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2월 8일 화요일

도살

요즘 구제역 때문에 말 그대로 난리가 났습니다. 구제역과는 아무 상관없을 줄 알았던 저희까지도 구제역 때문에 이런저런 지시를 받고는 하죠. 출입국심사할 때 축산관계자에게 검역관계 안내를 하라는 지시는 물론, 단속 및 홍보활동으로 불체자/외국인근로자의 이동을 줄여서[축사는 더러워서 외국인력을 많이 쓰죠] 구제역확산을 줄여보라는 지시까지도 있었죠.

구제역 사태와 관련하여, 살처분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죠. 저도 그렇습니다. 멀쩡한 목숨들을 산채로 파묻어버리는 것을 보고 무덤덤하면 말이 안되겠죠.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어요. 살처분은 정말 안타까운게 맞는데, 도살은 살처분보다 덜안타까운 일일까. 평소에 불체자 단속 때문에 축사나 도축장/도계장[닭잡는 곳]을 갈 일이 많다보니, 그 목숨들의 운명을 조금은 가늠하게 되었기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축사에 갈 일이 가끔 있습니다. 괜찮은 곳도 있습니다만, 말 그대로 '똥밭에서 구르고 있는' 곳이 많죠. 태어나서 풀밭이라고는 가본 적도 없이 쭉 그렇게만 살다가 가는 목숨들은 다르게 느끼겠습니다만, 과연 그리 사는게 죽는 것보다 나을지 모르겠더군요.
그렇게 살다가 -살처분되지 않으면- 도축장에 가게 되죠. 도축장에 가보면 '멱따는 소리'는 들리지 않습니다만, 피비린내 풍기면서 뼈와 살, 내장들이 널려있는 모습이 펼쳐지게 됩니다. 저희야 들어가면서 '이놈들이 어디에 숨었을까, 두건과 마스크를 쓴 저 사람은 국민일까 외국인일까, 불체자 잡았는데 칼부림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더 큽니다만.... 김이 서려 뿌옇게 되면서 피비린내 가득차 있던 공기가 기억에 남네요[참, 허영만화백의 식객이란 작품에 보면 도축장 내부는 대통령도 보여주지 않는다고 하던데, 그건 아닙니다. 어쩌다보니 갈 때마다 제가 찾아들어간 곳은 '잡는 곳'은 아니었는데, 다른 분들은 저와 같은 행운(?)이 없었습니다. 들어갔더니 돼지머리가 눈앞에 뚝 떨어지면서 얼굴에 피가 튀더라네요].

언젠가 양계장을 간 적이 있습니다. 농구공 하나 들어갈만한 닭장은 다를 바 없었지만, 어릴 때 보았던 그런 양계장이 아니었습니다. 문가로 다가가는 순간 거센 바람이 불더군요. 들어서자 제 키보다 큰 거대한 환풍기 여러 개가 돌아가고 있었고, 닭장이 몇층 건물 높이로 들어차 있었습니다. 가끔씩 정전으로 가축들이 질식사했다는 언론보도가 나오곤 하죠. 그런 기사를 보면서 '아니 축사에 밀폐를 한 것도 아닌데 왜 그러나?' 싶었는데, 가보니 알겠더군요. 사람 하나없는 양계장 한쪽에는 닭들이 낳은 달걀들이 천천히 굴러내려와 한곳으로 모여서 실려가는 것이, 양계장이 아니라 달걀공장이란 말이 더 어울리는 모습이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달걀을 그 값에 먹을 수 있는지 깨닫게 된 날이었습니다.
또 다른 날은 도계장에 갔습니다. 도계장 입구 트럭에 실린 닭장들에는 벌써 여러마리가 뻗어있더군요. 몸부림도 제대로 치지 못하는 닭들이 기계에 거꾸로 매달린 채 죽 흘러가면, 조그만 쇠 막대가 빙글빙글 돌아가며 목을 쳐버리더군요. 달랑달랑 매달려있는 닭대가리를 사람이 하나씩 뜯어내고 있었습니다.

고기를 먹어야 하니 잡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저 목숨들이 살아있는 동안 더 좋은 곳에 있다가 가게 하자는 말씀도 많이 하시던데.... 그렇게 하려면 값이 더 오르겠죠? 그러면 누군가는 더 고기먹기 힘들어질 겁니다.

이 모든 것들이 내 입으로 고기 한 점이 들어가기 위해서 벌어지는 일들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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