검찰조사를 받겠습니까. 그런데 실제로 그걸 당한 사람은 울분을 토하더군요. 불려간 자신도 황당하고, 조사를 해야하는 검찰직원도 어이없는 일이라, 서로 민망하게 앉아서 잡담 좀 하다가 돌아왔다고 합니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그 때 국경관리에는 거의 구멍이 뚫려있었습니다.
친절하라고 했을 뿐인데 무슨 구멍이냐 싶으시겠지만, 사실입니다.
모든 일에는 불만이 따를 수 밖에 없습니다. 특히 저희가 하는 일은 더욱 그렇죠. 물론 저희가 하는 일에 실체적/절차적인 법적하자가 있다면, 그에 대한 항의는 받아들여져야 하죠.
하지만 말도 안되는 트집은 단호하게 배척되어야 합니다. 예컨대 불체자 단속시 '사전 예고도 없이 단속을 하면 어떻게 하느냐', '불체자가 놀라지 않느냐', '왜 단속에 가죽장갑을 끼고 왔느냐'라는 불만[모두 실제 있던 것들입니다]은 받아들여져서는 안되는 것이죠. 그런 트집이 받아들여지면 공무집행 자체가 불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런 상황에서는, 무슨 일이든 '공무원이 불친절하다'로 트집잡으면 끝입니다. 아무리 정당한 공무집행이라도, '왜 그렇게 불친절하냐' 한마디에 담당자가 깨지거나 좌천되는 분위기에서 무슨 일이 되겠습니까. 뚫릴 수 밖에 없죠.
이 일은 장관의 산하기관 업무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일입니다.
거기에 장관 말이라면 꼼짝못하는 고위 공무원들이 일을 키웠죠.
손해는 말단 공무원들이 봤고, 피해는 사회 전체가 봤습니다. 국경이 뚫렸으니까요.
문제는 이런 일들이 얼마든지 되풀이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불행히도, 일을 모르는 위/ 소신없는 아래는 저희만의 문제가 아니니까요. 요즘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된 규제개혁을 보면서 마음이 착잡해지는 것은 이때문입니다[반드시 짚고 넘어갈 것은, 불합리한 규제를 옹호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언론에서는 규제가 공무원 집단의 탐욕이 만들어낸 것으로, 대통령도 어쩌지 못하는 괴물처럼 그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규제는 법률에 위임을 받은 행정규칙[훈령/예규 등. 일선에서는 지침이라고 부르죠]에 따라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 행정규칙들은 장관 또는 해당 조직의 장이 결재권자입니다. 기안자는 사안에 따라서 다릅니다만 6급 주사에서 5급 사무관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규제가 공무원의 탐욕에서 비롯된 말도 안되는 것이라면? 결재권자가 결재 안하면 그만입니다. 모르고 결재했다면, 나중에 폐기하라고 지시하면 그만입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장관만 진노해도 조직이 뒤집어지는데, 대통령도 못 고치는 규제는 있을 수 없습니다.
헌법학이나 행정법학에서 행정규칙에 대한 통제를 중요하게 다루고 있습니다만, 현실에서는 거기까지 갈 일도 없습니다. 정말로 잘못된 규제라면, 언론보도만 한번 나와도 얼마 뒤에 폐기됩니다.
그러면 언론에서 아무리 비판하고, 여론이 들끓어도 바뀌지 않는 규제는 뭘까요?
간단합니다. 그게 옳거나, 현실적으로 어쩔수 없는 일이겠죠. 언론에서 몰랐거나/다루지 않은 다른 사정때문에 꼭 필요한 규제이거나, 현실적으로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규제개혁 끝장토론을 잠깐 보았는데, 참 씁쓸했습니다. 그 때 마침 끌려 나온 규제는, 제가 알기로는 꼭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그 규제로 불편을 겪는 사업주들이야 불필요한 규제라고 주장하겠지만, 사회 전체의 입장에서는 완전히 얘기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장관이 자기 업무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다면, 이러저러해서 꼭 필요한 규제라고 당당하게 설득할 수 있었겠죠. 그러나 그러지 못하더군요.
이제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씁쓸하게 지켜볼 수 밖에 없습니다. 제 역량이 모자라서,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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