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 9일 화요일

조선족의 피해의식과 우리의 한恨은 다른 것일까요

저는 일자리에서 조선족들을 많이 대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무척 피해의식이 강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별일 아닌 데 서로 얼굴 붉히게 되는 일이 많습니다. 숱한 일 다 생각나지도 않고, 오늘 있던 일 한두가지만 말씀드려볼까 합니다.



제 동료분이 민원예약창구에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5분단위로 예약된 창구였죠. *시 5분에 예약한 민원인이 *시 4분에 왔습니다. 당연히 창구에는 *시 정각에 예약한 민원인이 아직 일을 보고 있었죠. 제 동료분이 이분 끝나고 해드리겠다고 말씀드리자, 벌컥 화부터 내더군요. 그래서 서로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허가권자에게 성질부려봤자 좋을 것 없겠다 싶었는지, 일행이 얼른 대신 사과하고는 그 민원인을 뒤로 끌고 가더군요. 나중에 자신이 정각에 예약한 것으로 잘못 알아 그랬다는 식으로 사과하긴 했지만, 정말 자신이 잘못했다고 생각해서 그러는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일행분도 자신들이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불리할 듯 싶어 수습하려는 것 뿐이었지요.
그 창구업무는 비교적 간단한 것이라서, 바로 끝나는 일이었습니다. 예약시간보다 먼저 와서는, 앞 사람들이 금방금방 끝내고 돌아가는 것을 보아왔으면, 자기 앞 사람도 금방 끝나리란 것을 모를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저러는 사람들이 자주 있습니다.

제가 겪었던 일입니다. 민원인이 와서 체류기간연장허가를 신청했습니다. 몇마디 물어보고, 그에 따라 처분했습니다. 그렇게 잘 끝나고 갔던 민원인이, 조금 있다가 다시 돌아오더군요. 같이 왔던 언니는 허가기간이 2년인데 왜 자신은 1년이냐고 항의하더군요. 그래서 같이 온 사람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선생님께서는 요건이 충족되지 않는다고 말씀 드렸죠. 그러자 눈물까지 글썽거리며 따지는 것이었습니다.
조선족과 한국인이 말이 통한다고는 하지만, 서로 무슨 말을 하는지 못알아 들을 때도 많습니다. 그러다보면 엉뚱한 소리 할 수도 있습니다. 이번에도 제 질문을 잘못 알아듣고 엄한 소리했을지도 모르겠다 싶어 고쳐드렸습니다만, 솔직히 저만한 일에 젊은 여자분이 눈물까지 글썽거리면서 따지는게 가엾기도 했고, 민원인 밀려있는데 싸우기 귀찮아서 그런 것도 있습니다. 아마도 그 여자 분은 제가 잘못 해놓고 오리발 내밀다가 백기를 든 것으로 생각하겠지만......


별 것 아닌 일들입니다만, 날마다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어쩌다보니 따지고 목소리 커지는 이야기만 쓰게 되었는데, 반대로 불필요하게 굽신거리기는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처음엔 왜 저러나 싶었는데, 이게-싸우는 것과 굽신거리는 것 모두- 피해의식 때문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드네요.


가끔씩 우리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무개념들도 마주치곤 합니다. 아무런 구비서류 하나 없이 허가신청하러 왔길래 구비서류를 안내해주자, 허가 안내준다며 화를 벌컥 내는 사람을 본 적 있습니다. 위조문서로 허가신청한 걸 적발해서 허가를 취소시키자, 서류를 위조한 건 맞는데 허가는 왜 취소하냐며 따지는 사람도 있었다죠.
처음엔 정말 이해가 안갔습니다만, 생각해보니 이런 무개념들도 피해의식과 관련이 없지는 않을 것도 같습니다.

-참, 꼭 짚고 넘어갈 것이 있습니다. 우린 멀쩡한데 조선족만 저모냥이라고 비웃을 생각은 절대 없습니다. 우리나 저들이나 무개념은 많죠. 모르긴 해도, 어느 나라나 다 비슷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무개념들은 50대 이상에서 많은데, 우리나라의 그 또래 분들을 보면 크게 다르지 않은 분들도 많죠. 젊은 조선족들을 보면, 우리와 별로 다를 바 없습니다. 지금은 몰라도, 곧 우리보다 뒤떨어지지 않게 되겠죠-


문득 벽초 홍명희의 임꺽정에 나온 말이 생각나네요. 임꺽정이 백정으로 천대받고 자라다보니, 성질이 뒤쪽나는 일이 많았다는 이야기-이두호 화백의 만화에도 그대로 쓰였던 걸로 기억합니다만-말입니다. 생각이 정리되지 않아 뭐라고 딱 부러지게 말하지는 못하겠습니다만, 말씀드렸던 일들도 깊은 연관이 있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아무튼 조선족들을 보고 있으면, 80년대까지 선진국에서 우리를 저리 보았겠구나 싶을 때가 많습니다. 어쩌면 지금도 그럴지도-예컨대 일본에서 우릴 보는 눈길- 모르구요.

그걸 생각하자, 우리민족의 정서라고 내세우던[제 세대에서는 그런가보다 하고, 저보다 어린 세대에서는 '그런거 없는데?'라고 반박하기도 합니다만, 제 웃세대에서는 너무도 절절하던] '한恨'이 외국인의 눈에는 어찌 보였을지 궁금해지더군요. 물론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는 한을, 겪어보지 않은 외국인의 생각이 옳고 우리가 잘못된 거라고 보면 틀린 것이겠습니다만, 밖에서 보기에는 참 자랑도 아닌 걸 자랑하는 것 같았을지도 모르겠군요.


어쨌거나, 이제는 달라졌습니다. 한? 그런거 없는데? 하는 세대가 점점 많아지고 있죠. 아니, 한맺힌 분들이 줄어들고 있죠. 그 분들 덕에 한을 모르는 우리가 잘 살고 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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