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 1일 토요일

가출

어떤 분들께서 오셨습니다. 아들이 국제결혼을 했는데, 며느리가 가출을 해버렸다네요.
자주 있는 일입니다만, 이런 분들이 오실 때마다 저희는 긴장하게 됩니다. 막말로 마누라/며느리가 도망갔는데 눈에 뵈는게 뭐가 있겠습니까. 더구나 저희가 딱부러지게 도와드릴 수 있는 것도 없는 상황에서 사무소가 난장판이나 안되면 다행이죠.

아무튼 조심스레 이야기를 듣다보니, 여자 쪽에서는 처음부터 결혼할 생각은 전혀 없었고, 우리나라에 들어오기 위해 이분들을 이용했더군요. 뭐 이런 건은 많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뭔가 달랐습니다. 냄새가 납니다.
구체적인 건 밝힐 수 없지만 간단히 말씀드리면, 결혼이민자는 그 나라에서 몸을 팔던 아가씨였고, 우리나라에 선을 대둔 상태에서 들어온 것이었습니다. 한마디로 [___]의 매춘조직에서 결혼사기 형식으로 조직원을 우리나라에 들여보낸 것 같더군요.

어찌보면 저런 일이 없는게 더 이상할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한달에 100만원 남짓 벌어도 그 나라에서 버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데, 보통사람이 벌기 힘든 돈을 만지게 되는 일이라면야 더 말할 것도 없겠죠. 뭐 못할 말로 우리나라 사람들도 일본/미국 등에서 많이 하는 짓 아니겠습니까.
아마 저 또는 피해가정에서 몰랐을 뿐이지, 이 사람만 이런 건 아닐 겁니다.

흥분하시기도 했고, 시골노인분들이라서 말씀하시는 것이 정리가 되지는 않았습니다만, 이리저리 물어봐가며 간추려서 경찰 분께 알려드렸습니다. 그런데 경찰분께 말씀드릴 때 저도 횡설수설하게 되더군요. -_-;;

제가 알아낼 수 있는 것은 모두 알려드렸습니다만... 안타깝게도 수사가 제대로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증거가 없지 않습니까. 지금으로서는 '결혼할 생각이 없던 결혼이민자가 가출해서 아는 사람을 찾아갔다'는 것 말고는 증거가 없습니다. 냄새는 납니다만,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판사를 확신시킬' 증거는 없죠. 그런 증거를 찾아내기란 쉽지 않을 겁니다.

행정처분도 쉽지 않습니다. 다른 증거는 몰라도 처음부터 결혼할 생각이 없이 결혼사증[F-2-1]으로 들어온 것은 맞으니, 출입국관리법 89조에 따라 체류허가를 취소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요즘같은 분위기에서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죠[물론 매춘조직연계가 입증가능하다면 얘기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무슨 밥버러지 같은 소리냐!'고 폭발하시는게 당연하고, 저 또한 그렇게 생각하지만....요즘 '결혼이민자=사회적 약자'라는데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는 별도로 정책적 판단 내지 정당한 법집행은 제대로 이루어져야겠지만, 현실적인 국민여론은 그게 아니죠.

아마 '개별사안에 따라 적정하게 일을 하면 되지, 왜 이렇게 뭉뜽그려가면서 핑계만 대는 걸까?'라고 생각하실 겁니다. 옳으신 말씀이고, 저도 그렇게 하는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일을 하다보면, 그게 아닙니다. -결혼사기에 대한 체류허가 취소건은 아니었습니다만- 사람들이 행정청에서 정당한 처분을 했다고 인정하게 되는 사안에서도 결혼이민자라면 동정적으로 보는 시선이 많은데, 결혼이민자가 울고불고 악을 쓰면서 '공무원이 거짓으로 서류 꾸며가면서 나에게 불이익을 줬다'고 소리쳐 보십시오. 허위서류제출한 것은 결혼이민자일지라도, 잘 모르는 사람들 반응은 뻔합니다. 어떤 건에서는 전혀 상관도 없는 사람까지 전화를 해서 큰소릴 치더군요. 저도 겪어보고 나니, 윗분들-바꿔말하면 저희보다 훨씬 오래 겪은 분들-이 저러는게 한편으로는 이해도 갑니다.

체류허가 취소야 그렇다 치고, 나중에 체류기간 연장은 어떨까요? 신청한다고 그냥 연장해주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만...... 그렇다고 포기할 저들이 아니죠. 경찰들 쓰는 말로 '남편기리까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한마디로 다른 사람을 구해서 남편으로 해두는 거죠. 위장결혼을 적발해 내면? 또다시 사정 딱한 사람+ 결혼이민자의 '어렵지만 열심히 살아보겠다고 발버둥치는데 공무원이...'가 나옵니다. 그게 안통하면 소송까지 가기도 하구요.

행정소송이 제기되면 승소가 쉽지 않습니다. 제 선배님 한분께서는 위장결혼을 적발했는데, 추석/설때 남자의 부모를 만났다는 한가지만으로 위장결혼으로 볼 수 없다는 판결까지 난 적이 있다네요[보충설명이 필요할 듯 합니다. 위장결혼했을 때 흔히 하는 거짓말 가운데 하나가 명절때 부모님도 뵌다는 것(물론 가족과 입은 맞춰두죠)입니다. 제가 그 사건에 직접 관여하지 못해서 잘 모릅니다만, 재판부에서 불쌍하니까 그냥 그 주장 믿어주고 승소시켜준 것 같아요]요즘은 더 어려워졌습니다. 저들도 머리가 있으니까, 문제가 되었다 싶으면 그때부턴 정말 함께 살아버리거든요. 적어도 재판이 끝날 때까진.

도대체 왜 이리 빌빌거리나 한심하시죠? 저는 오죽이나 갑갑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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