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 2일 화요일

제가 고소를 당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제 일자리에서 소란이 있었습니다.
중국에서 귀화한 어떤 영감님께서 창구에 오셔서는 따지고 시작했거든요. 보완서류를 14일 이내 제출하여야 한다고 쓰여 있는 접수증을 들고 와서는, 14일이 지났는데 왜 허가를 내주지 않느냐고 소리를 치고 있었습니다.

어? 이상한데? 라고 느끼신다면 정상이신 겁니다. -_-;;
접수증에는 접수가 되었다. 그런데 보완서류를 14일 이내 제출하지 않으면 접수가 취소될 수 있다고[정확한 문구는 생각이 안나네요. 매일 보는 것인데도 -_-;;] 쓰여져 있습니다. 그런데 그걸 '접수가 되었으니 14일이 지나면 허가가 나온다'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고서는, 허가가 왜 안나오냐며 따지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있을 리가 있나 싶으시겠지만, 자주 있는 일입니다. 대륙의 기상이 넘쳐나는 분들이 여기저기 많이 계시죠. -_-;;
*******
3월 3일 밤에 고칩니다.
접수증에는 '귀하가 제출하신 신청서는 접수되었습니다. 다만, 보완서류를 14일 이내에 제출하신 경우에 한해 처리될 수 있습니다'라고 쓰여있군요. 이게 행정절차법 17조 5,6항과 관련되어, 실무상 가접수/임시접수라 불리는 것 때문에 쓰여진 글귀입니다.
어떤 기한이 다 되었는데 신청인이 구비서류를 갖추지 못하면, 가져온 서류만 가지고 임시로 접수를 해주죠. 그리고 저 기간내 나머지 서류를 제출하면, 처음 접수를 한 때 접수한 것으로 보고 심사하게 됩니다. 한마디로 기한을 지키지 못할 경우에, 기한 내 신청한 것으로 봐주는 겁니다.
기간내 구비서류를 갖추지 못하면 신청을 반려하게 되죠. 그래서 제가 저렇게 착각한 것 같습니다.

어찌 보면 민원인이 저럴만 하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실무상 접수증을 주면서, 허가가 나오는 날을 딱 정해서 그날 오시라고 하거나/ 허가가 나오면 추후통보를 해 드리니 그때 오시면 된다고 말씀을 드리고, 접수증에 적어 드립니다. 날을 정해서 오시라고 하는 경우는 한번만 말씀 드리고 접수증에 적어드리면 다 알아듣는데, 추후통보의 경우에만 이해를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타나더군요. 접수하며 말씀 드리고+접수증에 적어 드립니다. 그래도 찾아오시면 또 설명을 해 드립니다. 그런데도 이해를 '안'합니다. 아무리 설명을 드려도 '14일 지났지 않느냐, 된다더니 왜 안됐냐'는 소리만 되풀이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투덜거리면서 돌아가고, 어떤 사람들은 저렇게 합니다.
**********


아무튼 이 영감님께서 오셔서는 따지시다가, 일이 뜻대로 안 풀리자 욕까지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곳에는 어린 공익 하나 뿐이었거든요. 여직원이나 나이 어린 공익이 있는 곳에서는 자주 벌어지는 일입니다. 남자직원들이 있는 곳에서는 훨씬 드물죠.

하도 소란을 피워대자, 보다 못한 옆자리 여직원이 따졌지만 여직원 쯤은 우스웠나봅니다. 그래서 나이드신 제 상사분까지 가셔서 여기서 그러지 말고 이쪽으로 오라고 했습니다만 소용없었습니다. 결국 남자직원 셋[저도 끼어 있었습니다]이 갔습니다. 왜 욕을 하냐며 이리 오라고 했죠.
남자직원 셋이 둘러싸자, 바로 '욕 안했어요'라면서 큰 소리로 억울함을 호소하더군요. -_-;;

아무튼 데리고 나와서 엘리베이터를 탔습니다. 거기서 제가 욕하지 않았느냐며 큰소리로 따졌죠. 처음엔 '욕 안했어요'라고 뻗대기만 하던 영감님, 자신을 때리지는 못한 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다시 기세등등해졌습니다. 다른 곳[원래는 범죄자들을 조사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난동부리는 사람이 있으면, 거기서 경고해서 조용히 시키기도 합니다. 말그대로 귀찮은 일을 해주시는 셈이죠]에 넘겨주고 오는데, 저보고 이리 와보라며 큰 소리를 치더군요. 중국공안에게 대들면 벌어지는 일들이, 한국에선 벌어지지 않는다는 게 실감났나 봅니다.

제 자리로 돌아와서 다시 일을 하는데, 조금 있자니 그 영감님이 다시 돌아와서는 소란을 피우기기 시작합니다. 엘리베이터에서 두들겨 맞았답니다. 경찰까지 부르더군요. 정말로 젊은 남자 셋이 영감님 때렸다면, 그 영감님 엘리베이터에서 뻗었을 겁니다. 아마 다시 돌아와서 큰 소리칠 수도 없었겠죠? 아무튼 고래고래 소리치던 영감님,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서 더 난리를 쳤나봅니다. 고소한다고 펄펄 뛰었다네요.

******
3월 3일 밤에 다시 보탭니다. 그날 그 자리에 있던 어떤 분[저희 직원 아닙니다]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때 욕질하던 영감님 주변에 앉아있던 조선족들이, 저희가 영감님을 데려 간 다음, 저 영감님은 욕한 적이 없다고 이구동성으로 편을 들더랍니다. 모두들 그 영감님의 일행도 아니었는데도 말입니다. 그 이야기를 해주시면서 혀를 내두르시더군요.

그 말씀을 들으니, 각종 운동경기 생각이 나더군요. 한국과 다른 나라가 경기할 때, 한국이 골을 먹거나 지면 조선족들의 함성이 터져나오던 게 말입니다. 평소에는 그 나라들에 대해 아무런 호감도 없던 조선족들이, 단지 한국과 싸운다는 한가지 이유로 그 나라 편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이런 일에서는 오죽하겠습니까.
어떤 분들은 이게 다 우리의 잘못 때문이라고 하시겠지만요. -_-;;
********

일이 시끄러워지자... 제 상사분께서 조용히 물으시더군요.
'정말 안 때렸지?'
허탈하고 씁쓸했습니다. 제가 가기 전부터 그 영감님과 있었고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쭉 함께 있던 분이, 일이 시끄러워질 듯 싶자 '난 모르는데 너 혹시 때렸니?'라는 식으로 나오시는 겁니다.

저는 그 영감님이 고소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조사받으러 간 김에 무고죄로 고소해 드리게.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복지부동이란 말이 곧 제 생활신조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참 제가 아는 분이 겪으신 일이 하나 생각나네요.
그 분이 불체자 단속업무에 투입되어서, 여성 불체자 하나를 추격하고 있었답니다. 죽자살자 도망가던 그 여자, 따돌리긴 글렀다 싶자 글쎄....

옷을 벗으려더랍니다!!! -_-;;

그 분은 기겁을 해서 얼른 수갑을 채우고, 옷을 못 벗게 막았답니다.
만약 조금만 늦었다면 여성불체자를 어떻게 했다면서 난리가 났을지도 모릅니다.
이 일도 포장되기에 따라서는 꽤나 자극적인 사건이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다행히 그냥 넘어갔습니다만.

아무튼..
'노인이 관공서에 가서 잘못된 행정에 항의하자, 건장한 공무원 넷이 엘리베이터로 끌고가서 개 패 듯 팼다'는 이야기를 들으시면, 사실은 그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번 쯤 해주시길 바랍니다.

댓글 2개:

  1. 욕보셨습니다.
    새삼, 약자라고 다 선하지는 않다라는 진리가 다시금 떠오르는 군요.

    답글삭제
  2. MK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예. 말씀하신 것처럼, 존경받지 못할 강자도 많지만, 동정받지 못할 약자도 많은 것 같습니다.

    답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