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0월 9일 토요일

실전


단속을 할 때, 달아나기만 하는 불체자들이 더 많지만 맞서 싸우는 불체자도 가끔 있습니다[얼마전, 다른 사무소에서 단속된 불체자를 때려서 문제된 일이 있었죠. 그 일도 사실 불체자가 각목과 유리병을 들고 덤벼들었던 것 때문에 감정이 격앙되어서 벌어진 일입니다. 젊은 사람도 아니라 쉰 넘은 분이, 사람패기 알맞은 것도 아닌 수갑을 들고 때렸을 정도면, 상황이 오죽했겠습니까]. 저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도 막대기, 돌, 전지가위[전지가위로 무슨 공격을 하겠나 싶으시겠지만, 하더군요] 등을 들고 덤비는 불체자와 싸워야 했던 일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별일없이 넘어가나 싶었는데, 얼마전 그런 일을 겪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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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체자들을 덮쳤는데, 마침 갈고리를 두개씩 들고 일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달아나면서 갈고리 두개를 그냥 들고 가더군요[빨리 뛰려면 본능적으로 손에 든 것들을 버리고 달리는데]. 처음에는 손에 든 것을 버릴 생각도 못하나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제가 따라잡자 바로 갈고리들을 휘두르더군요. 위 사진이 바로 그 갈고리들을 찍은 것[종이는 A4용지이고, 가운데 있는 것은 30cm자입니다] 입니다.
저도 어쩔 수 없이 삼단봉을 뽑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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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쉽지 않더군요. 갈고리가 하나였다면 삼단봉으로 갈고리 든 손을 치면서 엉킬 수도 있었을텐데 그러지를 못했습니다. 갈고리 두개를 휘두르다보니, 하나를 막으면 다른 하나에 찍힐 판이었거든요.
다행히 그 사람도 무술을 배운 사람은 아니라서 두 손을 한꺼번에 잘 쓰지는 못하더군요. 한손을 쓰고 다른 한손을 쓸 때 잠깐씩 틈이 비었습니다.
둘 다 본능적으로 팔을 머리 뒤까지 젖혀 바로 내려찍/후려치려는 자세로 맞서게 되더군요. 옛날 검도는 상단을 잡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은데, 왜 그랬는지 이해가 갑니다.
만약 그 사람이 갈고리가 아닌 칼을 들었다면 중단을 잡았겠지만, 내려찍어야 하는 갈고리의 특성상 위로 치켜들 수 밖에 없었을 겝니다. 저도 갈고리로 내려 찍는데 삼단봉으로 중단을 잡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어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네요. 물론 제대로 된 상단이나 중단은 아닌, 되도 않는 웃기는 자세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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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그렇게 그는 갈고리를 휘두르고, 저는 갈고리 든 손을 노리면서 맞섰습니다. 어쩌다 틈이 보일때마다 손목을 때렸는데 별 효과는 없었습니다[잡힌 뒤 보니 손목이 붓긴 했다는군요]. 처음엔 삼단봉으로 손목을 치면서 이젠 끝났다 싶었는데, 화만 돋구지 무력화는 되지 않아 참 당황했습니다. 저는 다행히 찍히지 않았구요. 찍혔으면 이렇게 지내지는 못하겠죠.
아마 갈고리를 피하면서 틈을 노려 치는 것이라 제대로 들어가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 사람도 삼단봉이 신경쓰여서 제대로 찍지를 못하더군요. 더구나 저를 찍는 것 보다는 달아나는게 더 중요했을테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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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맞서다 달아나더군요. 제가 따라잡자, 다시 갈고리를 휘둘렀습니다. 그렇게 한참 뛰고 휘두르고를 되풀이했습니다. 나중엔 서로 지쳐서 제대로 된 공격이 되지를 않더군요. 손목을 쳐도, 제대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 툭 치는 것처럼 되었습니다.
달아나다가 밭을 뒤덮은 덩굴에 걸려서 그가 두어번 넘어지기도 했습니다. 나중에 들으니 저도 한번 휘청했다는데[보신 분이 아찔하셨답니다], 전 솔직히 생각도 잘안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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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와 함께 일하는 분들이 여럿 오셨습니다만, 제대로 된 무기가 없어서 별 도움은 안되었습니다. 그런데 무기는 없지만 여럿이 몰려오자 그가 더 당황한 듯 하더군요. 결국 넘어지면서 갈고리를 하나 놓쳤습니다. 그러니 더 힘들어졌겠죠. 그래서 더 달아나다가 어느 집 뒷마당에 있는 역기봉을 하나 주워들고 맞서더군요. 마음이 급해서인지 갈고리를 버리지 못하고 역기봉과 겹쳐 잡았던게 실책이었죠[갈고리도 역기봉도 제대로 못쓰게 된 겁니다]. 제가 역기봉 끝을 잡아채면서, 두어분[누가 덮쳤는지 생각도 안납니다]이 덮쳐서 수갑을 채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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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쫓고 쫓기다가 많은 분들을 마주쳤고, 참 많이들 놀라셨습니다. 아주머니들은 말 그대로 혼비백산하셨고, 젊은 친구들은 그 상황에서도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더군요. 수갑을 채우고 오면서 몇분께 신분증을 보이면서 안심하시라 말씀은 드렸습니다만, 모든 분께 사정설명을 드리진 못했습니다. 다 찾아뵐 상황은 아니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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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게 끝났다 싶자, 맥이 풀려버리더군요. 목에서 피맛이 나면서 기침이 오래동안 나왔습니다. 웬만큼 뛰어도 좀 쉬면 멀쩡해지는데, 그날은 종일 맥을 못추겠더군요. 그는 구토를 했답니다. 둘다 운동량에 비해서 체력소모가 무척 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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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 처음으로 흉기를 든 사람과 싸워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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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흉기를 든 상대와 맞서면 얼어버려서 아무 것도 못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더군요. 물론 불시에 급습을 당하면 그렇게 되겠지만, 1~2초라도 마음의 준비가 있으면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그 뒤로는 처음 대련할 때의 긴장과 비슷합니다. 다른 소리는 잘 안들리고 내 심장 뛰는 소리와 숨소리가 크게 들리지만, 아무 것도 못할 정도의 긴장은 아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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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상대와 거리를 두는게 중요하더군요. 대련에서는 일족일도의 거리를 두게 됩니다만, 말 그대로 아차하면 죽는 거립니다. 저나 그나 삼단봉과 갈고리라서 죽도보다 훨씬 짧은 걸 들고 있었지만, 죽도를 들었을 때의 일족일도 거리만큼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래도 상대가 공간치기하듯 밀고들어오면 답이 안나올 것 같았습니다. 특히 날붙이를 가진 상대와 엉키면 아주 위함할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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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공격은 과감하게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 사람이 조금만 더 과감하게 밀고 들어왔다면 저는 어찌되었을지 모릅니다. 저 역시 처음에 손목을 칠 때, 손목 부러지면 어쩌나 하는 생각 버리고 인정사정없이 쳤다면 바로 끝냈을 겁니다. 다치지는 않고 끝냈으니 어찌보면 잘된 일이긴 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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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삼단봉이 듣던 것만큼 파괴력이 세지는 않고[아무 걱정없이 휘두른다면 위력이 넘칩니다만, 상대 반격을 피하면서 틈을 노려 치니 얘기가 달라지더군요], 뽑아들고 오랬동안 뛰고 치켜들고 하다보면 접히기까지 하더군요[두어번 접혔는데, 다행히 거리가 어느 정도 있어서 별일 없었습니다]. 삼단봉으로 단단한 것을 찌를 때만 접힌다고 하던데, 사람을 찔러도 접히더군요[물론 쉽게 접히지는 않습니다만]. 제가 가지고 다니는 것은 명품소리 듣는 물건인데도 그랬습니다. 지급되는 싸구려 삼단봉을 쓰는 건 말 그대로 명을 재촉하는 일 밖에 안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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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대련이 실전에 별 도움이 안될 듯 하지만, 많은 도움이 되는 듯 합니다. 대련이나 실전이나 틈이 보이는 것, 보이는 틈을 치는 것 다 같더군요. 다만 한가지. 대련에서는 맞는 것 신경안쓰지만, 실전에서는 못 때리더라도 안맞는게 낫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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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마치고 돌아오며, 어둑어둑해지는 저녁길에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고 싶어지더군요. 몇번 핸드폰을 꺼냈다가 그냥 집어넣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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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을 아시게 된 윗분은 아주 싫어하시더군요. 사고나지 않도록 무리한 추격 자제하라고 몇번을 지시했냐고 말씀하시면서.
솔직히 저희도 흉기들고 덤비는 것들 보면 그냥 보내고 싶은 생각이 더 많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몇달 안에 모든 불체자가 흉기를 들고 다니게 될 겁니다[어느 곳에서는 여자 불체자가 칼부림하기에 그냥 보냈더니, 뒤에 다시 단속에 걸리자 또 칼부림을 하더라는군요].
이 일이 있고 며칠 뒤, 불체자 하나가 사람 머리만한 돌을 들어 내려치고 각목을 휘둘렀습니다. '무리한 추격은 자제한' 덕분에 아무도 다치지 않았고, 그는 무사히 달아났죠[저는 다른 곳에 있어서 못봤습니다]. 아마 다른 불체자들에게 어떻게 하니 손도 못대더라고 신나게 떠들고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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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불체자를 단속하는 'immigration'에게 이단옆차기를 날리는 것을 통쾌하게 그린 영화도 개봉되었더군요. 그 영화를 보며 공감한 분들 많이 계신 듯 합니다. 누군가의 덕에 덜 위험하게 살아가면서, 바로 그 누군가를 비난하시겠죠. 믿고 싶은 대로 믿고 살면 마음은 편하겠군요. 할말 없습니다.

댓글 3개:

  1. 글 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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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저런.. 위험한 일을 당하실 뻔 하셨군요.

    단속이라는게, 강하게 저항하면 더욱 강하게 해야 법질서라는 명목이 서게 될 터인데, 그러지 못하는게 이상하군요.

    한국이나 미국이나, 정부가 하는 일은 일단 '탄압'이라는 인식을 가진 분들도 있지만, 공권력이 나설때 저항하는 사람에 대한 대응은 미국에 비해서 한국은 너무 많이 부드러운 것 같습니다. 단속하는 사람도 같은 국민일 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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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지난 주말에 집에 오지 못해서 덧글이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익명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MICH님: 예전에 공권력이 정당성을 갖지 못하던 시절이 있어서 그렇겠죠.
    그런데 공권력의 행사가 모두를 위해 불가피한 것입니다. 공권력이 행사되어야 할 때 제대로 행사되지 못한다면 모두가 피해를 보게 되죠. 그걸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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