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8월 21일 토요일

재회 2

요즘은 위장결혼도 나름 머리를 쓰고 준비를 합니다. 한국인이 -마치 '정상적인' 국제결혼처럼- 외국으로 건너가서 맞선을 보고 오기도 하고, 외국인이 우리나라로 잠깐 와서 맞선을 보고 가기도 하죠[이때 미리 합의한 대로, 불법체류를 하지 않고 바로 나갑니다. 이걸 담보하기 위해 브로커에게 위약금도 걸어두더군요]. 예전처럼 위장결혼한 사람들이 서로 얼굴도 잘 모르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또 가난한 분들이 국제결혼을 하는 것을 보면, -언젠가도 썼다시피-아내를 맞아오는 것인지 강아지를 얻어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때도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이게 위장결혼인지 아니면 참된 결혼이지만 사는 게 막 사는 것일 뿐인지 가려내기가 힘들어지고, 늘 망설이게 되죠. 특히 제가 처음 맡았던 일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제가 아무 것도 모르고 위장결혼같다고 보고했던 것들이, 참된 결혼이지만 사는 게 막사는 것일 뿐인데 잘못 본 것은 아닌지 늘 찜찜했죠.

그런데... 제가 처음 불허의견을 냈던 분이 다시 신청을 했고, 이 건이 어쩌다가 다시 제게 맡겨졌습니다. 불허가 된 뒤 쫓아와서 대판 싸우고 갔다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변에서는 윗분께 말씀드리고 사건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라고 말씀하시더군요. 하지만 그냥 제가 맡았습니다. 내가 싼 똥은 내가 치운다는 마음도 있었고, 무엇보다도 제가 제대로 본 것이었는지 다시 한번 확인해보고 싶었습니다. 만약 잘못 본 것이라면 제 손으로 바로잡아 주고 싶었죠.

다시 만나게 된 그분. 대판 싸우고 갔다기에 한번 소란이 있겠구나 싶었는데, 뜻밖에도 순하셨습니다. 대판 싸웠을 때, 저희쪽에도 만만치 않은[?] 분이 계셨기 때문에 그런 듯 싶습니다. 다행히 저를 기억하지 못하시더군요.

처음에는 구비서류 등 뭐하나 제대로 준비해둔 것이 없으셨는데, 이번에는 이것저것 열심히 준비해오셨더군요. 순간 흔들립니다. 내가 막사는 걸 위장결혼으로 잘못 본 게 아닐까? 조금 캐보니 여기저기서 거짓말이 드러납니다. 그래도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 위장결혼이 아닌데도, 딴에는 잘 해보겠다고 거짓말 하는 사람도 많거든요. 한참을 고민하면서 이것저것 물어보고 있는데, 뭔가가 잡힙니다. 두가지가 수상하더군요. 제가 잘못 봤던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다행히.

다시 보고서를 썼습니다. 이번에는 '불허'라고 쓰지는 않았습니다. 그냥 제가 본 대로 썼습니다. 담당하시는 분이 읽어보시고 결정하시도록. 담당하시는 분들은 그런 의견을 더 싫어하시더군요. '도대체 날더러 어쩌란 말이냐'며... ^^;; 하지만 저도 어쩔 수 없습니다.

제가 이 일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지 않고 그냥 한 것을 아시게 되자, 선배님들이 그러시더군요. 불허된 사건을 다시 맡기지 않는 까닭은, 감정싸움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함도 있지만, 자기가 맡았던 사건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일을 망치지 않기 위해서라고. 법원에서 재판할 때 전심[前審]재판에 관여한 판사는 맡을 수 없게 되어 있는 것과 똑같은 이치더군요. 거기까진 생각을 못했습니다.
적어도 이번은 제가 선입견으로 한사람의 혼사에 딴지를 걸어버린 건 아닌 것 같습니다만, 모르죠. 사람 사는 게.

제 선배 한분이 겪은 일입니다. 어떤 부부를 조사하고는 위장결혼으로 판단했답니다[제가 들어봐도 위장결혼으로 보이더군요]. 그런데 그게 아니었나봅니다. 그 뒤 약 5년동안 그 사람이 술만 마시면 -조사과정에서 실수로 노출 된- 개인 휴대전화 번호로 전화해서 퍼부어 댔답니다. 결국 5년 뒤 그 사람은 많은 노력을 하고 우리나라에 들어왔다는군요. 그런 일을 생각하면, 아무래도 조심하게 됩니다. 내가 아무 잘못도 없는 사람 고생시키는 것은 아닌가 싶어서.

저희가 막아버리는[결혼은 약탈혼이 아닌 이상 국가가 막을 수 없죠. 저희는 그 외국인의 입국을 막아버릴 뿐입니다. 한국인이 외국으로 나가서 같이 사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죠. 다만 맞선을 통한 국제결혼은 입국불허가 곧 혼인불허와 같죠] 국제결혼은 위장결혼 냄새가 물씬 나거나, 아니면 위장결혼이 아니라도 곧 도망가버릴 게 뻔히 보이는 결혼들입니다. 가끔씩 외국인 배우자 쪽에 한국인 배우자는 모르는 문제가 있는 때도 있구요. 아는 사람이라면 정말 다시 생각해보라고 말해주고 싶은 결혼들만 그렇게 하는데... 모르겠습니다. 사람 사는 일이라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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