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15일 토요일

저주

뒷산에 갔다가 뭔가를 보게 되었습니다.
큰 도토리나무에, 한뼘 쯤 되는 허수아비 하나가 못 박혀 있더군요.
벽초 홍명희의 임꺽정에 나오는 인종 방자하던 이야기가 생각나서, 돌을 집어 못을 뽑아주었습니다. 임꺽정에선 허수아비를 태워주라던데, 불도 없거니와 산불날까봐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짚을 구하지 못해서인지 발에 쓰인 갈대를 뽑아 만든 것 같았습니다. 검은 천으로 싸고 붉은 끈으로 묶었군요. 머리 쯤 되는 곳에 못을 박았는데, 허수아비 뒤에 종이봉투 하나가 같이 박혀 있었습니다. 테잎으로 꼼꼼하게 봉한 것을 찢어보니[이때 뭔가 끔찍한게 들어있으면 어쩌나 싶었습니다만], 컴퓨터에서 뽑은 듯한 여자사진이 찢어발겨진 채 들어있습니다. 그 뒤에 쪽지 하나가 들어있네요. 펼쳐보니 주소와 이름이 쓰여 있습니다. 경면주사같은 것은 구하기 힘들었는지 분홍색 펜으로 썼군요. 부천에 사는 박선영이란 사람이네요[정확한 주소를 밝히지도 않았고, 워낙 흔한 이름이니 괜찮겠죠? 이 사람이 범죄를 지은 것도 아니구요] 글씨를 보니 여자가 그런 것 같습니다.
더 어찌해야할 지를 몰라서 그냥 버려두고 왔습니다.

그 산에는 무속인 쯤 되어 보이는 아주머니 하나가 몇년 째 주문같은 것을 외우고 있습니다. 그 아줌마가 그랬나? 큰 길에서 얼마 안들어간 곳에 박아둔 것을 보면 산에 자주오는 사람이 그런 것 같지는 않군요. 경면주사도 아니고 분홍색 펜으로, 사주팔자도 없이 주소와 이름만 적은 쪽지를 보면 무속인이 한 짓은 아닙니다.

그냥 지나갈 걸 괜한 짓 했나 싶기도 합니다만....
부천에 사는 박선영이란 사람이 나쁜 사람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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