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 15일 월요일

업보

제가 일을 하다보면, 불법적으로 입국한 사람을 단속하는 분들께 넘길 때가 있습니다. 영화와 같은 치밀한 추리나 치고받는 활극이 펼쳐지진 않죠. 불체자 단속과는 많이 다릅니다.
그런데.. 뭔가를 좀 생각하게 하네요. 그런 일 가운데 하나를 조금 써볼까 합니다. 있는 그대로 쓰지는 못하고 얼버무려 씁니다. 좀 앞뒤가 안맞고 뭔가 이상한 글이 되어도 이해해 주십시오.

어느 조선족이 한국에 오려고, 어느 노인을 찾아가서는 친척이라면서 초청해달라고 졸랐습니다. 노인은 거절했답니다. 그런데도 이 사람은 그 노인이 초청한 것처럼 서류를 위조해서 한국에 오는데 성공했습니다. 노인은 그 사람을 신고했습니다.

노인 입장에서 생각해 봅니다.
처음보는 조선족이 찾아와서는 집안 친척이라고 주장을 합니다. 그런데 하는 말이 앞뒤가 안맞아요. 웬 사기꾼이 달라붙나 싶죠. 초청해 달라고 매달리는 걸 어렵게 떼어내고는 잊고 있었는데, 그 사람이 '자신의 초청으로' 입국한 것을 알게 됩니다. 이 노인은 무슨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요.

조선족 입장에서 생각해 봅니다.
한국에 가서 돈을 벌고 싶습니다. 여기저기 알아보니 한국에 친척이 있는 듯 합니다. 그 '친척' 하나 믿고 한국에까지 갔습니다. 이제 그 사람이 정말로 친척인지는 중요하지 않을 겝니다. 그쯤 되면 자신은 그 사람의 소중한 친척이고, 그 친척은 자신을 도와줄 거란, 아니 도와야 한다는 믿음이 굳어졌겠죠. 그런데 그 '친척'이 자기를 모른 척 합니다! 결국 빈손으로 중국에 돌아왔습니다.
이제는 어떻게 할까요? '난 정말로 그 사람 친척이니까' 당연히 써줘야 하는 서류를 좀 꾸미는 것쯤은 괜찮다고 생각했겠죠. 돈 좀 써서 손쉽게 위조서류를 구했고,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그 '친척'이 자신을 신고했습니다. 이 조선족은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요.

어쩌면, 두 사람은 정말로 친척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이유에선가 둘 사이가 틀어졌고, 노인이 조선족에게 앙심을 품고 거짓신고를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정확한 것은 담당자가 조사해보면 알겠죠.
두 사람 사이에 얽힌 아름답지 못한 인연을 생각합니다. 뭐랄까... 말을 잘 못하겠네요.


이렇게 불법적으로 들어온 사람들을 넘기고 나면, 기분이 묘합니다. 해야할 일을 한 것인데, 뒤끝이 썩 개운치는 않아요. 살인이나 강도처럼 피해자가 있는 범죄라면, 피해자의 원한을 풀어주니 이런 느낌이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방학기 화백의 다모라는 만화-드라마로도 만들어졌었죠-의 한장면이 생각납니다. 포도청에서 일하던 등장인물 하나가 총에 맞아 죽습니다. 죽어가면서 자신의 손에 죽어간 역적들이 눈에 스쳐가고, 그 업보를 치르게 된 것이라는 걸 깨닫죠.
물론 제가 그 사람들을 죽인 것도 아니고, 무시무시한 형벌을 받게 한 것도 아닙니다. 아마 '에이 재수없었네'하고는 위명여권으로 또다시 우리나라에 들어오겠죠.
그런데 기분이 개운치 않은 것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습니다. 해야만 하는 일이니까요. 그 일로 제가 월급을 받기도 하지만, 모두에게 꼭 필요한, 누군가는 해야하는 일이니까요.
이렇게 저도 제 업보를 쌓아가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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